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정수미 |2006.10.06 04:22
조회 51 |추천 0


슬픈 언어 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

 

 

 

Echo가 나르시소스에게 차디찬 거절을 당한 것은

자기 사랑을 전할 수 없는 그녀의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을 따라하는 말 밖에는 못했던 것이다.

 

 

본심과는 다른 언어 습관이 사랑하는 나르시스에게는

희롱으로만 느껴져서 결국 모욕을 주게 되었다

 

 

모욕당한 에코는 음부의 신 하데스에게 가서

복수를 청했고

나르시스는 하데스의 저주로

자기 자신에게 반해서 소유할 수 없는

연못속의 자기 얼굴을 사랑하다가

죽어간다

 

 

 

이 슬픈 신화 속에서

난 내 모습을

그리고 당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자기애가 강한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에게 주워진 저주는

사랑하는 남자를 악담하는 습관이다

 

 

아무도 그 여자가 그렇게 미치도록 욕하는 남자를

사실은 목숨을 다하도록 사랑하는지 모른다

 

 

자기를 주체할 수 없도록 뚫고 들어와서

자기 시간을 방해하고

자기 일을 방해하고

자기 대인관계에 충실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자기를 자기 아닌 다른 여자로 변형시켜가는

한 남자를

죽도록 미워하는 이유를 모른다

 

 

한 남자의 단 한 마디에도 상처를 받아서

훌쩍대는 어린애같은 자기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

 

 

한 남자의 숨소리에도 민감해져 돌아보면서

자기 몸의 통증은 거들떠도 보지않게 된

빼앗긴 심장에 대한 깊은 한탄을,

 

 

한 남자의 미소에 웃고

한 남자의 변덕에 안절부절하고

한 남자의 분노에 좌절하는

말할 수 없이 가벼워진 자신의 무게를,

 

 

한 남자에 대한 욕심에 눈멀어

평소의 자기라면 꿈도 꿀 수 없는 도박같은 행동을 하고

자기가 가장 경멸하던 짓까지 서슴지않고

거짓말도

그 어떤 사악한 행동도

거침없이 하게되는 자신의

그 말할 수 없는 수동적임을,

 

그 자기를 상실한 자리를,

 

견디다못해

 

한 남자를 증오하고

한 남자를 악담하면

버릴 수 있을까

 

끝도 없이 살의를 느끼며

그녀가 죽이고 싶어했던 것은

남자일까

무력해진 자신일까

 

습관처럼 자유롭다

습관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자유롭게

자유롭지 못하게

 

 

한 자기애가 강한 여자가

자유로운 언어 습관으로

자유롭지 못한 자기 자신을

구출해내려 했다는 것을

 

 

그만큼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알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