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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유비를 두번이나 피한 이유는

이형근 |2006.10.01 16:07
조회 145 |추천 2

유비가 원소와 조조의 관도전을 피해서 형주의 유표에게로 피난왔을 때 대부분의 ‘관료’를 꿈꾸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유비는 조조와 원소, 여포와의 관계를 통해서 이미 ‘덕군, ’인군‘의 이미지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더군다나 난민 4천여명을 이끌고 서주의 도겸에게 간 것만으로도 난세의 민중들은 유비에 대한 막연한 ’구세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인물이 형주의 유표에게로 왔으니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표의 채씨일가는 유비의 그러한 ‘중원의 이미지’를 알고 있었기에 괜시리 형주에 오래 두었다가는 ‘황실일족’이라는 것만으로 그를 함께 하기에 도리어 유표의 지위가 약화될 수 있기에 유비제거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물론 유표의 형주에서의 파워에 대한 불안이라기 보다는 채씨 일가의 형주내에서의 막강한 권력 파워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때문이 더 큰 이유가 되겠지만 말이다.


형주에서 당대의 석학으로 불리우던 방덕공이 붙인 애칭 ‘와룡’으로 더욱 유명한 제갈량이라고 유비의 형주 입성을 왜 몰랐겠는가. 더군다나 ‘관중과 악의’를 꿈꾸던 야심만만 젊은이 제갈량이 유비라는 ‘당대의 군웅’의 등장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으리라는 것은 솔직히 말도 되지 않는다. 제갈량이 누구인가? 제갈현의 사망으로 아무런 인맥도 없이 홀로 동떨어진 형주에서 ‘백그라운드’에 대한 열망으로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덕공의 집 앞에서 3-4일동안 눈 맞아가며 청원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당대의 석학으로 이름높은 방산민, 사마휘로부터 배움을 터득했으며, 유표와의 인맥을 위하여 재주는 있지만 박색인 ‘황월영’과 결혼가지 한 야심만만 젊은이가 아닌가 말이다.


제갈량이 바라 본 조조라는 녀석은 서주에서의 그 대형참살로 ‘인간말종’에 지나지 않은 녀석이니 그가 모실 인물로서는 탈락이다. 오나라에서 3대째 그 굳건하게 인지도를 착실히 쌓아가는 손권은 이미 그 형 ‘제갈근’이 임관해 있으니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마의 형제처럼 모두 조조에게 출사한 것처럼 함께 임관할 수도 있으니 숙부 제갈현의 말마따나 ‘난세에 같은 군주에 형제가 출사할 경우 그 세력이 멸당하면 후세를 이을 수가 없다’라는 걱정도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럼 일차적으로 조조와 손권은 군주로서 제외대상이다. 그렇다면 이차는 형주에 같이 몸담고 있는 유표다. 하지만 제갈량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백그라운드’로 유표세력을 등에 지는 것은 이용했지만 유표에게 임관하는 것은 거절한다. 단순한 ‘음풍농월’하는 문인관료인 유표에게 천하통일을 향한 야망이 있으리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표가 죽고 유종이 후사를 잇자 유비에게 단호하게 ‘형주를 가지라’고 권한 것 아니겠는가. 형주의 잇점은 충분한데 유표는 그 잇점을 제대로 살릴 인물도 아니거니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에 부족한 인물이다.


그렇다 누가 있을까? 관도전으로 조조와 맞붙고 있는 원소가 있지만 이미 세력의 반이 꺾여서 하북으로 물러간 마당에 원소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다. 설령 박빙의 승부를 낸다 할지라도 곽가, 순욱, 정욱등이 조조에게 말한 ‘원소는 조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는 판단을 제갈량이 하지 못했을리는 없다. 저 멀리 보아서 후한의 반란 수괴 마등은 그저 촌뜨기로서 나대기만 할뿐 실력은 없다. 또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익주의 유장을 바라보아도 그저 익주에 안주하기만 바랄뿐 야심은 없는 소심한 군주일 따름이다.


제갈량이 제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보아도 ‘군주’로 삼을 인물은 없다. 난세에 이름을 날리고픈데 자신의 능력을 힘껏 써줄 재능있는 군주가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유비’라는 거렁뱅이가 원소의 손아귀를 벗어나 유표에게로 왔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유비라... 제갈량의 귀에 ‘유비’라는 인물은 대책없이 허황된 꿈만 꾸는 몽상가에 불과했다.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것만으로 ‘후한복고’라는 터무니없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관우와 장비라는 걸출한 인물을 거느린채 난민을 이끌고 다니며 머무는 곳마다 폐허를 만드는 공포의 메뚜기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는 순전히 ‘야심만만’ 제갈량이 가지는 생각일 뿐이었지, 수경선생 사마휘나 방덕공 등은 유비의 인물을 미리 알아보고는 서서라는 준재를 유비에게 임관을 시키는 등 유비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무던한 애를 쓴다. 제갈량이라고 사마휘가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마는 제갈량은 유비의 그러한 ‘허무맹랑한 몽상가적 기질’이 싫었을 것이다. 본래가 이치에 합당하고, 사리를 분별하고, 계획 타당성을 따지는 ‘이과계열’ 제갈량과 허물어져가는 꿈을 좇으며 믿는 것이라고는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간판 하나이며, 무너지고 패하고 도망쳐도 ‘후한복고’를 위해 일어나고 일어나는 몽상가적 ‘문과계열’ 유비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무계획적 유비는 계획적 제갈량이 맞을 수 있지만 계획적 제갈량이 무계획적 유비랑 맞을 리가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서서마저도 어머니를 위해서 조조에게로 임관하러 가면서 제갈량을 또다시 추거하니 제갈량으로서는 그네들의 방문이 달갑지 않음은 불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제갈량은 본디가 융중에 거하면서 ‘공부’밖에 모르는 서생이다. 그런 서생이 왠 ‘여행’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친구들도 왔다가 헛걸음하고, 심지어는 장인어른 ‘황승언’마저도 헛걸음을 한다. 그럼, 제갈량은 제멋대로 와리가리 하는 ‘방랑객’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난세에 ‘융중’을 벗어난 적 없는 제갈량이 떠나봤자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그리고, 마누라 황월영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솔직히 유비가 제대로 제갈량을 찾고자 했다면 여행을 떠났다 하더라도 어차피 갈곳이라고는 형주, 융중 근방일 것은 뻔한 노릇인데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찾고자만 하면 찾을 수 있는데 유비는 일부러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제갈량도 유비를 일부로 피했다만 유비도 제갈량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유비는 그러한 자신의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그런 생고생 노가다를 제갈량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제갈량은 유비에게 임관당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도망다닌 것이다.


그러데 왜 세 번째에는 잡혔을까? 공부만 하는 서생 제갈량이 ‘운동’을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의 말년을 보자면 페병을 앓은 것으로 보아 본디가 심약한 체질임을 알수 있다. 유비가 언제 오나 신경쓰고 그리고 따로이 공부하고 정세파악하고 하다보면 제갈량은 쉽게 피로할 수 밖에 없고, 더군다나 2번째 찾아왔을때에는 겨울이었다. 겨울 그 혹한의 추위에 몸을 숨기기 위해 다른 외지로 여행을 갔다 오려니 가뜩이나 심약한 체질에 피로가 누적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제갈량은 유비가 세 번째 찾아간 날 ‘잠’을 우연히 잔 것이 아니라, 그 피로를 풀기 위해 늘 낮잠을 자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제갈량이 육체적으로 심약한 사내였음은 그가 ‘사륜거’를 타고 다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장에서 곽가, 사마의, 가후, 정욱, 순욱, 순유, 주유, 노숙 등을 보자. 그네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전장에서 사태를 관망하면서 변화에 즉각 대응하면서 바로바로 전황을 타개할 계책을 마련해낸다. 하지만 제갈량은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간 적이 없다. 박망에서도 그는 ‘성’안을 지키면서 밖으로 나아가 전장을 살펴보지 않았다. 혹여 제갈량이 전장을 나간다하더라도 그는 ‘사륜거’를 타고 다녔지 말을 타면서 역동적으로 전장을 타개하지는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그의 심약한 체력부족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체력부족이든 계획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제갈량은 유비의 세 번의 방문을 통하여 유비에게 임관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제갈량은 ‘관중과 악의’를 꿈꿨을지언정 모실만한 주군이 없던 그 상황에서 허무주의적으로 유비를 택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천하통일의 자질을 지닌 주군이 아님을 알고서도 말이다.

 

Written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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