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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박혜진 |2006.10.12 11:09
조회 81 |추천 0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세계관의 관계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이후 서구문명의 정신적 기초인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일차적 관심사가 인간중심주의와 합리주의이므로, 직접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사상은 아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독교 세계관 자체를 정면으로 공격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예술가나 사상가들은 계몽주의자 볼테르나 러셀처럼 기독교를 직접 비판하는 것을 그들의 과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 중 일부 사상가는 기독교 신비주의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대계 프랑스인인 자끄 데리다는 초기에 유대인 종교철학자 엠마뉘엘 레비나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부정신학에 대한 강연까지 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유대계 프랑스 사상가인 장 프랑소아 리오타르도 인간 이성으로써 서술할 수 는 없지만 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숭고한 대상에 대해 새롭게 증언하는 방식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과 특징


그러나 비록 포스트모더니즘이 절대자를 암시적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명시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기독교 세계관의 진리성을 의심하고 도전한다. 상대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게 기독교의 절대진리성과 가치관은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의 명시적 내용은 창조(creation), 타락(fall), 구속(redemption)의 세 단계로 이어지는 구속사적 사실이다.

첫째, "창조는 모든 존재와 인식의 기원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의 기초가 된다. . . 창조를 생각하지 않고는 그 후에 일어난 어떤 사건도 바르게 해석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논의는 창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둘째, "타락은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된 피조 세계가 오늘날 왜 이렇게 피폐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말해준다. 즉 타락은 역사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을 포함하여 모든 반역의 원천이 되었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 세계 사이의 관계를 훼손시켰다.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끊임없는 범죄와 수많은 반성경적인 세계관, 학설, 주장, 이데올로기의 기원이 곧 인간의 타락이다".

셋째, "구속은 피조 세계가 사탄이 왕노릇하는 타락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가 왕 노릇하는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의 궁극적 지향점을 제시해 준다. . . 회복으로서의 구속이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처음의 무흠한 상태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었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회복이란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 혹은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세계관의 특징으로는 종합성 내지 포괄성, 직관성, 개방성, 실천성 등을 들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수 천년 동안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가 기록된 성경이 세계와 인간과 역사와 사회와 가치에 대해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관점이다. 월터스가 세계관을"제반 사물에 대한 개인의 기본적 신념의 포괄적 체계"라고 정의한 것처럼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의 삶을 성경에 근거하여 일관성(coherence)있고 통일되게 만든다. 즉 기독교 세계관은 가치와 윤리, 예술과 문화, 성과 결혼, 노동과 직업, 사회와 국가, 지식과 학문, 과학과 기술, 이데올로기, 역사 등의 모든 영역에 일관되고 조화로운 대답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관을 가리키는 독일말인 '벨트-안샤웅'(Welt-Anschauung)의 의미처럼 아직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정밀하게 논증되기 이전의 직관성(intuitivenesss)을 갖는다. 즉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해 학문적으로 정밀하게 논증되기 이전의 직관적이고 신념적인 기독교적 관점을 말한다. 그래서 양승훈 교수는 세계관을 '공기'에 비유한다:

"세계관은 과학과 철학에 비해서는 논리적이지 못하며, 신념에 비해서는 의지적이지 못하고, 신앙에 비해서는 초월적인 면이 부족하지만 철학, 상식, 신념, 신앙 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기독교 세계관의 또 다른 측면은 '개방성'(openess)이다. 여기서 개방성이란 말은 두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기독교 세계관의 개방성이란 현실(차안)의 세계만 고집하는 무신론적 실증주의 세계관도 아니요, 피안과 내세만 주장하는 초월적 세계관도 아니며 양자가 서로 열려 있어서 교통이 가능한 세계관을 말한다. 이에 대해 전광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지상 차원, 현실 차원, 역사 차원 속에 닫혀있는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상을 넘어 천성, 현실을 넘어 내세, 역사를 넘어 피안의 세계를 말하고 수용하므로 '열린 세계관'을 얘기한다. 닫힌 세계관에서는 세계와 역사 바깥에 있는 신이 역사와 세계에 간섭하는 것을 부인하지만, 열린 세계관에서는 내세와 초월 계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세계가 이 역사와 세계에 영향을 주고 관계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개방성은 또한 기독교 세계관이 역사적으로 고정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의 상황에 민감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들톤과 왈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세계관은 무오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감히 우리의 세계관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세계관은 현실에 의하여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의 세계관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의 개방성은 다른 세계관을 무조건 무시하고 배타하는 입장이 아니라, 다른 세계관들에 대해 진지하게 경청하고 경쟁하면서 자기수정을 -비록 본질적인 차원은 아니지만 - 받아들일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와 공통점


기독교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세상 속에서의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주권의 확장을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는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음의 몇 가지 점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통합적이고 학문적인 세계관 자체를 거부한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진리나 한 사실의 고정된 의미와 목적을 거부한다.

셋째, 모든 사상을 문화적 배경으로 환원시키면서 그 주장의 진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교를 거부하지 않지만, 모든 종교를 개인의 취향과 자의적 선택의 문제로 본다. 따라서 기독교의 초자연적 계시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섯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윤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죄성을 거부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기독교와 친화성을 보여준다. 21세기의 선교를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기독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첫째, 양자는 과학주의적 세계관이 갖는 인간 이성중심의 학문보다는 인간의 신념, 의지, 정서를 중시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능적 이성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인간(격)성이라는 것이다.

둘째, 모든 진리는 역시 문화적 역동성 속에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진리와 문화를 동일시하지 않지만, 세계관의 내용이 문화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문화의 기능을 인정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의 대답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동안 기독교를 비지성적이고 비과학적인 과거의 종교로 치부하고 무시해 온 현대의 합리주의와 지성주의, 기술만능주의와 낙관주의를 안으로부터 허물고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생각이 자기기만과 착각이라는 사실을 현대주의가 부인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성장의 한계, 생태계의 위기,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불안정, 선진 산업사회의 인간소외현상과 정신병 및 자살의 증가, 뉴미디어와 첨단기술을 통해 일어나는 부작용 등은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한 20세기 후반이나 다가올 21세기의 세상 역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죄에 의해 타락하고 혼돈이 지배하는 현실임을 인정하게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치부가 드러난 모더니즘의 무신론의 형편을 이미 시편기자는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리로다"(시편 2: 4)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포스트모던 문화가 범람하는 사회에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논리적 변증을 통해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포스트모던의 회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문화에 길들은 세대에게는 자신을 비워 죽기까지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느끼게 하고 실제로 경험하게 해야 한다. 미래의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을 체험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무조건 정죄하기 전에 상처받은 후기현대인의 자기분열적 상태를 이해하면서 복음을 통한 치유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기독교의 논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요한일서 3:18) 해야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특성과 포스트모던 세대의 상상력과 느낌과 체험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진리와 사랑을 보여줄 때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기 위해 첫째, 삶의 전 영역에 일관된 답을 줄 수 있는 통합적인 체계로서의 기독교세계관의 전개, 둘째, 기독교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열린 자세와 겸손한 인식, 셋째, 기독교 세계관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세계관의 선구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미 19세기 말에 세계관이 단순한 지식체계가 아니라, 삶의 통합과 실천을 가능하게 해주는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life and world view) 또는 '삶의 체계'(Life-system)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출처 :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독교적 해석' -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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