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우단토끼이야기

김선영 |2006.10.22 09:41
조회 253 |추천 0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말을 한다. 사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많이 씌어지고 읽히는 주제가 있다면 단연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랑이 뭐지?'하는 질문 앞에 늘 망설인다.

내 경우 '사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동화가 한 편 있다. 마저리 윌리엄스라는 작가가 쓴 라는 짤막한 단편이다. 대강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옛날에 우단으로 만든 토끼가 한 마리 있었다. 한 작은 소년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토끼는 처음에는 꼭 진짜처럼 털도 복슬복슬하고 너무도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날에만 아주 잠깐 아이의 기쁨이 되었던 토끼는 곧 잊혀지고 말았다. 값비싼 장난감들은 우단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를 푸대접했고 작고 가엾은 토끼는 자기를 보잘 것 없고 시시한 존재라고 생각해 슬픔을 느꼈다. 그를 따뜻하게 대해 준 친구라고는 가죽말 한 마리뿐이었다.

누구보다도 아기방에서 오래 산 가죽말은 늙고 다 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퍽 지혜로웠고 아기방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기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우단토끼가 그에게 물었다.

"진짜가 뭐야? 속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고 손잡이가 튀어나오는 거야?"

"진짜라는 건 네가 어떻게 생겼는가에 달려 있는 게 아니야." 가죽말이 말했다.

"그건 너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 말하는 거란다. 어떤 아이가 널 오래오래 사랑해 주면, 그냥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너를 사랑하면, 그러면 넌 진짜가 되는 거야."

"그러면 아파?"

"어떤 때는. 그렇지만 진짜가 되면 아파도 괜찮아."

"그게 태엽을 감을 때처럼 단번에 되는 거야, 아니면 조금씩 되는 것야?"

토끼의 질문에 가죽말이 대답했다.

"단번에 되는 게 아니야.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 그래서 쉽게 망가지거나 모가 나거나 살살 다루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대개 진짜가 될 때쯤에는 하도 손을 많이 타서 아주 초라헤게 되지.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아. 한번 진짜가 되고 나면 다시는 미워질 수가 없거든. 그걸 이해할 수 없는 사람한테는 말고 말야."

그러면서 가죽말은 소년의 아저씨가 자신을 진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토끼는 자기도 진짜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또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늘 데리고 자던 강아지를 잃어버려 우단토끼를 안고 침대로 가게 되었다. 아이는 토끼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 이불 밑에 굴을 만들어 같이 놀기도 하며 아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토끼는 아이의 작고 따뜻한 턱 밑으로 기어 들어가 아이 손에 안겨 밤새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작은 우단토끼는 그저 행복하기만 해서 자기가 어느새 낡고 바래고 털도 군데군데 뜯겨져 나간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차대접을 한다고 불려나갔던 아이가 그만 토끼를 마당에 두고 왔다. 그러나 아이는 토끼 없이는 잘 수 없어서 일하는 아줌마가 초를 켜들고 찾으러 나와야 했다. 이슬에 젖고 흙투성이가 된 토끼를 보고 아줌마가 투덜거렸다.

"넌 꼭 이 토끼가 있어야겠니? 장난감을 가지고 이 법석을 떨다니."

그러자 이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내 토끼 이리 줘요! 그리고 그 앤 장난감이 아니야. 진짜란 말야!"

그 순간 가죽말이 이야기한 기적이 자기에게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작은 토끼는 너무도 행복했다. 작은 톱밥 가슴은 사랑이 북받쳐 터질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흘렀고 작은 토끼는 더욱 낡고 초라해졌다. 이젠 모양이 다 망가져 아이한테 외에는 토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변함없이 그를 사랑했고 토끼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일단 진짜가 되고 나면 초라함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더 이어져 토끼가 요정에 의해 진짜 살아 움직이는 토끼로 변하는 것으로 끝난다.
오래 전에 이 너무도 눈물겹고 아름다운 글을 읽고 느꼈던 감동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후로 지금까지 누군가가 사랑에 관해, 사랑이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하는지 물으면 꼭 이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때로 진실은 누군 다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간단한 것이기도 하지 않던가. 단지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울 뿐이다. 자신의 성격, 체질, 과거의 경험, 현재의 상황 같은 수많은 변수가 그 진실에 가까이 가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반대로 방해를 하기도 하는 탓이다.

사랑 역시 그렇지 않을까? 결국 사랑이란 '진짜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처럼 단순한 진실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사랑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며 혼란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상처 받곤 한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인데도 말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