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이원일의 '표절' 논란을 바라보며
--- 표절은 분명 잘못, 하지만 그의 미술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해서는 안 될 것
‘대리번역’과 ‘표절’이 출판계와 미술계를 강타하고 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무려 100만 부 이상을 팔아치운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한경BP)가 대리번역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불명예’의 바톤을 미술계가 이어 받을 채비를 하고 있다.
기자의 취재수첩에 따르면 지금쯤 큐레이터 이원일 씨(46)는 홍콩에 가있을 것이다. 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안 아트 포럼(www.microwavefest.net)에 패널로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9월 5일 개막한 상하이비엔날레, 10월 17일 열린 제4회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공식 개막일은 10월 18일이지만, 언론과 미술인을 대상으로 하루 일찍 열린다)를 마친 그로선 강행군인 셈이다. 그를 알고 지내는 나로선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라도 잠시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는 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비행기 안에서 그의 머릿속은 온통 10월 18일자 《한겨레》 기사로 복잡했는지도 모른다. 10월 18일 아침, 미술인들은 미술계 소식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대문’에 걸려 있는 보기 드문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표절 불감증… 이번엔 국제 망신살’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상하이 비엔날레의 작품 도록에서 이원일 씨가 쓴 서문 뒷부분이 네덜란드의 평론가 헹크 슐라거 씨의 기존 글에서 가져왔다.
2. 이씨가 옮겨온 (것으로 보이는) 글은 슐라거 씨가 부산비엔날레 국제미술학 세미나(2005년 4월)에서 발제한 ‘아시아 비엔날레의 발전 방향’이라는 글이다.
3. 상하이비엔날레 조직위는 슐라거 씨의 항의를 받아들여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글을 삭제하고, 도록을 다시 준비하고 있다.
4. 이에 대해 이씨는 “번역자를 시켜 영역을 시켰는데 인용각주를 실수로 빠뜨렸다”고 해명한 뒤, “슐라거 씨에게 이메일로 사과했다”고 말했다.
▶▶ 입체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눈도 필요
들리는 바로는 슐라거 씨는 국내 미술저널 중 하나인 《아트 인 컬쳐》 편집부 측에 “이씨가 자신의 발제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해당 미술저널에서는 너무도 ‘민감한’ 사안인지라, 당사자 이 씨의 확인을 거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아트 인 컬쳐》로선 당연한 일처리로 보인다. 한 개인의 거취와 성패가 달려 있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제아무리 저널(언론)이라고 해서 특정인의 ‘입’만 바라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으로 인해 이원일 씨로선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큐레이터로서 평생에 한 번 맡는 것조차 힘든 국제 비엔날레를 한 해에 두 개씩이나 치러내느라 시간에 쫓긴 탓일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건 분명하다. 게다가 얼마 전 교육부총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김병준 부총리나 최근 ‘대리번역’ 논란으로 뉴스의 중심에 떠오른 방송인 정지영 씨(31)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공인으로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물론 미술계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보다 입체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슈라거 씨는 다른 해외 미술인과 달리 몇몇 국내 미술인과 절친한 몇 안 되는 인물. 다소 과장된 억측일 수 있지만, 이번 논란이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난 데는 최근 들어 국제 미술 무대에서 승승장구해왔던 이원일 씨를 향한 일부 미술인들의 보이지 않는 ‘반감’도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이씨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를 들이대더라도 결과적으로 ‘표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그 동안 이씨가 거둔 여러 가지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씨가 이번 논란을 스스로 해결함으로써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경우는 다소 다르지만, ‘대리번역 논란’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지영 씨와는 다른 모습, 즉 인정할 건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씨 역시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일은 수년에 걸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해야 하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인터내셔널 큐레이터로 성장해온 그가 거쳐야만 하는 ‘성장통’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이번 일을 ‘큐레이터의 기본’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로서는 그다지 나쁜 뉴스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어린 기자도 이것만은 알고 있다. 잠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버나드 쇼가 그랬던가. “예술은 영혼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영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손꼽히는 A.G 그레일링(그의 저서 『존재의 이유』와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을 적극 강추하니, 독자들이여 메모를 부탁한다. 버나드 쇼의 어록도 복잡한 세상사를 ‘쿨’하게 풀어낸 그 덕분에 찾아냈다)은 “회화 한 점이나 무용의 한 동작은 물론 도덕적 상황, 개인의 고통 하나에도 각기 독특하고 고유한 느낌이 있다”며 인류의 문명화를 이루어낸 예술에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굳이 거창한 어록을 들이대지 않아도, 이번 논란이 비단 이씨만의 문제는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그리하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잠시 쉬었다 가는 건 어떨까?
| 윤동희 _ 편집장 hee@n-company.net
* tip _ 『마시멜로 이야기』, 슬픈 베스트셀러로 남나?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유능하고 매력적인 방송인으로서 높은 인기를 모으던 정지영 씨가 나락으로 떨어진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번 논란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마시멜로 이야기』의 실제 번역자가 아나운서 정지영(31) 씨가 아니다.”(10월 11일, 《오마이뉴스》)
2. “대리 번역이 아니라 이중번역이다.”(10월 12일, 출판사 한경BP)
3. “‘달콤’(정 씨가 진행하는 SBS 파워FM '정지영의 스위스 뮤직박스’ 청취자들) 가족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10월 12일, 정지영)
4. “『마시멜로 이야기』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할 방침”(10월 17일, 한국출판인회의, 『마시멜로 이야기』는 출판인회의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38주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었다).
5. “정씨 대리번역사건을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출판사의 ‘스타’를 내세운 영업이 사회에 활개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10월 18일, 법무법인 홍윤의 이창현 변호사, ‘정지영 대리번역 대책(http://cafe.daum.net/chlee5733)' 카페 개설 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며)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씨로선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씨를 향한 인신공격이 흡사 과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자 연예인의 비디오 공개와 연예인 X파일 등을 연상시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의 열쇠를 정씨 본인이 쥐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정씨는 번역자로서 출간 기념 사인회에 참여하는 등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유지하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출판사에 있다. 게다가 해당 출판사는 《한국경제신문》, 즉 언론사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다. 정치, 경제 등 수많은 분야에서 ‘도덕성’이라는 칼을 내세워 수많은 이들을 재단하던 언론사로선 그야말로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출판사가 앞에서 언급된 이 변호사의 소송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정씨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선포’했듯이, 작금의 논란은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모든 것을 건 한경BP를 비롯한 출판계 전체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출판계는 ‘스타 마케팅’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부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책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삶에서 우러난 진정성은 ‘책=돈’이라는 공식 아래 매몰된 지 오래다.
물론 베스트셀러는 필요하다. 단순히 출판사의 수익 구조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좋은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걸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그건 시장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비옥하게 가꾸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특정 시대를 논할 때마다 그 시대를 ‘책임진’ 책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이다. 대리 번역이라는, 어떻게 보면 많은 출판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우리가 당장 먹고사는 데 아무런 상관없는 듯 보이는 문제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책이라는 물질이 머금고 있는 ‘정신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책을 사는 건 단순히 지갑을 열어 ‘종이뭉치’를 사기 위함이 아닐 것이다. 그 속에는 정보와 지식을 얻는 데서 나아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확인하는 소중한 절차이다. 거의 모든 출판인들은 말한다. 그저 책이 좋아서 이 일을 한다고. 비록 박봉에 시달리지만 책을 만든다는 희열이 나를 이 일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고.
2006년 가을, 정지영이라는 희생양을 통해 출판계는 커다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 때문에 수년 동안 쌓아올린 한 방송인의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녀에겐 감내하기 힘든 시간일지도 모른다. 출판계가 스스로 자신의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녀에게 쏟아지는 회초리를 대신 맞겠다고 나설 때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