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피포
원제 : ララピポ
오쿠다 히데오 저/양억관 역 | 노마드북스 | 2006년 03월
"인생 뭐 있어?"
오쿠다 히데오. 벌써 3번째 만남이다.
전작인 공중그네, 인더풀이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중심으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이야기라면, 라라피포는 마이너리그의 '비주류인 인간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다.
프리랜서 기자, 카바레 클럽 스카우트맨, 에로배우가 된 주부, 노래방 알바생, 관능소설가, 테이프 리라이터 등의 6명의 각기 다른 직업의 다양한 캐릭터는 전혀 다른듯 같은 인물이다.
수많은 사람들ㅡa lot of people (라라피포)ㅡ사이에서 '소외된, 별볼일 없는' 인간들로서 무기력한 삶에 오로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본능적인 감각과 섹스로부터 얻어지는 것일 뿐.
삶에 대한 낙관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는 '이라부' 같은 인물이 이 소설에는 없다. 그들 각자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이 얽혀 결국 하나의 커다란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그네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비판받고, 조롱받는다.
오쿠다 히데오의 탁월한 묘사력 덕에 단숨에 읽어낸 책이었지만, 그 가벼운 기분과 함께 소설이 끝을 보이고나면, 어쩐지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언뜻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멍-해진다..
아마 이런 내 모습을 그가 본다면,
어디선가 히죽거리며 주절댈지도 모르겠다.
울건 웃건 어차피 인생은 계속되는 것.
그러니, 인생의 의의따위 따질 것 없이 편하게들 생각해.
역시 오쿠다 히데오, 이 양반=_ =!!!!
도무지가 걱정이라곤 없이 살 것만 같아.
속 편하지 그지 없는 인생관이다.
***
1편에서 6편에 이르기까지 단편과 단편 사이,
각각의 인물들이 연결되는 설정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책,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이어서 짐짓 당황스럽기도 함.
라라피포 / 오쿠다 히데오
What a fool believes
Get up, stand up
Light my fire
Gimmie shelter
I shall be released
Good vibrations
12
이유는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짚이는 데라도 나오겠지만 생각하기 싫어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12
혼자 지내는 게 편했다. 도쿄 중심가에 살면서도 실제로는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5
성취감도 충족감도 없다. 차라리 육체노동이라면 땀도 흘리고 기분도 좋을 것이다.
86
소박하고 평범한 여자일수록 변신욕구가 강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주기 바란다.
136
다음 순간 팟, 하고 텔레비전 화면이 꺼지듯 겐지의 의식이 끊어졌다.
144
마치 어린애를 부르는 듯한 그 손짓에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가고 만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걸어주는 순간, 허를 찔린듯 신선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남과 이야기를 누나눈 것 자체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살인에 대해 의논을 해와도 기꺼이 응했을 것이다.
146
어쨌든 요시에는 에로 배우가 되었다. 양심의 가책? 그런건 없었다. 오히려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날아갈 듯 기뻤다.
156
대체 누가 이 편지를 쓴 걸까. 직접 항의를 못하는 걸로 봐서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일 것 같다. 분노를 적절하게 발산하지 못하니까 이런 비뚤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다.
165
그러나 요시에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적이 없다. 생각하려고 해봐도 뇌가 거부한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지적하지만 않는다면 평생 잊은 채로 살아갈 수 있다.
168
더 이상 지킬 것도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어서 오히려 편안해진 것 같은 원초적인 해방감.
168
너무나 기막힌 이 상황에 감정을 표출하는 모든 감각기관이 일시에 정지되어 버린 것 같았다.
210
상대가 밀고 들어오면 그냥 물러서고 만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의 영역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고이치는 히키고모리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가 되고 말았다.
213
세상은 과연 넓다. 아마도 이 세상은 죄의식을 가지면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223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 인간이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이니까.
224
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이 가게는 완전히 무법지대다.
229
대체 이건 무슨 논리인가. 눈앞의 이 사내가 부럽기도 했다. 자신에게 이런 억지의 반이라도 있었으면....
269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로를 존경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얼마나 비참한가.
295
사유리에게는 궁지에 몰릴수록 힘을 내는 근성이 있다. 인생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봤자 자신은 60억 인구 중 하나인 별볼 일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편하다.
306
사유리는 마음속에 선을 하나 그어두고는 절대로 그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영역에 틀어박혀 있으면 상처받지 않고 아무에게도 공격받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 그렇게 살다 보니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그리 괴롭지도 않았다. 자신의 왕국 안에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315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는 성공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달성하지도 못했고 남한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보지도 못한 사람들. 타고난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용모도 받쳐주지 않고, 특별히 뭐 하나 자랑할 거라곤 없는 사람들. 그런데도 인생은 계속되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고 있을까.
324
재난이다. 남의 일이지만 마음이 아팠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 아래에는 지금 곤경에 처한 인간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