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절망이 찾아왔다. 그리고 희망이 시작되었다.
비극의 가족사를 새로운 희망으로 채우는, 매혹의 휴먼스토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마지막 장편 3부작, 그 첫 번째 이야기
『개인적 체험』『만연원년의 풋볼』『하마에게 물리다』 등 탁월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그린 작품들을 발표하며 현대 일본문학을 이끌어왔던 일본의 대표적 작가이자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마침내 그가 소설가로서 ‘마지막 장편 3부작’이라고 명명한 작품이 출간되었다.
1935년에 태어나 20대 초반 불문과 대학생으로 등단한 이래 49년간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왔던 노작가가 이제 인생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3부작 소설을 내놓은 것이다. ‘3부작’은 긴밀한 내적 연계성을 가지지만 완전히 독립된 세 편의 장편소설로, 그 중 첫 번째 책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체인지링』이다.
(이어지는 『우울한 얼굴의 아이(憂い顔の童子)』(2005), 『책이여, 안녕!(さようなら、私の本よ!)』(2005)은 2007년 출간 예정이다.)
세계적인 문호 오에 겐자부로, 50년 작가인생의 총결산
『체인지링』은 오에 겐자부로의 처남이자 오랜 벗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쓴 모델소설이다. 이타미 주조는 《담포포》《민보의 여인》 등 총 10편의 영화를 연출해 9편을 흥행에 성공시키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았으나 노년이 되어 자살했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오에 겐자부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 친구로 오에 겐자부로가 문학과 예술에 눈뜨고 소설가의 길을 걷도록 이끌었던 인물이다.
『체인지링』은 한 남자의 자살과 남은 가족이 겪은 고통, 커다란 상처를 남겼던 성장기의 기억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면서도, 절망과 체념으로 끝나지 않고 비극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으로 승화시킨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이다. 체인지링(Changeling)이란, 아름다운 갓난아기가 생기면 요정이 보기 흉한 아이와 맞바꿔놓는다는 유럽의 민담설화에서 비롯된 말로 ‘요정이 바꿔놓고 간 흉한 아이’를 가리킨다. 작품에서는 이타미 주조가 모델이 된, 너무나 아름다웠던 한 소년이 성장기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진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을 상징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호한 오에 특유의 소설기법은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며,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에 나오는 실물사진(본문 306쪽)은 충격적일 정도이다. 또한 벗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저자 서문에서의 감동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읽는 이에게 진한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 그리운 시절 속의, 언제까지나 순환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여 나는 몇 통이고 몇 통이고 편지를 쓴다. 이 편지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당신이 사라진 현세에서 내가 삶의 마지막까지 써나가게 될, 이제부터의 일이 되리라. _ 본문 219쪽 중에서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를 정교하게 엮어낸 감동의 대작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과 이익집단의 수년간의 비난과 협박에 지친 세계적인 소설가 고기토, 어릴 때부터 빼어난 재능을 그대로 드러냈던 사람으로 고기토의 오랜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이기도 한 영화감독 고로, 어린 시절 아름다운 오빠에 대한 애정과 무력감을 함께 안아야 했던, 어머니 같은 아내 치카시,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 아카리, 그리고 비밀의 열쇠를 쥔 여인 우라.
『체인지링』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한 남자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섬세한 필치와 퍼즐을 풀어가듯 전개되는 스토리 구성으로 높은 완성도가 돋보이며, 재미와 감동을 전해주는 뛰어난 퀄리티의 작품을 찾는 독자들이 반가워할 만한 책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오에 특유의 독자적인 이미지와 문체로부터 보다 대중적인 감각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특유의 방식을 더욱 심화시킨 끝에 탄생한 『체인지링』은 한결 쉽게 읽히지만 더욱 성숙해진 문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기 일주일 전 보내온 논문에서 베토벤이 마지막 생애에 자신의 음악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남긴 것을 인용하며 ‘후기작품’을 고찰한 것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한 오에 겐자부로가 만년의 소설가가 해야 할 역할은 불안감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말했듯이 『체인지링』에서도 ‘후기작품’의 의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3부작’은 세계적 문호가 만년에 남기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저작이 될 것이다.
★ 책의 내용
“나는 건너편으로 가네. 하지만 자네와의 교신을 끊겠다는 건 아냐”
일본의 유명영화감독이 어느날 밤 빌딩옥상에서 추락사했다. 사인은 자살. 그의 오랜 벗이자 매부이기도 한 세계적인 작가 고기토는 고로의 자살소식에 충격을 받고, 자살동기를 둘러싼 매스컴 보도에 가족들은 큰 상처를 받는다. 의문투성이인 고로의 자살동기에, 고민에 빠진 고기토에게 녹음테이프 상자가 배달되고, 테이프에서는 그리운 친구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친구는 고교 2년 무렵 그들의 첫만남을 비롯해 추억을 하나둘 꺼내놓고, 고기토는 매일밤 자신의 서재에서 테이프를 들으며 그와 대화를 나눈다.
오빠는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편, 고기토의 아내이자 고로의 여동생 치카시는, 고블린에 의해 얼음아기와 바꿔치기 된 동생을 구하러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유명 동화작가 모리스 센닥의 『Outside Over There』를 읽고 자신의 가족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과 아름다운 외모에 밝은 성격의 소년이었던 오빠가 고교시절 어느날 밤 매우 지친 모습으로 나타난 이래 그늘진 낯선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온 치카시. 그녀는 그날 이후의 오빠가 체인지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날의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날 오빠와 함께 있었던 고기토와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신이 어머니 대신 아름다운 시절의 고로를 낳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아이는 머리에 커다란 혹을 달고 나온 중증의 장애아 아카리. 그녀는 절망한다.
쿼런틴(quar․an․tine: 격리, 고립화)의 100일
수십 년간 자신을 비꼬는 한 신문기자와 우익집단에 의해 심신이 지쳐 있던 고기토는 테이프 속 친구의 권유로 독일 베를린으로 100일간 여행을 떠난다. 베를린에서 고로와 연결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살 전 고로의 삶에 대해 알게 되고 고로의 죽음의 단서도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50년 전 고향마을 마츠야마에서 고로와 함께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떠올리고, 고로는 고기토가 그 사건을 글로 써주길 바라고 있음을 깨닫는다.
고통스런 밤! 마른 피가 얼굴을 간질이고…
패전 이후 미점령기 7년이 되던 해, 고등학생이었던 고기토와 고로는 한 우익집단의 모임에 본의 아니게 참석하게 된다. 모임의 리더였던 다이오는 연회를 열고 고로와의 하룻밤을 미끼로 미군 장교 피터를 끌어들여 점령군이 소지한 무기를 빼내려 시도한다. 일본국민의 무장저항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미국과의 강화조약이 발효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그들은 일본국민의 자존심을 위해 탈취한 무기를 들고 미군 캠프를 향해 목숨 걸고 돌진할 계획을 세웠던 것. 고로가 이용당하는 것을 걱정한 고기토는 고로와 함께 모임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결국 혼자 나오고 만다. 그리고 뒤이어 돌아온 고로. D-데이가 오고 둘은 귀를 기울여 라디오 뉴스를 듣지만 정작 그날은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연회가 벌어졌던 날 두 시간 동안 혼자 남겨졌던 고로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결국 50년 뒤 고로가 자살한 이후 그날의 사건을 고스란히 담은 한 편의 시나리오가 그의 유품으로 발견되고 고기토의 손에 전해진다.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아이를 낳는 거야!”
평생을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카리는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작곡을 하고 유명해진다. 치카시는 체인지링이었던 아카리가 음악을 통해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본모습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되찾고 싶었던 또 하나의 체인지링, 고로. 남편 고기토가 베를린에서 돌아오고 3개월 정도 지난 어느날 치카시의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죽어버린 자들은 그만 잊도록 하자. 살아 있는 자들조차도.
그대들의 마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로만 향해주기를.
― 본문 368쪽 중에서 (월레 소잉카의 『죽음과 왕의 마부』 마지막 대사)
★ 차례
『체인지링』을 위한 서문 / 프롤로그_ 물장군의 규칙 / 제1장_ ‘쿼런틴’의 100일―1 / 제2장_ 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 / 제3장_ 테러와 통풍 / 제4장_ ‘쿼런틴’의 100일―2 / 제5장_ 시험하는 자라 / 제6장_ 훔쳐보는 사람 / 에필로그_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 / 옮긴이의 글
★ 저자 소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년 에히메 현에서 태어났다. 1954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57년 대학신문에 발표한 『기묘한 일』로 ‘미시마 유키오 이래 가장 뛰어난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듬해에는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등단 후 탁월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불안과 당혹감 등 실존의 문제를 사회문제와 결합하는 특징을 지닌 작품들을 줄곧 발표해온 그는 1967년 다니자키상, 1985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등 일본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전후세대의 대표적 작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1994년 『만연원년의 풋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특히 그는 ‘일본의 양심’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본사회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거침없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 『개인적 체험』, 『핀치러너 조서』, 『동시대게임』, 『치료탑』, 『레인 트리를 듣는 여자들』 등이 있다.
옮긴이 서은혜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도리쓰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에 재직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고려원, 1996), 와타나베 히로시의 『오에 겐자부로론』(전주대출판부, 1997), 가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창비, 1998), 시바 료타로의 『세키가하라 전투(전5권)』(청어람미디어, 2002),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청어람미디어, 2003) 등이 있다.
★ 본문 중에서
“여기 인간의 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육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거잖아? 내가 자란 산동네에서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어. 인간이 죽으면, 말하자면 육체로서의 인간이 죽을 때 혼은 육체를 떠나 골짜기의, 항아리 안쪽 형태와 닮은 어떤 공간을 올라가지.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며 올라간대. 그 위에서 자기에게 정해진 수목의 뿌리 부근에 착지하게 돼.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올라왔던 나선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하강하기 시작해. 그건 새로 태어날 아기의 육체로 들어가기 위해서야.” ― 프롤로그_ 물장군의 규칙(본문 28쪽)
“아마도 고로는 그런 의연하고 강직한 인간으로서도 극복할 수 없는, 인생 전체를 관통한 ‘과제’의 무게에 짓눌려 죽은 것이겠죠. ……그것이 어떤 과제였는지 저는 몰라요. 다만 마츠야마에서 당신과 둘이서 그야말로 기진맥진하여 돌아왔던 한밤중부터 고로는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어떤 일이었나요? 하다못해 당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절대로 거짓을 섞지 말고 꾸미지도 숨기지도 말고 글로 써주시지 않는 한, 저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겠지요. 저는 물론, 당신도 이미 인생의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니 거짓을 말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고, 그대로 쓰기도 하면서…… 끝내주세요. 아카리가 시코쿠의 할머니께 말했듯이 ‘정신 차리고 힘차게 죽기’ 위해서라도 제발 거짓이 아닌 것만을 용기 내어 써주세요.” 치카시는 꼿꼿이 세우고 있던 고개를 돌려 강한 눈빛으로 고기토를 바라보았다. ― 제2장_ 인간, 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본문 138쪽)
어째서 고기토는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통풍’을 가져온 폭도들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을까? 최초의 습격 때 이미 고기토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어디에서 온 자들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건을 표면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는 그들의 방법이란 게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만약 고통을 당하는 대상이 자신의 발만 아니었던들 이 ‘습격’ 자체가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유치한 게임으로 받아들여질 수준이었고, 게다가 이 일이 또다시 되풀이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괴할 정도의 뻔뻔스러움을 지닌 놈들이었고 자신들이 하는 짓에 대해 작은 신념마저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습격은 시간을 두고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그로 인해 고기토의 왼쪽 발은 골격이 망가져 그의 인생의 유일한 취미였던 수영조차 풀에서 남들 눈에 띄는 것이 두려워 포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 제3장_ 테러와 통풍(본문 141쪽)
그런데 고기토는 말야,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지만 최근 30년 정도 독자를 생각해서 주제나 글쓰기 방식을 택한 흔적이 없어! 자네는 소설의 초고를 쓰고 나서 계속해서 날마다 하루 열 시간씩 일을 하면서 그걸 완전히 고쳐 쓰지? 당연히 문장은 읽기 힘들어져가고. 분명히 연마되어가긴 하지만 자연스런 호흡이 아닌 인공의 음악이 되거든. ‘이화異化’라고 하는 자네가 자신 있어 하는 수법도 말이야, 페이지마다 낯선 이미지와 맞닥뜨려서야 어떤 독자가 같은 작가의 책을 한 권 더 살 마음이 들겠냐고. 이것도 자네의 용어법이지만 노작勞作이란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 독자에게 시킬 건 아니지. ― 제5장_ 시험하는 자라(본문 216쪽)
그해 4월 28일, 오후 10시 30분부터 한 시간, 고기토와 고로는 NHK에 주파수를 맞춘 라디오 앞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임시 뉴스가 방송되는 일은 없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결론지은 고로는 고기토더러 기념사진을 찍어두자고 말했다. 그는 새아버지에게 받은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일 년 동안 고기토에게 불어를 가르치면서 칠판 대신 고로가 텍스트를 옮겨 써서 설명한 종이, 고기토가 그 번역문을 적은 종이가 잔뜩 있었다. 그것들을 늘어놓고 가운데 거울을 두어 고기토의 옆얼굴이 거기 비치기도 하는 구도를 고로는 생각해냈다. 다 찍고 나자 새벽이 가까웠다. 고기토는 고로에게 네 사진도 찍어두자고 제안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나는 아마도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너는 카메라보다는 만년필로 일을 할 테지? 그러니까 너는 차라리 문장으로 나를 기억해줘.” ― 제6장_ 훔쳐보는 사람(본문 305쪽)
“만일 네가 죽어도 내가 다시 한 번 낳아줄 테니 괜찮아.”
“……하지만 그 아이는 지금 죽어가는 나와는 다른 아이잖아?”
“아니요, 똑같아요.” 하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네가 나한테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보고 듣고 한 것, 읽은 것, 해온 일, 그것을 모두 다 새로운 네게 이야기해줄게. 그리고 지금 네가 알고 있는 말들을, 새로운 너도 이야기하게 되는 거니까 두 아이는 완전히 똑같아.” ― 에필로그_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본문 353쪽)
아카리는〈Gorō〉라는 제목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을 써서 외삼촌을 애도했다. 그 곡을 만듦으로써 아카리는 자신이 잘 이해할 수조차 없는 슬픔과 공포로부터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고로의 죽음은 고기토를 괴롭히고 물장군에 탐닉하게 만들었지만 마침내 남편은 바깥쪽 저 너머의 일을 거짓 없이 쓸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남편에게 소설가로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주리라.
― 에필로그_ 모리스 센닥의 그림책(본문 3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