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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

이성결 |2006.10.11 17:19
조회 28 |추천 0


1906년 스페인의 지방 유지 집안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천재 예술가 `달리`

 

  그의 부모는 달리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지만, 보통의 부모가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의미의 기쁨이였다. 

 

달리를 3년전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첫째가 환생한 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잊지 못한 부모는 달리에게 죽은 자식의 이름은 `살바도르 달리` 를 그대로 붙이고 그 아이인양 키웠다. 죽은 형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고 형이 쓰던 장난감이 놓여 있는방, 자신과 같은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진 묘지는 어린 달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달리는 예술적 기질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여섯 살 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해 열 살에는 인상파 화풍의 풍경화를 능숙하게 그렸다. 이처럼  화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이 돋보이는데도, 달리의 부모는 "큰 놈은 천재였어. 그 애라면 더 잘했을 텐데" 라는 식의 무신경한 말을 계속했다.

 

  성장하는 내내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과 비교당하는 일은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달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그런 일들이 반본되다 보니 평소에는 내성적이다가도 때때로 격렬하게 감정을 폭발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벼랑으로 내몰린 그는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에 이르렀다. 염소똥으로 직접 만는 향수를 뿌라고 다녔으며, 전시회에 잠수복 차림으로 나타나거나, 세상을 뒤엎겠다며 40m 길이의 빵을 굽는 등의 미치광이 짓은 예사였다.

"나는 죽은 형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생" 이라며 저지른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달리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는 흐물흐물한 시계 그림, 비밀 서랍이 장치된 비너스 상, 자신의 것과 꼭 닮은 수염을 단 모나리자 그림 등의 독특하고 기발한 작품을 내놓는 동시에, 의상과 보석을 디자인하고, 오페라의 무대 장치를 제작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잇따른 도발적인 행동과 다양한 활동으호 달리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변화를 일으킨, 시대를 앞선 예술가로 평가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까지 얻어, `20세기의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달리는 마음의 흉터를 안고 오랜 시간 불행하게 살았다.

하지만 스스로 이를 치유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천부적 재능이 아낌없이 표출됐고, 결국 살아있는 동안 실력을 인정받아 명성과 막대한 부를 거머쥔 행복한 여술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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