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더 차일드

이영주 |2006.09.30 03:10
조회 63 |추천 0

그래, 애들이 그랬겠구나

 

"한 여고생이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종종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가십같은 기사 한 줄. 그런 기사에는 예외 없이 철이 없어도 너무 없는 여고생에 대한 비분강개의 댓글이 이어지고 청소년들의 발랑 까진 성생활과 생명경시에 대한 통탄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멀찍이서 기사와 그에 대해 격분하는 댓글을 지켜보며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학교에서 피임교육이라도 제대로 시키면 이런 일 없을 것 아냐? 쯧쯧..." 혀를 차는 일밖에 없었다.

 

작년이던가 청소년의 혼전임신을 다룬 '제니, 주노'가 개봉 즈음 인터넷 게시판은 낳아야 한다, 말아야 한다 갑론을박 불이 붙을 때도 "저거 영화사에서 일부러 논쟁 붙여 홍보하는 거 아냐?" 하며 삐딱한 시선을 보냈더랬다.

더구나 장한 청소년 주인공들이 낙태가 아닌 출산을 결정하고 친구들의 축복 속에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영화도 보지 않아놓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소모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청소년 출산 논쟁이 사그러들기를 기다렸다.

 

청소년이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하든, 갓 태어난 아이를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든, 양육을 책임질 든든한 부모가 있어 용감하게 출산을 결심하든, "애들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야, 그래서 성교육이 필요하다니까" 하는 식의 꼰대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게 내가 한 전부였다.

 

그래서 그랬는가 보다. The Child 를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은.

'그래, 애들이 그랬겠구나.'

청소년들이 임신했을 때, 그리고 출산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한번도 그네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 부뤼노와 소니아에 밀착해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은 낯설고 신선한 끄덕임을 안겨주었다.

 

아기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워대고 유치한 장난을 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부뤼노와 소니아는 스크린에서 한번도 울지 않은 점잖은 아기보다 오히려 더 어려 보였다.

한번도 부모가 될 거라 생각하지도, 그래서 당연히 부모될 준비도 못했을 10대 소년 소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들이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나 부성애, 모성애를 당연히 느끼게 될 거란 생각은 얼마나 억지스러운 것인지.

더구나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게 월수가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폼나는 일이라 생각하며 사는 부뤼노에게 아이는 5천유로라는 목돈을 벌게 해줄 수 있는 교환가치를 지닌 선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지 멀쩡하면서 소매치기와 구걸로 입에 풀칠을 하면서도 죄의식 하나 없고 자신의 아이를 음성적인 입양브로커에게 팔기도 한, 준비되지 않은 아버지 브뤼노가 밉지 않은 건 왜일까?

아무리 사소한 친절이라도 자신에게 고마운 일을 한 사람에게는 'Merci'라고 인사할 줄 알고, 아이를 팔았단 소리에 사랑하는 애인이 실신하자 곧바로 돈을 돌려주고 아이를 찾아오고, 소매치기 공범 어린 꼬마가 경찰에 잡혀가자 스스로 경찰서에 가서 자수해서 자신이 구속되고, 그렇게 악하지 않은 부뤼노의 면면을 봐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다, 아니다.

부뤼노를 용서하지 못하는 애인 소니아의 냉대에 그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돌아나오는 그의 모습이, 아이를 되찾아오는 대신 두 배의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에게 몰매를 맞고 가지고 있던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빼앗기는 그의 모습이, 아버지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함에 대한 비난을 묻어버릴 만큼의 안쓰러움과 연민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브뤼노는 자신의 아이를 돈 몇 푼에 팔아버린 패륜을 저질렀으나, 그것이 잘못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사랑하는 소니아와 폼나는 커플룩을 입고 깔깔대며 사는 게 좋은 스무살 청년이었을 뿐이다. 어떤 냉대와 폭력에도 대응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무기력한 소년이었을 뿐이다.

 

이 영화의 홍보 전단을 보면 '아직도 우리는, 희망에 대해 생각한다'는 문구가 있다.

글쎄, 교도소에 면회를 온 소니아와 부둥켜 안고 흘리는 부뤼노의 눈물이 과연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의 눈물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출소해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그렇게 아이를 팔아버린 패륜범(!) 브뤼노가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희망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뤼노의 깨우침이 아니라 부뤼노와 소니아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The Child 의 카메라인지도 모르겠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