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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s pm 3:27

김인혜 |2006.09.30 22:02
조회 33 |추천 0

우리 사귈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네가 마음에 드는데, 넌 아니야?

 

......

 

난 너도 나한테 관심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보네.

 

선배는, 선배는... 휘진 선배랑...

 

아, 그거였구나. 또 종달새들이 쓸데없는 소리들을 해놨군.

그럼 휘진이랑 나 이미 끝난지 오래된 사이라는 얘기는 안해줬어?

 

그렇게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옷 잘 입고 예쁘고 능력있는 선배의 옛애인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여러모로 그는 학부 선배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 잠시 후 동대구 터미널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

 

몇 개월 만에 찾은 고향은 올 때마다 다른 색깔, 다른 옷을 입고 있다.

흘러간 추억을 떠올리며 달려온 길이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면 언제나 몸은 무겁기만 하다.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는 초등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같이 지낸 친구다.

얌전한 외모와는 달리 화려한 연애경력을 가진 친구가 결혼할 남자는 누구일까.

초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코 끝을 스친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예식장은 몇 년 전과는 또다르게 번지르한 외부공사를 한 모양이다.

마트에서 파는 기계식 초밥 마냥 찍어내듯 결혼하는 예식장 풍경은 여전하다. 차라리 성당이나 야외 예식장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정아~ 못 올지도 모른다더니 왔네~

 

멀리서 반가운 듯 달려오는 고향 친구 K.

언제봐도 모델같은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친구 K는 마치 자신의 결혼식이라도 되는 것 처럼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다.

 

너 오늘따라 더 예쁘다. 목걸이며, 구두며...

 

얘, 수아 신랑 의사잖아. 그 친구들도 다 의사일텐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신이 난 듯 온 몸을 들썩이는 K

 

어쩐지, 청첩장 사진을 보니 남자 얼굴이 영 아니더라.

 

좀 그렇긴 하지? 근데 뭐, 얼굴이 대수냐? 너 지난 번 모임 때 안 나와서 못 들었지? 수아 62평 짜리 주상복합으로 들어가잖니.

 

주상복합? 여기도 그런 게 생겼어?

 

그럼, 요즘 산다 하는 집은 죄다 그 동네로 이사가는데 뭘.

정말 부러워 죽겠다. 그래서 이 참에 나도 수아 신랑 친구들 중에서 한 명 물어보려구.

 

네 애인은?

 

몰라. 그 인간 얘기는 꺼내지도 마. 아무튼 이따 피로연 때 나 애인있는 거 말하면 안돼. 알았지?

 

K가 허황된 신데렐라 스토리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살핀다. 스물 다섯이 넘으면서 부터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엔 한심하다 생각하던 동화같은 결혼식을 나도 모르게 꿈꾼다는 것.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칙칙한 볼에 파우더를 덧바른다. 반짝이는 립스틱을 고쳐 바르다가 이내 지워버린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머, 하정언니!

 

졸업 후 한번도 못 본 대학후배가 부르는 소리에 핸드백을 놓쳐버렸다. 쏟아진 잡다한 물건들을 구질구질 주워 담는 손에 땀이 난다.

 

이런데서 다 만나네. 결혼식 온거야?

 

네. 언니 혹시...

 

친구 결혼식에 왔어.

 

나는 알고 있다. 내 말이 후배에겐 얼마나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지.

 

아, 저도 아는 선배 결혼식에 왔어요. 여기 백합홀에서요.

1시 결혼식이예요.

 

구구절절 결혼식 장소며 시간을 알려주는 후배.

 

언니, 저 먼저 가볼게요. 시간이 다 되었네요. 다음에 대구 오면 한번 연락 주세요.

 

1시에 있을 결혼식은, 그의 결혼식이다.

우연을 가장하기는 했지만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친구의 결혼식에 올 생각은 없었다.

현희가 무심히 버린 청첩장에서 고향친구의 결혼식과 같은 날짜, 같은 장소에서 그의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온 것이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는 곳은 2층. 백합홀은 1층이다.

시계는 1시 10분을 지나고 있다.

아마 지금쯤이면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식장 안으로 들어갔겠지.

스치듯 지나치려 한 백합홀의 열린 문틈 너머로 그와 신부의 뒷모습이 보인다.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가라앉히고 인파 속에 몸을 섞는다.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볼 때의 묘한 긴장감과 두려움.

만약 누군가가 나를 알아본다면, 얼마나 부적절한 상황이 연출될지 걱정하면서도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를 볼 수 있는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지루한 주례사가 끝나고 뒤돌아 선 그와 그의 신부.

주례는 학부 때 소묘 수업을 하셨던 교수님이다.

CC로 유명하던 그 시절. 만약 우리가 결혼하게 된다면 꼭 주례를 서주겠노라 약속하셨던 교수님이다.

아이러니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참에 몇 몇 사람들이 식권을 들고 빠져 나온다.

황급히 식장을 빠져 나온 나는 서둘러 2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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