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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대 월드 투어…"세계는 '비'를 맞으라"
'World of Rain'
돈이 없어 당뇨병 어머니를 치료도 못하고 보내야 했던 19살 소년 정지훈 5년뒤 ‘노스 코리아 김정일, 사우스 코리아 레인’ 세계의 영향력 있는 100人이 되다 “현재에 안주하면 진보도 내 미래도 없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사는 이 ‘문화戰士’ 팝의 본고장, 서구 무대를 겨누다 팽팽한 근육을 감싼 고운 분홍색 셔츠는 금세 터져나갈 것 같다. 1년 전보다 반뼘씩은 더 넓어진 듯한 양 어깨. 말투와 눈빛에 묻어나는 자신감은 그 이상이다.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4집 앨범 발표 및 월드 투어 개막을 신고하는 행사 ‘월드 투어 프리미어’를 갖는 가수 비(본명 정지훈·24)를 서울 청담동 JYP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진보할지, 머물지가 결정될 겁니다. 모래를 움켜쥐고만 있으면 사라지죠. 거기 물을 뿌려 진흙으로, 또 돌덩이로 만들어야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월드 투어’는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준비도 철저하다. 영·미 팝스타 공연을 전담했던 1류 스태프가 참여했다는 점이 지난 투어와 가장 큰 차이. 비는 “지금 관객들이 40~50대가 돼서도 ‘비’가 내릴 때마다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그런 ‘명품’ 공연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연 연출자 제이미 킹이 술자리에서 ‘나는 최고다. 네 무대도 최고로 만들지 못한다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는 없다’고 하더군요. 찌릿했어요.”
지난 2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마친 비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영어 앨범을 발표하고 미국 무대에 본격 진출하는 ‘급행’차선과, 먼저 아시아 지역을 탄탄하게 다지는 ‘월드 투어’를 통한 ‘완행’ 차선. 선택은 후자. “우선 아시아 팬을 확실히 감동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내년 말쯤 정식으로 미국에 앨범을 발표하고 빌보드 순위에도 올라가고 싶어요.”

“전투력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부쩍 올라와 있다”며 가슴을 탕탕 친다. “무대의 막이 올라가면 발끝에서부터 함성 소리가 전기처럼 타고 올라와 제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버려요. 그런데 요즘은 공연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그런 흥분 상태에 빠져들어요.”
비는 배우로서 욕심도 적지 않다. 최근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촬영을 마쳤다. 그 와중에 새 앨범과 월드 투어 준비를 병행했으니 그의 하루 일과는 ‘웰빙’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하루 한·두시간 잔다”는 말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백댄서 시절, 드럼 연주하시는 한 선배가 이런 말씀을 했어요.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잠이 오지 않으면 그날 하루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저도 요즘 불안할 때가 많아요. 뭘 잘못했나 고민하다가 결국 춤, 노래 연습을 다시 하게 되죠. 일종의 강박이죠.”
하루를 ‘48시간’처럼 살고 있는 그도 가끔 친구를 만나지만, “소주 한잔만 마시면 ‘내가 지금 이렇게 놀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편안하게 잡담도 하지 못한다”고 털어놓는다. “예, 저 워커홀릭(Workaholic) 맞아요.”
그는 “제대로 당뇨병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한테 밥 한끼, 꽃 한 다발 사드리지 못한 걸 생각하면 1분 1초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며 “돈이 없어 5일간 굶어본 적 있는 사람은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했다. “형들한테 이 ×× 돈 좀 쓰라고 욕 먹을 때도 많아요. 하하.”
힘든 시절을 겪었기에 ‘도네이션’은 요즘 그의 주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 지난 8월 캄보디아 캄폿 주에 우물 50개를 만드는 일에 동참한 것은 갑작스런 행동이 아니었다. 13일 행사에서 발표될 그의 4집 역시 “전쟁과 기아로 삶이 힘겨운 곳에 ‘비’를 뿌려서 사랑과 평화의 싹을 틔운다”는 내용 위주로 앨범을 구성했다.
지난 5월 ‘타임 100’ 파티에 참석했던 그는 “노스 코리아 김정일, 사우스 코리아 레인 이렇게 소개되고 콘돌리사 라이스,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데 꿈결 같았다”며 “거대한 기(氣)를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무명의 백댄서 시절, 그는 답답할 때마다 남산에 올라가 불켜진 집들을 바라봤다. “그때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 이름을 알게 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요즘 미국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남산이 다시 살아나요. 이제 시작이에요. 팝의 본고장에서 ‘레인(Rain)’을 최고의 스타로 인정하는 날이 올 겁니다.”

사진=전기병기자 gibong@chosun.com

입력 : 2006.10.02 20:52 44' / 수정 : 2006.10.03 17:4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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