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들 입니다.
큰 딸.올해로 초등 6학년, 작은 딸, 초등 2학년 입니다.
엄마의 정신세계는 눈꼽 만큼도 닮지 않아서 반항이라고는 모르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천사들이어요. 그런데도 이 에미는 가끔 가다 군기 잡는다고 엄하게 야단 치는 바람에
애들이 세상에서 지 엄마가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일 사랑하는 사람도 "엄마"라고 합니다.
참 핏줄이라는게 그런 건가 봅니다. 정말 핏줄 땜 일까요? 밥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일까요?
각설하고,
드디어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긴 연휴는 정말 오랜 만인데요.
그덕에 바빴던 "릴리슈슈의 모든 것"도 잠시 쉬어갑니다. 정말 그 동안 너무 바빴어요.
제가 생긴 건 간 크게 생겼어도 소심하기란 개미의 "간"에 버금가는지라 길고 긴 연휴라고 해도
올타꾸나! 작심하고 여행을 내지르고 가본 적도 없고 뭐 그렇습니다.남들은 연휴라고 여행계획부터
세우는 것 같습디다. 소임이 막중하다보니 그런 것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풀리지 않을 미스테리로 제가 "결혼" 이란 걸 한 것과
것도 "맏아들" 에게로 시집 간 것과 14년을 이혼 안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제일의 미스테리로 친다니 저
도 놀랐습니다.
어쨌든 저도 거부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며느리이기 때문에
손 크신 시어머니 휘하에서 열심히 일가 친척들 "테이크 아웃"용 부침개,송편 기타 부산물들을
주방의 다양한 "툴"을 이용하야 제작해야 하는 수고를 올해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활기차고 아름다운 추석이 참 으로 기대되는 바에 지금부터 위장장애가 일어나려고 해서
아침부터 겔포스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요맘때면 도지는 신경성 위장장애!
물론 옛날보다 며느리에 대한 처우(?)가 개선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요 근래 동서가 새로 들어오면서 부터는 남자들이 밤은 좀 까 주더군요.
그 전엔 택도 없었습니다. 뭐 특이할 것도 없는 먹거리를 산만큼 높이 만들어서 두고 두고
연휴기간 동안 먹는 것이 일 인게 명절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조상의 은덕? 가족 간의 화합? 웃음 넘치는 대화 속에 익어 가는 가을의 들판?
저 처음에 시집 와서 하루 종일 부엌 일하고 정말 배가 고파서 어지럽더라구요.
차례상을 제작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추석'이브'부터 모여드는 일가들의 먹거리 공수 였습니다.
하루 세 끼를 휘황찬란하게 한정식집 수준으로 10인용 상을 다섯개씩 차려내야 합니다.
그것 뿐인가요. 중간 중간에 간식상,술상,과일상,커피상.....
그런데 여자들(사촌 형님들을 비롯한 가문의 며느리들)이 밥 먹을 생각을 안터군요.
겨우 밥 숟가락 들고 앉았더니 그 상이 어른들과 남자들 다 드시고 난 후의 상, 그리고 가문의 애들 다먹
고 남은 상이더군요. 우리 가문 한 번 모이면 한 40명 됩니다. 그 어마무지한 먹거리 공수하기는 차치하
고 나더라도 일꾼도 잘 먹여가며 부려 먹는 마당에
전 눈물하고 밥 말아서 남은 나물하고 대충 비벼서 먹었습니다.
이럴려고 대학 죽어라 다니고 엄마 속 썪여가며 결혼을 했나?
울면서 밥 먹고 있는데 그걸 본 사람은 남편 하나였어요.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관심 보이지도 않고
누구 하나 없어져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사실 시집 온지 얼마 됐다고..다 남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참 ,어이가 없었죠. 남편은 남편대로 너무 미안하니까 뭐라고 말도 못하고 ...
그후 세월이 흘러서 똑같은 일이 펼쳐지려고 할때 저는 3살배기 딸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는데
제가 밥 좀 먹으려고 어른께 애를 좀 맡기려 했더니 일가의 한 어른이
"니 새끼,니가 봐야지 어디 어른에게 애를 맡기냐!" 였습니다.
대한민국이 한편 얼마나 부조리한 땅입니까?
어떤 남자들은 큰소리로 떠드는 것 같더군요. 일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
그렇다면 남자들도 여자네 집에 가서 여자 한 만큼 똑같이 전 부치고 여자 조상한테 차례 올리십시오.
선처해서 추석 담날에 차례 지내도 되니까 말이죠. 여자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천둥벌거숭이도 아니
고 여자도 조상있습니다.
오늘 아침, 주말 드라마 여 주인공이 아주 시원한 소리 했는가 봅니다.
-명절은 가족하고 즐겁게 보내는 날 아니야? 넌 너네 집에 가고 난 우리집에 가면 되겠네!-
솔직히 너무 통쾌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또 인터넷에서는 왈가왈부가 많은 모양입니다.
정신 나간 페미니스트들이 뭐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이죠.
글쎄요. 제 성격이 하도 못되나서 웬만하면 일거리 만들려구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나이 먹으니 잔소리도 싫고 욕 먹는 것도 싫고.
그리고 세월 앞에 저도 무뎌져서 좋은 게 좋은 거야 하고 넘기고 맙니다.
해서, 제발 우리 딸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명절"을 겪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점심으로 오랜만에 컵라면을 먹으면서 명절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딸들과 나눠 봤습니다.
큰 딸은 속이 빤해서 엄마를 먼저 걱정합니다.
"엄마..기름 냄새 맡으시면서 일하시려면 힘드시겠어요."
사실, 어른들 기분 맞추기가 더 어렵고, 맏 며느리로서 구성원들 비유 맞추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린 딸의 위로가 힘이 됩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기분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반발이라도 할 수 있는 세대가 되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다짐 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명절" 이란 허울에 갇혀서
어쩌다 여성의 적으로 떨어졌는지.
며느리들 극기 훈련하는 "명절"은 쇄신 좀 해서 "진짜 명절"을 갖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이 땅에 여성들이 지낸 고통을 굳이 딸들에게 까지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우리의 명절도 이렇게 두기가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다리고 기다리는 명절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즐겁고 훌륭한 명절을 갖고자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들 모색해야 겠습니다.
여하간에 추석....잘 쇠시기를 바랍니다.
*추신: 제발, 가족들 좀 모였으면 차례 지내고 tv 좀 보지 말고 덕담들 좀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tv 보는 게 아름다운 우리 명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