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슬픈 영화를 돈 주고 찾아서 볼까?
엊그제 새드무비를 봤다. 쳇... 정말 새드무비였다.
초반부 해맑던 하늘에서 갑자기 여우비가 쏟아지던 그때부터, 각각의 등장 인물쌍들에게 이별이라는 먹구름은 일찌감치 찾아온다.
그리고...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슬픈 이별은 진행된다.
첫번째 커플. 진우와 수정.
진우는 불길만 보이면 말 그대로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열혈 소방관. 늘 죽음의 그늘을 안고 사는 진우를 애인으로 둔 수정은 사이렌 소리에도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며 진우가 소방관을 그만두길 바라지만... 진우가 열혈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둘의 사랑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부터 이별을 품고 있는 만남이다.
두번째 커플. 주영과 휘찬.
늘 바쁜 엄마 주영, 엄마의 무관심에 삐딱선을 타는 조숙한 아들 휘찬. 엄마에게 찾아온 불치병은 숱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별의 이유.
그들에게 이별은 필연이다.
세번째 커플. 수은과 상규.
청각장애에 예쁜 얼굴의 절반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사람 관계의 매개가 될만한 시각과 청각 모두를 상실한 수은에게, 상규는 모여라 꿈동산 스타일의 가면을 쓰지 않고는 다가서기 힘든 신기루일 뿐이다.
그래서, 용기 내어 상규 앞에서 가면을 벗은 수은은 떠나는 상규에게 가면을 씌워 안아주는 것으로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네번째 커플. 하석과 숙현.
연애한 지 3년. 3년째 하석은 백수고 3년째 숙현은 파트타임 알바다. 가난한 그들에게 볕들 날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사람이 사랑만 가지고 먹고살 수는 없는 법. 그들에게 이별은 3년의 시간만큼 야금야금 틈새를 벌여놓고 있었다.
처음부터 각 커플이 이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낸 영화는 제목처럼, 결국은 슬플 수밖에 없는 이별을 아무런 엇나감도 없이 보여준다.
젠장할... 조금도 참신할 것 없는 이별 장면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내리는 이 눈물은 또 뭐란 말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참 허탈했다.
전체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래서 더 슬픈 이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과 한 핏줄이라 할 수 있지만, 나름대로 세련된 척하려고 하면서 조금의 비틈도 없이 뻔한 새드무비의 공식을 따라가는 순한 길을 택한다.
게다가 사이더스 영화 아니랄까봐 사이더스 소속 스타들이 떼거지로 출연해주시니 그저 황송해 하면서 봐줄 수밖에...
또, 각기 다른 네 커플이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과 비견할 만하지만, 보다 훨씬 더 많은 커플들이 나오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촘촘히 섥혀있는 의 구성력을 좀처럼 따라가주지 못하고, 리얼리티 면에서는 한참 떨어진 동화같이 예쁘기만 한 비현실적 시츄에이션들은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래서 아름답다'는 뻔한 주제만큼이나 뻔하다.
그런데도 와 같은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질 것이다.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울고 싶은 관객이 존재하는 한. 자신이 주인공의 처지라면 인생 확 제껴버리고 싶은 끔찍한 이별과 슬픔을 찾아가서 훔쳐보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한.
'새드무비'가 흥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슬픔과 눈물이 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때문이란다.
카타르시스는 개뿔. 말이 좋아 카타르시스지, 인간이 가진 새디스트적 욕구의 해소일 뿐이다.
영화 잘 보고 펑펑 울고 와서 이렇게 씹어대는 나 역시 새디스트 기질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