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이다
생 은
얼 마 나 많 은
소 곤 거 림 으 로
가 득 한 가 .
스무 살이란 원래 막막하라고 있는 나이 같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있는 나이...... 어른들은 습관과 의무 속에서 살고
아이들은 충동과 잔소리 속에서 살며
스무 살의 나이는 몽상과 도주의 욕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설사 막막할지라도 슬퍼할 필요는 없다.
스무 살의 권리이니까.
경험하지 못한 나이에 대해서 섣불리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실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피상적이다.
그들이 얼마나 노련한지 혹은 서툰지, 늙었는지 아니면
아직 젊은지, 얼마나 안전한지 혹은 위험한지, 생에대해 진지한지
기만적인지 혹은 냉소적인지, 그리고 나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모든 것이 늘 오리무중인 것이다.
오리무중의 세상, 그것이 미경험의 나이이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하루 중 가장 슬프다.
그건 춥기 때문이 아니다. 저녁이라는 허방다리를 딛는 것 같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길 끝은 이제 막 영화가 끝난 거대하고 검은
영사막 처럼 보인다.
옛날엔, 아주 옛날엔 고래와 소와 하마가 한 몸이었다고 한다.
고래와 소와 하마가 같은 거울 속에서 세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 허구인, 고래이면서 소이면서 하마인 한덩이의
수수께끼인 나...... 나는 한덩이의 미분화된 나인체로
운행을 시작한다. 처음에 달이 그랬듯이......
그 어둡고 쓸쓸한 하나의 혹성이 제 운행 속에서
드디어 달이 되었듯이...... 나는 나를 운행한다.
사람은 살아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태어난다고 한다.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인 것이다.
(지구인들의 65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다고 한다.)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사랑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탄생과 함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만날 사랑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동안 사랑을 발견하려고 한다.
자기 속에 묻혀있는 사랑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그런느낌, 그런냄새, 그런눈빛, 그런 손의 형태, 그런손의 촉감......
수많은 사랑에 관한 이미지들을 나는 오늘도 찾아 헤맨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에 빠지면 그 모든것이 옛날에 일어났던
어떤 기억을 일깨우는 것같이 전율이 인다.
사랑은 그러므로 합리적인 갈망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본능이다.
우린 다들 초조해서 무언가를 한다. 심심해서 혹은 심심함이
불편해서. 아니, 초조는 심심함과는 전혀 다른 무엇을 갖고 있다.
심심한 것과 초조한 건 다르다. 초조는 막연한 무위가 아니고
뭔가 해내야 할 일에 대한 강박증이며 어쩌면 미경험의 처녀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혹은 무슨 일이든 일어나야 할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경험을 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초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험을 해버리지만 여전히 초조한 것이다.
첫 경험 뒤엔 다음 경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첫사랑을 떠올릴 때 화들짝 놀라고 이어 얼굴을 약간
붉힌 뒤, 막막하고 허술한 표정이 된다. 그리고 흔히 이런 관용구로
첫사랑에 관한 말을 시작한다.
'글쎄 그걸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첫사랑이란 실은 둘 사이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떤 억눌린
감정에 관한 추억인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간혹 있다.
첫사랑이 생에에 유일한 사랑인 사람들. 그런 확신이 단 한번으로
영원히 자신을 사로잡을 때, 명료하지도 않고 약속도 없는 하나의
이미지가 존재의 결계가 되기도 한다.
청 춘 의 시 기 에 는
누 구 나 고 아 가 된 다 .
청 춘 은 고 문 이 다 .
소녀들은 좀처럼 세정제를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소녀들을 보면 예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오래 전 나도 거울 속에서 그런 소녀의 얼굴을,
소녀의 가슴을, 소녀의 음부를 보았었다.
손톱만큼의 실수도 없이 손톱만큼의 상처도 없이 날렵한 손길로
단번에 봉인된 정묘한 육체.
꼭 닫힌 꽃봉오리처럼, 리본이 묶여진 선물상자처럼 달콤하고
풋풋하게 닫혀있는 육체, 아직 봉인된 생......
그녀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볼 때는 박하향이 터진 것처럼 눈이 시리다.
욕망과 호기심을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다. 혹시 욕망따윈
없는것이 아닐까. 욕망이란 호기심보다 좀더 전형화되어 있고
집단적이고 원형적인 것이고 반복적인 욕구 정도일지도 모른다.
욕망이든 호기심이든 그 정도를 이기지 못할 인간이 어디 있을까....
첫경험은 대개 형편없다. 하긴, 남자에게 첫경험이 무의미한
것처럼 실제로 여자에게도 첫경험이라고 해서 굳이 간직할 만한건
없다. 여자에게 첫경험이 소중하다는 건, 첫경험이 여자의 생을
지배하는 운명이라고 주장했던 지나간 시대의 말일 뿐이다.
첫경험, 그것은 단지 소통일 뿐이다.
이 단절된 세계의 틈에 머리를 들이민 밀통, 그쯤만으로도
첫경험은 훌륭한 배움이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눈을 본 일이 있다. 살속의 바늘이
영혼까지 찢어버린 것일까.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는 그저 느리게
아가미를 열었다 닫았다 할 뿐이었다. 야만적인 도륙 앞에
자신을 통째로 내맡겨버린 투명한 단추 같은 물고기의 눈......
간혹 어느 날 밤에는 그런 생각이 극에 달하기도 한다.
수면제를 치사량만큼 믹서에 갈아 맥주와 섞어 마시고 만유인력이
지배하는 이 궤도 바깥으로 튀어나가 버릴수도 있을까.
꿈속이란 흡사 간질병 환자의 발작 같다. 그것은 한 인간의 시작과
끝의 비밀에 닿아 있어서 도무지 뿌리뽑혀지지 않으며, 글자와는
화합할 수 없는 그 무엇 같다. 연기나 타버린 재가 이룬 형상처럼
손끝으로 건드리면 툭툭 무너진다. 꿈은 그런 것이다.
사회라는 것, 그것을 생각하면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듯하다.
투명하면서도 들어설 문이라고는 없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이상한 성..... 이 미지의 성으로 들어서는 일은 너무나 숨이 가쁘다.
십수 년을 묵으며 상자 속에 모여든 것 같은 천 조각들을 보면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이불 홑청을 뜨고 남은 것들이거나
저고리나 치마의 남은 천 조각들, 혹은 베갯잇이나 언니의 드레스나
블라우스, 또 방석이나 밥상보를 뜨고 남은 조각들......
그 각양각색의 빛깔과 질감과 무늬들에 취해 한 조각 한 조각
손바닥 위에 펴보고 상자를 닫을 때면, 내 가슴 속으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회오리쳐온다. 그것은 마치 차곡차곡 접혀져, 내 생의
어디선가에서,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을 삶의 낯선 얼굴을
미리 펴보는 것과도 같다.
- 전경린, 中 - 스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