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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곳(1)

최주희 |2006.10.11 14:10
조회 31 |추천 0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열기가 장백산을 품안에 꾹 껴안은 날이다.


산세가 엄장하고 험하기로 이름난 장백산.

수십만 여종의 기이한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으며 위로 뻗어있었다. 또한 가늠할 수 없이 높이 솟은 산은, 이미 그 허리춤부터 구름이 덮여있는 곳이기도 했다. 희뿌옇게 산을 감싼 안개는 그 신비로운 느낌을 한층 더했다.


깊은 계곡 속속들이 들어 가본 이도 없을뿐더러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 또한 없었다. 어떤 이는 장백산은 신선이 사는 곳이라 사람이 가면 죄를 받아 나오지 못한다고 했고, 다른 이는 장백산 곳곳에 요괴들이 살고 있어 근처에 가면 잡혀가 제물이 되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장백산은 그 누구도, 이름 꽤 있는 사냥꾼조차도 감히 들어가 볼 엄두도 못내는 신비로운 금역(禁域)이었다.


아래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울창한 숲과 일렁이는 구름에 가려 위쪽 봉우리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허나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장백산은 일천여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산채였다. 그 봉우리 중에서도 천하제일이 바로 이 천외봉이다.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

처음 이 봉우리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도, 만약 정상에서 아래에 펼쳐지는 광경을 내려다본다면, 그야말로 멋진 작명에 절로 손뼉을 마주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망망대해에 홀홀히 표류하는 작은 조각배가 볼 수 있는 것이 온통 바다뿐이듯, 천외봉에서 아래로 굽어볼 수 것은 부지런히 일렁이는 구름뿐이다. 천외봉은 구름이 만들어낸 바다 위의 작은 섬과 같았다.

인간세상과 자연적으로 격리된 곳.

일체의 선악에도, 희․ 노․ 애․ 락에도 초연한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는「또 다른 하늘」.

이는 천외봉을 묘사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운치 있는 이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허나 구름도 발아래에서 일렁이며 바다를 이루는 이 아름다운 절경에도 비롯하고, 한 가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었다.

장백산의 천외봉은 지상위에서 햇살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다.

이 사실도 왠지 신비하게 느껴지지만, 실사정은 전혀 다르다.

이 천외봉 위로는, 딱히 숲이라 불리며 그늘을 만들어줄 한 무리의 키 큰 나무들도 없었다. 구름아래의 산세와는 사정이 판이했다. 키 작은 앙상한 나무들과 누런 빛깔의 단단한 돌덩어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이런 고산지대인 경우, 그 높이로 인해 서늘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여기 이 천외봉은 저 깊은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용암이 소리 없이 울부짖는 곳.

뜨겁게 들끓는 지하수는 온천수로 탈바꿈했고, 언제나 산 전체에는 뿌연 증기와 열기가 넘쳐났다. 특히나, 여름의 경우엔, 가장 먼저 닿는 햇살을 피할 수 있을 만한 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덥다.

정말 덥다.



“헉헉.. 아이 더워!! 해님이 머리카락을 녹여버릴 것 같아……. 그렇지, 흰둥아??”

“멍!”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자그마한 손으로 제 머리를 쓱쓱 털어내며 말했다.

까맣게 구술거리는 숱이 많은 곱슬머리가 헝클어지며 아이의 붉은 뺨과 조그마한 어깨위에서 물결쳤다. 복사꽃처럼 고운 피부와 검은 머리칼은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이의 옆으로는, 키가 비슷한 하얀 털의 야호가 속도를 맞추며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흰둥이는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혀를 한자만큼이나 내빼고 헉헉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원을 빠져 나오자 찌는 듯한 햇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얇은 베옷을 입은 자신도 이렇게 더운데 털옷을 입은 흰둥이는 얼마나 더울까 싶어서, 꼬마는 조그마한 손을 모아 쥐고 야호에게 부채질을 해댔다.


“흰둥아, 흰둥아~ 덥지?? 덥지?? 내가 시원하게 해줄게!!”

“멍!! 멍!!”

  

사랑스러운 한 쌍이었다.

이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이 봤다면 너무 귀여워서 꼬마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만큼. 별로 손바람이 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야호는 주인의 성의가 고마웠다. 헉헉거리면서도 주인을 돌아보며 낑낑거리며 콧소리를 낸다.

흙길 주변 풀숲에서 노루나 토끼 등의 산짐승들도 눈에 띠었다. 사람과 맹수를 보면 놀랄 만도 하건만, 단지 익숙한 풍경을 보는 듯 간혹 힐끔거릴 뿐, 열심히 풀을 뜯어 먹으며 제 할일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찌는 듯한 더위도 소년의 마음까지 녹여 버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소년과 야호의 발걸음은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두근두근

가슴속에서 쿵쿵거리며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작은 귀에서도 크게 울렸다. 꼬마의 곱슬머리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울림을 털어 버리려는 모양이다. 영물인 흰둥이도 제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소년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 이외의 사람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부모이자 선생님이었고, 흰둥이가 유일무이한 친구였다. 그런데 지금 작은 소년은 ‘손님’을 마중 나가는 길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엄마, 아빠처럼? 키가 클까, 작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말을 할 수 있을까? 흰둥이처럼 멍멍 밖에 못하는 건 아니겠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팔랑 팔랑 걷는 동안, 어느덧 엄마가 말한 구름골짜기 노루바위가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왠지 길가의 풀숲이 더 파랗게 보이고, 어깨위로 날아가는 벌이 춤을 추는 것만 같다.






                        *                    *                   *







두시진 전인 오늘 아침의 일이다.

아침 식사 중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차례 티격태격 하던 아빠와 엄마의 작은 말싸움도, 밥그릇을 뺏어버린 엄마의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꼬마는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던 엄마표 사랑의 상징인 계란 부침을 서툰 젓가락질로 조심스레 찢어서 살짝 엄마, 아빠의 밥그릇에 올렸다. 그리고 해맑게(?) 씩 웃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자식을 앞에 두고, 밥그릇을 둔 상에서 다투다니, 교육상 안 될 일이지!’


냉기를 흘리던 엄마도, 풀이 죽은 채 끝까지 궁시랑 거리던 아빠도, 고무된 눈길로 사랑스러운 자식을 잠시 보곤, 한술에 밥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도화야, 아침 먹고 나면 도원을 지나서 저기 아래 구름 골짜기에 다녀 오거라.”

“도원 밖으로요?”

“그래, 구름골짜기 까지 내려가면 손님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한 시진 후 출발하면 네 걸음걸이로 볼 때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게다.”

“손님? …다른 사람이 오나요?!! ”


단영은 조용히 미소로 화답했다.


“정말이요? 정말이요?? 누가와요??”


도화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물으며 재잘 거렸다.

벌써부터 뺨이 발갛게 상기된 모습이 무척 신이 나는 모양이다.

그 틈을 타 한 조각남은 달걀부침을 향해 뱀 같은 젓가락을 스르륵 들이밀던 백아는, 단영의 철통수비 ‘젓갈방어 신공’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남은 밥그릇에 물을 들이 부어야만 했다. 단영은 사수한 달걀부침을 도화의 입안으로 밀어 넣는 치밀함을 잊지 않았다. 백아는 야속한 마눌을 째려봤다. 단지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의 몸부림이지만.

그렇게 그들만의 조촐한 아침식사가 끝났다.






                        *                    *                   *






도화는 저만치 구름고개에 서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한동안 말을 잊고 그 대상(?)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진한 소년은 사람들은 전부다 남자라면 아빠처럼 마르고 키가 작거나, 여자라면 엄마처럼 뚱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도 희고 주름도 있고……. 그때까지도 도화는, 사람은 전부 두 가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자신처럼 어린 아이와 다 큰(?) 엄마 아빠의 모습.

젊은 처녀의 모습을 태어나서 오늘 처음 보는 도화는 어리둥절했다.

더군다나, 그 대상은 어깨와 무릎이 훤히 들어나는 몸에 딱 달라붙는 화려한 붉은 색의 경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수려하게 재련된 물소 가죽으로 된 붉은색 조끼와 한쪽 어깨에 메어진 커다란 활까지! 그녀의 모든 것들이 어린 도화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리기에 충분했다.


“네가, …도화니?”

“네. 제가 도화에요.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이신가요?”

“손님? 그럴지도……. 부모님은?”

“여기 천외봉 꼭대기 저희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여기 있는 흰둥이는 제 친구구요!

 어머님 성함은 「위」자「단」자「영」자 이시고 아버지 성함은 「진」자「백」자「아」자 세요!”

“그래.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구나. 날 안내해 주겠니?”

“네!! 그러려고 여기까지 내려온걸요.”

“......고맙구나.”


올라가는 길 내내 소년은 연신 싱글거리며 수다스럽게 쫑알거렸다.

‘그렇지, 그렇지? 흰둥아!’ 라고 꼬마가 추임새를 요구할 때 마다, 옆에 있던 야호도  ‘멍!멍!’ 하며 장단을 타며 짓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말없이 있을 때는, 화가 났을 때 엄마의 냉랭한 느낌이 비슷했다. 그러나 무관심한척 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간혹 친절하게 대답까지 해주는 것이 아닌가! 도화는 마냥 이 손님이 너무 좋았다.

흰둥이와 지낸 세월이 10년이지만 흰둥이와는 한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 또한 소년에게는 첫경험 이였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한번씩 희미하게 웃는 손님의 미소가 어린 소년의 눈에도 몹시 아름답게 보였다. 그 미소를 자꾸 보고 싶은 도화는 쉴 새 없이 손님에게 쫑알거렸다. 이마위로 흐르는 땀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엄마 아빠 자랑을 하고, 어제 심은 복숭아나무 자랑을 하고, 흰둥이와의 재미있었던 사건들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두 사람과 흰둥이의 배경이 되는 주위 풍경이 점차 바뀌었다. 산길을 반 시진 쯤 올라왔을까? 흰둥이랑 둘이 내려올 때는 소년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그 길인데, 벌써 저만치 앞에 집을 둘러싸고 있는 복숭아밭이 엉덩이를 내보이고 있었다.


“복숭아밭, 아니지.. 저희 어머니는 도원이라고 부르는 곳이에요! 엄마 말로는 저기가 정말 위험한 곳 이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저기서 놀아서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소년은 정말로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끌쩍였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충고를 잊지 않는 도화였다


“여기서는 제 손을 꼭 잡아야 해요! 아님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여기 …손!”

“......”


도화는 손님을 향해 고사리 같이 작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 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작은 꼬마의 손을 잡았다. 그저 작은 꼬마의 손을 잡는 일일 뿐인데, 순수하고 따뜻한 성의를 받는 일일 뿐인데도, 한참을 망설이는 그녀였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 본 일이 언제였지…….’


도화는 작은 손가락에 더 힘을 주어 손님의 손을 꽉 잡았다.

녀석의 손이 참 따뜻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                   *





신궁선녀 한영.

그녀는 조준한 과녁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시야는 매보다도 넓었고, 빠르기는 범과도 능히 견줄 법 할 것이라고 호사가 들은 말한다. 신궁이라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활을 다루는 궁사다. 무서운 활의 정확도와 상상을 초월하는 사정거리, 더불어 그녀의 활을 쏘는 자태가 선녀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녀를 ‘신궁선녀’라 불렀다.

30대 초반의 한영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 한 편이었다. 활을 쏘기 위해 적당히 붙은 팔과 다리의 근육 그리고 봉긋한 가슴, 탄력적이고도 늘씬한 복근은 그녀의 수련의 깊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어 유감없이 멋진 몸매를 드러내주는 핏빛의 붉은 경장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들었다.

또한 찰라 간에 이루어지는 매끈한 탈궁과 과녁의 머리만을 정확히 가격하여 무참히 터트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 때문에, 그녀의 출수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된다.

손속에 인정이 없고 얼음같이 냉정하기로 소문난 그녀!

그런 그녀가 지금 평범해 보이는 예닐곱 살짜리 꼬마아이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향기로운   내음이 자욱한 복숭아밭 속으로 걸어들어 가고 있었다.

간혹 조잘거리는 꼬마를 향해 잠시지만 미소를 보이기도 하면서.


“여기가 입구에요. 따라오세요!”


‘헉!’

꼬마 녀석을 따라 한걸음 도원 안에 발을 들여 놓은 한영은 순간 너무 놀라, 혼이 달아 날 뻔 했다. 지옥의 광경이 이러할까!!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어린시절의 끔찍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는 그녀였다.


펄펄 끓는 용암이 군데군데 솟아오르는 음산하고 어두운 척박한 대지.

머리통이 박살난 괴물들이 엉겨 붙어 서로를 뜯어 먹는 끔찍한 광경!

한 놈이, 누렇게 고름이 흘러내리는 다른 괴물의 팔을 덥석 뜯어먹었다.

쿠오오오- 

팔을 뜯긴 괴물이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곧바로 자신의 팔을 뜯고 있는 괴물의 눈으로 푸욱 손을 쑤셔 넣었다. 그놈의 시뻘겋고 누런 눈알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지옥의 야차들!


신궁선녀라고 불리며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얼음마녀 한영.

그녀도 이 끔찍스러운 광경에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이를 잡고 있던 단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꼬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눈을 뜨세요! 보이는 것을 피하지 말아요! 정면으로 마주보며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계속 마음속으로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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