괴물. 2006 - 봉준호.
혹시나 해서 검색해본 극장상영표.
나도 모르게 툭 뱉어버린 제발이라는 말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에는 괴물의 상영시간표가 떡~하니 떠있다.
한숨에 달려가 예매하고 안절부절 하며 가지도 않는 시간을
등 떠밀어 보냈고...극장 안.
스크린을 제외한 모든 불빛이 꺼지는 순간.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괴물같은 영화가 시작됐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한국영화도
개봉전 이토록 뜨거운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없었다.
여러번 나를 소름돋게 하고 2시간여동안 나를 한껏 행복하게 해준
괴물의 시작은 돌연변이 탄생과 함께 한다. 흔히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등장하는 영화들과는 달리 어쩌면 영화가 끝난 뒤
기억에 잘 남지도 않을 초반 3개의 시퀀스마저 쉽사리
넘기지 않는 센스를 보여주며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한강 시민공원 장면에 박해일을 제외한 모든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간결하고도 재치있게 담아내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괴물의 모습을 스크린 전면에 올려 놓았다.
괴물의 첫 습격장면에는 지금까지의 영화에선 등장한 적이 없다는 새로운 카메라 워크가 등장한다. 편집되지 않은 하나의 컷 안에서
괴물이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것. 영화계가 놀랄정도로
새롭고 신선하다는 이 카메라 기법이 왠만한 사람은 모르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티가 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이미 많은 화제가 된 분향소에서의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낼 만한 명장면.
이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는 기존의 괴물 블록버스터들과는 달리
괴물과 가족간의 대립이라는 길로 들어선다. 이것이 괴물을 찍으면서 보여준 봉준호 최고의 선택 중 하나다.
괴물이 담아내야할 긴장감, 봉준호 특유의 유머와 배우들의 연기,
천재감독이 보여주는 빈틈없는 스토리텔링에...
덜떨어져 사리판단 못하는 과학자나 정의감에 불타는 영웅의 존재로 자칫 진부한 영화로 남거나 휴머니즘을 놓칠 수 있었던 위험은 감독의 똑똑한 선택으로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후 긴장의 끈을 단 한순간도 놓지않고 달려가는 괴물은 또 한번
그 총명함을 보여준다. 바로 살아있는 캐릭터.
보통 4~5명의 메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는 그들 중 한 둘은
죽어버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스크린안에서 살아숨쉬는 가족의
캐릭터는 그 구성원 하나하나, 아니 가족이라는 하나의 존재감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의 연기는 더 이상 꾸며낸
것이 아닌 게 됐고 영화 괴물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와 함께
공존해오던 가족이라는 단어가 비로소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강두의 딸로 등장하는, 놀랍도록 침착한 딸 현서역의 고아성은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와 같은 대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빛났다. 나를 가장 긴장하게 하고 가장 울컥하게 만들었던
장면들의 주인공은 송강호도 박해일도 아닌 고아성이었다.
봉준호는 배우福 있는 감독? 맞다.
영화 괴물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하는 건 역시 괴물의 모습이다.
봉준호감독과 장희철 크리처 컨셉 디자이너가 시나리오 단계
에서부터 머리를 쥐어짜 만들어낸 괴물은 헐리우드의 유명
CG팀 웨타 크레샵의 기술력과 더불어 징그럽고도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괴물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나 식량을 저장해놓는 괴물의 습성 등도 봉준호 감독의 오랜 고안 끝에 나온
괴물의 캐릭터이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한국영화에서의 CG를
감상할 수 있다. 습격하다가 어설프게 넘어지기도 하고 총에 맞고 아픈 척 쓰러져있기도 하는, 장난끼 어린 모습으로도 그려지는
괴물의 모습은 영화의 종반부 고아성의 얼굴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르겠다. 앞으로 골뱅이를 먹을 때 괴물이 가끔씩 생각날지도.
영화의 마지막, 매점안에서의 들릴듯 말듯한 TV속 뉴스를
강두는 시끄럽다는 듯 발로 꺼버린다.
단순히 영화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만연한 병폐나
정치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다니는 봉준호의 손길은 점점 그
힘을 더해간다. 고교시절 한강에서 괴생물체를 본 후 언젠가
반드시 영화로 만드리라는 그의 꿈은 피터 잭슨의 킹콩처럼 이루어졌다. 꿈을 이룬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된다.
어쩌면 그 꿈을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어 낼지도...
일단 올 해 안에는 이만한 영화는 안나온다.
620개. 대한민국 전체 스크린수 1/3에 육박하는 엄청난 개봉관을
확보한 괴물의 흥행스코어 역시 기대가 된다.
오늘은 개봉 하루 전. 첫 상영에 다양한 연령층의 만원관객이라면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영광의 주인공이 괴물이 되는건 시간문제다. 최소 첫 주 200만은 들어온다. 재밌겠다. 신문의 일면을 장식할 괴물의 흥행특보을 접한다는 건.
괴물을 보고 나온지 2시간여.
지금 TV에서는 괴물의 극장상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고
난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마치 조금전, 한강에서 괴물이라도
보고온 것 같은 섬뜻하고도 묘한 기분에 젖어있다.
봉준호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아니... 많이 잡았다.
박해일은 화염병을,
배두나는 활을,
송강호는 딸을,
변희봉은 가족을,
고아성은 희망을 잡았다.
그리고 한국영화,
'괴물'을 잡았다.
bbangzzib Juin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