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신성모독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장미의 이름"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있어 "성서 감상문"을 쓰는 것과 대단히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나는 이 책에서 그만큼 많은 영향을 받아 왔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었고, 또한 그만큼 내 삶에 있어 많은 부분에 좋은 참고가 되어 왔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 자칭 자연주의자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리뷰에서 완전히 내 개인감정을 배제하고 쓸 수 없을 뿐더러, 예찬하는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하겠다. 비록 글은 글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여도, 움베르토 에코에 대한 언급 없이 장미의 이름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에코, 그는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나 현재 볼로냐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호학자로서 현대에 가장 저명한 인물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서도 평가받고 있다.
그는 "책을 읽기 위해" 10개국어 이상을 배웠고, 고대철학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껏 4개의 장편 소설과 2개의 동화를 포함한 다양한 저작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의 글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지를 포함한 전 세계의 신문과 잡지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받는다.
"장미의 이름"은 그가 쓴 첫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초판이 나왔고, 그가 쓴 여러 소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장-자끄 아노 감독이 연출을 맡고 숀 코너리가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로 분하여 1986년 영화화되기에 이른다. 일견 불가능하다고까지 칭해지는 영화화에 기여한 것은 장-자끄 아노 감독의 철저한 고증과, 제럴드 브러치 등의 각본가들이 힘써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초판이 나온지 24년이 지난 지금도 장미의 이름은 수많은 독자들이 꼽는 베스트 중에 항상 들어가는 책이며, 그것은 이 책이 지니고 있는 어떤 메시지가 단순히 한 시대나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닌, 전 시대에 있어 음미할만한 것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이후 "전날의 섬", "푸코의 진자", 그리고 2000년 선보인 "바우돌리노"가 연달아 나오긴 했지만, "장미의 이름"은 그 가치를 전혀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 있어 관심을 가지고 읽은 독자들이 주목하는 바는 주로 다음과 같은 포인트로 나뉘어진다 하겠다.
1. 치밀한 구성과 배경설정을 이용한 추리소설로서의 가치.
2. 중세의 분위기를 잘 묘사한 시대소설로서의 가치.
3. 엄격한 시대에 있어 "웃음"이라는 해학적 가치를 선택하고자 하는 철학소설로서의 가치 추리소설로서 "장미의 이름"은 훌륭하다. 이 소설의 트릭은 대단히 치밀한 것으로서, 실제 추리소설에서 나오는 살인장치로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물론 그 구성과 시간적 일치성은 더할나위없이 딱 들어 맞으며, 장서고라는 공간은 지금껏 여러 추리소설에 나왔던 그 어느 장소에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장치성을 가지고 있다.
시대소설로서 "장미의 이름"이 가지는 가치 역시 매우 훌륭하다.
에코 교수 자신의 연구에 의해 당시의 언어를 거의 그대로 복원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황과 대립교황이라는 시대상황에 맞추어 사건을 엮어넣음으로서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또한 중세적 무지와 맹신에 관한 근대적 화자 윌리엄 수도사의 입장을 통해 비판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이 책에 있어 가장 놓치기 쉬운 가치이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엄숙함"과 "해학"에 대한 가치의 비교가 이 책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코 교수가 엄숙함에 대해 패배를 선고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윌리엄 수도사의 입을 통해 분명히 말한다.
"이 영감이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한다. 진리라는 것이 죽을 맛이라고 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영감의 말을 믿을 것이 아니라 꼴을 믿으시라!" -장미의 이름 하권. 873페이지에서 인용 에코는 종교적인 엄숙함을 위해 해학을 적대시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일인가. 또한 맹종하기 위해 지식의 전달을 가로막는 것이 얼마나 삿된 일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단순한 추리소설로 읽는 것도 재미있고, 중세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 읽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철학적인 혜안은 언젠가 독자의 눈에 와 닿을 것이고, 독자의 마음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그것이 또한 이 책의 가치라고 하겠다.
위에서, 나는 독자들이 흔히 주목하곤 하는 "장미의 이름"이 가진 가치들을 세가지 언급했다.
그러나 나는 한가지 가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이 책에 있어 내가 발견한 가치는, 기호학자로서 에코 교수 자신이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의 의미에 대해 지나친 해석을 하려 하고, 그리고 그 해석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자조적 반성이 들어가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기호와 해석의 위험성은 에코 자신이 이후 "푸코의 진자"를 통해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내 준 바가 있으나, 장미의 이름에서 그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동적 인물(Protagonist)인 윌리엄 수도사 자신의 입을 통해 그러한 술회를 함으로서, 에코 교수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고뇌에 대한 토로를 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정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정점에 서있어서 더욱 중요하게 보이는, 자신의 분야에 진지한 고민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태도이며, "기호와 상징이 가져다주는 지나친 해석"에 대한 그의 주의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이기에 더욱 뼈아픈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혹은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데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 같은 것..." -장미의 이름. 하권 899페이지에서 인용 또한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빼놓지 말아야 할 사람이 한분 더 있다.
무려 세번이나 이 책을 번역한 이윤기씨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이윤기씨는 1986년 처음으로 이 소설을 번역한 것에 이어, 수백여에 달하는 주석을 붙이고, 어원을 찾고, 관련된 역사를 연결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 "장미의 이름"을 온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많은 부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이 없이 오직 번역된 "장미의 이름"만을 읽는다면, 문화적인 배경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 이 책은 그리 많은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정성 또한 대단한 것이다.
양장본으로 편집된 책은 들고 다니기에도 보관하기에도 실로 적당한 것이며, 번역자 이윤기씨에 대한 신뢰 역시 열린책들로 하여금 이 걸작을 한국어로 옮겨내는 명예를 얻을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치밀한 배경의 추리소설로서도, 머나먼 곳의 머나먼 과거를 조명하는 중세의 역사소설로서도, 진리에 대한 지나친 추구와 맹목의 두려움을 경고하는 철학소설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저가 에코교수가 보여준 자기 학문에 대한 의문과 끝없는 성찰 역시 기쁘게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권 897페이지에서 윌리엄 수도사가 아드소에게 전하는 말을 인용하며 리뷰를 맺고 싶다.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중략)...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 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에코 교수!. 당신은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그점에서 저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