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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이야기.

최원영 |2006.10.22 04:27
조회 19 |추천 0


 

 

기억해본다.

 

그때 조금은 스산한 바람이 불었고, 소녀의 생머리가

 

간지럽게 흔들거렸다.

 

시간은 정확히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으며 모든 이들은

 

그애의 미소 저편으로 여백이 되어버렸다.

 

차르르 거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기억되리라 여겨지는 그 날의

 

풍경은 그애를 주인공으로 확정짓고

 

추억이되어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가장 멋진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992년 늦은 봄 어느날, 이제 내 국민학교 5학년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수줍은 내가 보이고 웃고 있는 소녀가 보인다.

 

주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른 사춘기의 그 풋풋한 감성은

 

이제 어린 시인을 만들어내었다.

 

내 일기장속에 소녀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씌어졌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한 날들이였다.

 

공일오비의 가슴 아픈 이별 노래들이 좋아지고 이승환의 저음이

 

고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로맨스 영화에 눈물이 나고 싸구려 유행가 가사에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까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 12시에 하던 신애라의

 

'오늘 같은 밤엔'의 애청자가 되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비밀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내가 본 모든 영화의 여주인공은 그녀가

 

되고 모든 유행가 가사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그랬을 사춘기였다.

 

그렇지만,

 

사실, 현실은 이렇다.

 

그앤 날 모른다.

 

얘기를 나눠본적도 없다. (꿈속에서 몇번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얘기해본적은 물론 있다.)

 

8년간 짝사랑, 이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타 공인의 짝사랑 고수, 나는 사랑이 아니라 환상을

 

쫓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떤가. 사랑이란 감정은 원래 환상이다.

 

그것을 즐기는 것은 사랑할줄 아는 사람만의 특권이리라.


난 말할수 있다. 누구보다 완벽한 첫사랑을 앓았었다고.

                      (내가 그려낸것이였으니 완벽할수밖에.)

 

아팠어도, 슬펐어도, 그것마저 즐기는 감정이였음도 알고 있다.

 

그래, 어쩌면 지구별에 베아트리체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2년 그 해 봄, 내 지구별에서 살고있던 베아트리체를

 

난 기억한다.

 

내가 그려낸 베아트리체가 허상일지라도 내가 키워낸 가상의 인물

 

일지라도 그 시절 첫사랑은 누구나 그랬듯  

 

잡을수 없어서 아련한 것, 이제는 돌아갈수 없는 것, 그래서 더욱 아

 

름다운 것이다.

 

덕분에 내 어린시절은 행복하기만 하다.

 

다 그립고 돌아가고 싶기만 하다.

 

힘든 현실의 도피처이자 안락이다.

 

꿈꾸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친구들에게 혼나긴 하지만 사실.

 

아직은 더 꿈꾸고 싶다.

 

현실에 적응하는것과 길들여지는것의 차이를 두고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것마저 고민하지 못한채 흡수되어 버리는 이들보단

 

낫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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