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병과 오래달리기 꼴찌
권혁우
|2006.10.04 09:43
조회 67 |추천 0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아주 싫어했다.
단지 축구는 좋아했다. 축구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 공을 보고 우루르 몰려다니면서
공도 제대로 못만지도록...
나는 골대 주변에서 "수비'임을 내세워서 편하게 쉬고 있다가....
우연히 흘러들어온 공을 멀리 차내서 위기의 팀을 구하는...
실사구실적인 영웅이 되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운동은 나와 거리가 먼 다른나라 이야기이었고,....
초등학교 때 한참때에는 100달리기에서 20초대를 끊은 기억이 있다.
당연히 고등학교에 오도록... 오래달리기 전교 꼴찌는 나이었다.
차라리 융통성이 있게... 다 뛰었노라고 말하고 안뛰어도 되었지만,
룰을 중요시하여서....
뛰지도 못하는 것이 끝까지 뛰고서 전교 꼴지 달리기 기록을 가졌다.
그러던 나에게....
군대의 추억은 아련하다.
훈련병 때, 이제 본대 배치를 앞두고,,, 몇몇 부대들이 훈련소에서
상태좋은 애들을 차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방송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불려지고
이유도 모르게 집합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훈련병들 사이에는 '수방사'에서 차출왔다는 둥,
'행정병'보직 받는 애들이라는 둥.....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 이름도 있지 않은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전공하는 1학년끝낸 훈련병...
나는 당연히 행정병 주특기 명단으로 알았다.
그런데,... 줄서서 기대에 찬 훈련병들을 보며,...
지나가는 고참 조교가 쫄따구 조교에게 물었다.
"애네 뭐야?"
쫄따구 조교 말하기를..
"애네 특공대 면접 대상자입니다."
오 이런~!!....
이렇게 해서 반강제 반지원으로
군의관 앞에서
"기관지염이 있고,
엉덩이에 자주 종기가 나서 수술을 3번이나 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절대 갈 수 없다고 우겼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너 갈래 안갈래?"
묻는 말에 기가 죽어서...
"가고는 싶지만,...."
하며 얼머무린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나는 내 옆에서 자는 녀석은
처음 들어보는 학교에 컴퓨터 전공하다가 들어온 녀석이
작은 아버지가 '안기부'에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그 녀석이
'oo군단사령부 컴퓨터병'으로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염없이... 대구 인근에 있는 OO시 ##산 중턱에 있는....
그곳 어르신 분들이 'HH에 있는 공수부대'로 오해하고 계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의 정예,
제 201 특공 여단
제 1특공대대
제1특공중대
제 3소대에 3분대에 배치되었다.
처음에는 실날같이 행정병보직을 받지 않을까 했지만,...
백면서생 같이 세상 물정 모르고
군대들어와서 어리버리한 내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하게 몸으로 때우는
'특공병'이었다.
처음에 들어올때 그랬다.
요즘은 특공부대 많이 죽어서...
공수교육도 파견나가는 일부 인원만 받고,...
여단 2바퀴만 돌고 거의 체육활동으로 시간 보내는 좋은 부대라고..
우리를 마중나온 여단 인사장교가 말했다.
나는 제발 진짜 그러기를 바랬다.
근데...
중요한 것은 여단의 크기와 위치이었다....
우리부대는 산중턱에 있어서 여단은 2바퀴 뛰면
거의 3km에 이르는 산길을 뛰어다닌 다는 것...
말로만 구보이지.... 전속력으로 언덕에 뛰어올라가다가
뒤쳐지면 조용히 고참에게 끌려가서
.......... 장난아닌 곳이었다.
물론 "훈련이 빡세면, 내무생활이 편해!"
라는 거짓말은 많이 들었다...
모두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거의 내 군생활의 1/3은
내무실이 아닌 야외에서 잠을 자거나...
내무실에 있는 때라면 육군에서 일반부대애들이 큰마음 먹고 받는
유격훈련과 비슷한 훈련을 1년에 4번씩 받고
유격은 유격대로 훈련하는
생활로 채워졌고,...
나머지 1/3은 5분대기임무로 전투복을 입고
새벽마다 비상걸어서 높은 사람들에게 사열받는데...
쓰여였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일반 군대와 비슷한 1/3은
짬밥이 안될 때에는 거울도 제대로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훈련 나가서,... 동물처럼 텐트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새벽 꿈에 '몽정'이라도 하는 셈치면,... 좁은 텐트에서...
고참들 잠을 깨우지 않고서 재빠르 속옷을 갈아입어야하는 불편과
이등병 때 적응못한다고 텐트 안에서 머리 박고 있던.....
그런 내무 생활이 있었다.
거의 내가 '바보'인가라며 하루하루를 생각했다.
밖에서는 안그랬는데... 왜 그렇지...
그런 나에게도 짬밥의 힘은 대단했다.
내가 군대에서 정확히 1년 8개월을 분대에서 중간이었지만....
야외훈련이 많은 우리부대 사정상....
진지에서서열이 중요한대 진지서열은 상병때까지 막내이었다.
꼬일때로 꼬였지만...
그렇게 힘들게 찬 분대장견장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일병때에는 내힘으로 태권도 1단 증을 땄다.
고참들이 나를 보고서,
"너는 아무래도 안돼!!"
라며 절망하면서 여기저기 찍고 오게하면서 굴릴때...
그렇게 가지고 싶던 태권도 단증.
왜 그렇게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말도 못하고
공중에서 해야하는 동작을 유격비슷하게 받는
oooo훈련 중에 자세 안나와서 고생하던 내가...
oooo훈련 중에는 여단장님이 내려오시니깐,,..
소대장님이 일부러 내가 계속 시범을 보이게 끔
패스트로프 타게 만드는 정도의 발전....
헬기레펠 때에는 일부러 후방하강이 예정되면
헬기 타고 산올라가라는 소대장님의 명령을 받을 정도의 발전....
물론 짭밥 먹고도 헬기에서
'전방하강'은 지금도 무섭고 아주 못하겠다.
'측방하강'은 그냥 미친적 하고 뛰었는데... 지금도 싫다.
그리고 공수교육에서 지상훈련의 종점
모형탑 강하는 지금 하라고 해도 싫다...
(그런데 나는 자세가 안나와서 이 훈련만하면 하루에 2-3은 뛰었다.
자세 불량.... 자신감 결여 등등....이유로)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했다.
특히 덩치가 산만한 후임병들을 보면서...
길에서 만났다면 무서워서 피해다녔겠지만...
그런 후임들을 지휘하고...
가르쳐주고...
또 같이 고생하고,
같이 웃고.
같이 먹고 자고 싸고.....
그러다 보니,...
남들이 느끼는 특공부대에 대한
비정상적인 생각보다는
나는 특공부대에서 그안의 사랑을 느낀다.
이런 말을 부대에서 들었다.
"특공인은 강하지 않다. 강해져 갈뿐이다."
내가 이등병 때에는 이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 전역을 하고 내 후임이 또 전역하고...
예전 소대장님들이 생각나는 지금 시점에서....
나는 '여단에서 11등으로 분대장 교욱을 마친 특공병'과
'오래달리기 꼴찌'의 기억을 오간다.
나의 고통스러웠던,...
풀뿌리를 잡으며 산을 기어오르며 대항군을 쫓던...
완수신호를 몰라서 옆 분대장에게 얻어터지면서 수색을 하던...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생각해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잘하지는 못했지만,
공부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아가는 기간....
그리고 대대장님의 칭찬 속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 경호작전 공로로 휴가를 나오던 일....
분대원들과 외출나와서 뽀대나게 돼지갈비를 먹이던 기억....
전역하면서...
후임들이 산아래로 훈련받으러 뛰어내려갈 때...
산 중턱에서 그들의 자랑스러운 어깨를 바라보던 것....
대대장님이 군생활 잘해주어서 고마웠다며 말씀하시던 것.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특공병과 오래달리기 꼴찌.......를
나는 영원히 이 기억을 간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