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광 사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송광면(松光面) 신평리(新坪里) 조계산
(曹溪山)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제21교구 본사이며, 통
도사(通度寺)·해인사(海印寺)와 함께 한국 3보사찰(三寶寺刹)의 하
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이다. <송광>이라는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松廣山)에서 비롯되었다.
삼청교
신라 말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이름을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다.
고려 인종 때 석조(釋照)가 중창하다가 다 짓지 못하고 죽은 뒤 황
폐해졌으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결사(定慧結社)
를 맺은 도반들과 함께 1200년(신종 2) 송광산 길상사로 와 자리를
잡았다.
부도와 부도비
이때부터 조선 초까지를 조계산 수선사시대(修禪社時代)라
하는데, 지눌로부터 고봉(高峰)까지 <개위국사이범십육세(皆爲國
師以凡十六世)>의 법통이 이어져 중세불교의 꽃을 피우게 된다.
조선 초 고봉이 불(佛)·법(法)·승(僧)의 전당(殿堂)을 중건하였고, 1
420년(세종 2) 중인(中印)이 당우(堂宇)를 증축하는 한편, 선원(禪院)으로 복귀시키는 등의 일을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폐허화하였으나, 1614년(광해군 6) 선수(善修)가 응선(應善) 등 600여 명의 승려와 동안거(冬安居)를 수행함으로써 맥을 이어 갔다.
1842년(헌종 8) 큰 불이 나서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탔고, 18
56년(철종 7)까지 기봉(奇峰)과 용운(龍雲)이 대웅전·명부전·응향각
(凝香閣)·법왕문(法王門) 등을 다시 세웠다.
대웅보전
1924∼1928년 사이에 율암(栗庵)이 용화당(龍華堂) 등의 당우를 새로 짓거나 수리하였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과 6·25를 겪으며 절 주변의 숲이 훼손되고 대웅전 등이 불탔는데, 1955∼1961년 사이에 취봉(翠峰)과 금당(錦堂)이 복원되었다.
대웅보전
1970년대 구산(九山)은 조계총림(曹溪叢林)을 부활시켰고, 1980년
대 현호(玄虎)가 20여 동의 당우를 새로 세우거나 옮겨 지었다.
고려 명종 때, 이미 80여 동의 당우를 거느린 큰 절이었는데, 거듭되
는 변란으로 부침(浮沈)이 심하다가 현재 50여 동의 당우가 있다.
당우
중요한 당우로
청량각(淸凉閣)·일주문(一柱門)·척주각(滌珠閣)·세월각(洗月閣)·
우화각(羽化閣)·천왕문(天王門)·해탈문(解脫門)·대장전(大藏殿)·
종고루(鐘鼓樓)·법왕문(法王門)·대웅전(大雄殿)·설법전(說法殿)·
수선사(修禪社)·상사당(上舍堂)·하사당(下舍堂)·응진전(應眞殿)·
국사전(國師殿)·진영각(眞影閣)·약사전(藥師殿)·영산전(靈山殿)·
관음전(觀音殿)·명부전(冥府殿)·화엄전(華嚴殿)·성수전(聖壽殿)·
향적전(香積殿)·산신각(山神閣)·청운당(靑雲堂)·백운당(白雲堂)·
차안당(遮眼堂)·조사당(祖師堂)·진여문(眞如門) 등이 있다.
부속 암자는 16곳이었으나 현재 천자암(天子庵)·부도암(浮圖庵)·감로암(甘露庵)·불일암(佛日庵)에서만 승려가 거처하고 있다.
문화재
송광사는 그 자체가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화재 및 보물이 많다. 삼청교 부터 해서 기와장 하나 하나 전부가 소중한 것이다.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木造三尊佛龕)>은 지눌의 원불(願佛)
이며, 중국 당(唐)나라 양식의 감실로 돋을새김[陽刻(양각)]·맞새김
[透刻(투각)]·두리새김[丸彫(환조)] 등의 다양한 수법으로 많은 상
(像)과 무늬를 새긴 우수한 작품이다.
목조삼존불감 (木造三尊佛龕)
목조불감은 높이 13㎝ 이며, 모두 3부분으로 되어 있고 불감을 중심
으로 좌우에 불감이 문비(門扉)처럼 달려서, 열면 나비가 17㎝가 되
고 닫으면 팔각기 둥모양이며 윗부분은 둥근 반구형(半球形)이다.
중앙의 감(龕)에는 본존인 불좌상과 그 좌우에 나한(羅漢)과 보살상
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의 얼굴에는 위엄과 긴장감이 돈다. 법의(法
衣)의 주름은 2개의 줄로써 표현해 마치 인도 및 서역풍의 조상(彫
像)을 모방한 듯하다.
감실의 천개(天蓋) 부분에는 장막(帳幕)이 둘러지고 여러 가지 구슬장식이 있고 화염에 싸인 보주장식이 붉은색을 띠고 조각되었다.
오른쪽 감실 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사자가 받치고 있는 대좌 위에 앉아 있다.
이 목조불감은 작으면서도 그 속에 조각된 상들이 원형조각에 가까
울만큼 고부조이며 세부 묘사가 정확하다. 보조국사 지눌이 당나라
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국보 제42호. 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
국보 제43호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는 1216년(고종 3) 왕
이 혜감(惠堪)에게 대선사의 호를 내린 문서이다.
국보 제56호 <국사전>은 16국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건물로, 천
장에 도금한 범자(凡字)와 구름용무늬[雲龍文(운룡문)]가 특이하
다.
또한 보물 제90호 <송광사대반열반경소(松廣寺大般涅槃經疏)>,
대나무를 쪼개어 색실로 묶은 아름다운 꽃무늬의 보물 제134호
<경질(經帙)>, 불경을 넣은 나무궤짝에 달아서 그 내용을 알 수
있게 한 표찰(標札)인 보물 제175호 <경패(經牌)>,
송광사경패 (松廣寺經牌)
경명(經名)을 새긴 패로서. 크기는 세로 12.2∼16.2㎝, 가로 2.3∼3.5㎝이다.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제작된 목함(木函)에, 그 안에 있는 경전에 수록된 내용을 알기 위하여 부착하였던 표지물이다.
형태는 앞면에 당초무늬·연주무늬·금강저무늬 등으로 장식된 직사각형의 사주변란(四周邊欄) 안에 <대방광불화엄경제1함(大方廣佛華嚴經第一函)> 대방광불화엄경제3질(大方廣佛華嚴經第三帙)> <별역잡아함경10권(別譯雜阿含經十卷)> 등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뒷면에도 사주변란 안에 불(佛)·보살(菩薩)·신중상(神衆像)이 돋을
새김으로 묘사되고, 그 밑에 불각(佛閣) 또는 사각형의 구획 속에
정(貞)·진(晉)·주(周)·연(淵)·승(承) 등이 음각되어 있다.
머릿부분에는 연꽃·하엽(荷葉)·용 등의 무늬가 삼각형이나 원형을
이루면서 돋을새김 또는 맞새김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랫부분은 대부분 연화대좌형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몇 개는 무늬
가 없이 평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경패는 12종의 경
(經)을 새긴 것으로, 《화엄경》 경패가 27개로 가장 많다.
이 경패들은 송광사에 보관하였던 대장경의 목함에 부착되었던 것
인데, 대개 초조대장경이나 거란대장경, 또는 해인사고려대장경 등
으로 짐작된다. 송광사에 전래되고 있는 원오국사(圓悟國師)의 <
노비첩(奴婢帖)>과 《동국이상국집》 권112에 실린 석복암(釋宓
菴;圓鑑國師)의 <단본대장경찬소(丹本大藏經讚疏)>를 보면, 송
광사에서 거란대장경을 소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송광사 경패는 거란대장경의 보존을 위하여 부착했던 경패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패들은 새김의 정교함 등에서 고려시대 대장경 호지(護持)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한국에서 그 유례가 없는
유일한 유물이다. 43개. 보물 제175호.
보물 제176호 <송광사금동요령(松廣寺金銅搖鈴)>,
보물 제204호 <송광사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삼현원찬과문
(松廣寺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
보물 제205호 <송광사대승아비달마잡론소(松廣寺大乘阿毘達磨雜
論疏)>,
보물 제206호 <송광사묘법연화경찬술(松廣寺妙法蓮華經贊述)>, 보물 제207호 <송광사금강반야경소개현초>,
보물 제263호 <송광사하사당(松廣寺下舍堂)>,
보물 제302호 <송광사약사전(松廣寺藥師殿)>,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와 노비첩(奴婢帖)으로 이루어진
보물 제572호 <송광사고려문서(松廣寺高麗文書)>
송광사고려문서 (松廣寺高麗文書)
고려시대 문서인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와 노비첩. 수선사형지기 1축은 백지에 먹으로 쓴 권자본(卷子本)으로 1221년(고종 8)부터 1226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짐작되며, 사천대(司天臺)의 관리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의 실태를 조사한 기록이다.
지정십사년노비문서 (至正十四年奴婢文書)
고려시대 노비문서로. 1354년(공민왕 3) 직장동정(直長同正)으로 있던 윤광전(尹光琠)이 적장자(嫡長子) 단학(丹鶴)에게 노비를 상속해 주는 증서이다.
오래 전해 내려오는 동안 크게 훼손된 것을 윤광전의 12대손 덕희(德熙)가 1755년(영조 31)에 장첩(裝帖)으로 꾸미고 표제를 <전가고적(傳家古蹟)>이라 붙였다.
내용은 이두문(吏讀文)으로 소지(所志)·입안(立案)으로 되어 있다. <소지>는 노비 상속에 대한 사유를 적고, 끝에 노비의 소유자·보증인·대서인(代書人)의 이름과 수결(手決)을 붙여서 작성한 것이고, <입안>은 당시 담당구역의 지방관인 탐진감무(耽津監務)가 이를 확인하여 상사의 결재를 신청하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송광사(松廣寺)의 노비첩과 함께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대의 희귀한 고문서로 노비의 양여와 이의 입안을 보여준다. 보물 제483호. 개인 소장
수선사형지기 1축은 백지에 먹으로 쓴 권자본(卷子本)으로 1221년
(고종 8)부터 1226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짐작되며, 사천대(司天
臺)의 관리가 수선사(지금의 송광사)의 실태를 조사한 기록이다. 내
용은 수선사의 창건연혁 및 가람의 배치상황을 적은 다음, 복전기
(福田記)라 하여 승려수와 재산목록이 적혀 있고, 보조국사 지눌(知
訥)의 비명이 실려 있다. 노비첩은 백지에 먹으로 쓴 낱장으로 1358
년(공민왕 7) 작성한 것이다.
원오국사(成悟國師) 내로(乃老)가 아버지 양택춘(楊宅椿)으로부터
받은 노비를 당시 수선사에 봉안한 거란본 대장경을 수호하기 위하
여 절에 바친다는 내용의 소지(所志)에 대해서 관(官)에서 인증한
문서이다. 2축(軸). 보물 제572호.등이 있으며,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8호 <자정국사사리함(慈靜國師舍利函)>,
제19호 <능견난사(能見難思)>, 유석(鍮錫)으로 만든 불기(佛器) 9개로 이루어져 있음.
제22호 <송광사금강저(松廣寺金剛杵)>,
제28호 <고봉국사주자원불(高峰國師廚子願佛)>, 그리고
제30호 <팔사파문자(八思巴文字)> 등이 있다.
송광사티베트문법지 (松廣寺-文法旨)
고려시대 티베트문 법지. 보물 제1376호. 1매. 크기 51.0×77.0㎝.
이 문자는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6대인 원감국사가 고려 충렬왕
의 명으로 원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의 세조인 쿠빌라이
칸으로부터 받아왔다고 한다.
번역된 내용이 없어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티베트 후기 밀
교가 물밀듯 들어온 몽고의 상황을 감안해 밀교와 관련되었거나, 원
감국사의 신분증으로 추정된다.
법지는 6장의 종이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밝은 황갈
색이며 종이의 두께, 색깔 및 필체 등으로 보아 원래는 1장의 문서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 소지자에 대한 신분과 신분보장, 신분
을 보장해줄 자들에 대한 명시와 협조요청, 문서 발급자의 증명부분
등이 내용이다.
송광사티베트문법지는 고려와 원나라의 활발했던 불교 교류사를 파
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송광사 입구
송광사의 봄
승보전
송광사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입구 삼청교와 그 밑을 흐르는 시냇물과 아름다운 건축물 그리고 뒤에 우뚝 버티고 있는 조계산, 등... 하나도 버릴게 없다.
승보전 단청
절로 불심이 솟아나게 만드는 경내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삼보사찰로서의 위용과 기품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