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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랑-부부애가 장수 만든다

김진석 |2006.10.22 13:44
조회 404 |추천 0
[100세 사는 사람들] 가족사랑-부부애가 장수 만든다
4대가 함께…삶을 즐기면 언제나 청춘

▲ 도타운 가족애와 활발한 대인관계는 오키나와를 장수촌으로 만든 밑바탕이 됐다.오키나와 장수인들은 산책·정원 손질 같은 일상 활동 외에도 노인 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체육활동에 참여해 몸을 단련시키고 있다./오키나와 관광청 제공 관련특집 - 100세를 사는 사람들

오키나와인(人)의 건강·장수는 개개인의 유전적 축복만은 아니었다. 그곳 백세인들에게는 건강한 가족애와 부부애가 함께 했으며, 장수인을 공경하고 스스로도 만수(萬壽)의 혜택에 감사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같은 오키나와인들의 가치관은 수명(壽命)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전진시키는 동력으로 평가됐다. 오키나와 백세인들은 육체·정신 노동을 일부러 찾고 즐기는 후천적인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 대가족 문화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동부 사시키(佐敷) 마을에 사는 시로마 나에(95) 할머니는 술·담배를 많이 했던 남편이 26년 전 고혈압으로 숨을 거둔 뒤, 며느리·손녀 부부, 증손자와 함께 4대(代)가 함께 산다. 3남4녀를 자제로 두었는데, 아들들은 일찍 세상을 떴고 딸들은 모두 건강하게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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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하는 동안 간을 맞추면서 많이 먹어서 그런가? 여자들 삶이 더 고달프니까 그만큼 오래 살아야 하는 것 아니야?” 자신의 나이를 묻는 사람들에게 “올해 겨우 열여덟”이라고 하는 유머감각 넘치는 할머니답게 ‘여성 장수의 비결’을 묻자 또 농(弄)으로 받았다. 10년 전 큰 아들이 위장병을 앓다가 먼저 떠났을 때 심한 가슴앓이를 했지만, 그것이 생사를 달관하게 된 계기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할머니는 집 앞에 나서 행인들을 구경하거나, 딸들이 사다 준 주간지를 읽는 게 취미라고 했다. 글이 어렵거나 흐릿해도 게재된 사진을 읽으면서 세상소식을 접하는 것이 즐겁다고 설명했다. 걸어서 2분 거리에 사는 딸(야마시로 데루코·70) 집을 찾아 식사를 하곤 하지만, 주로 며느리가 정성스럽게 챙겨주는 세 끼 식사를 뚝딱 비운다.

“돼지고기나 생선을 좋아하시는데, 소화가 안 될까 봐 당근·무를 썰어 푹 고아 죽처럼 내어 드립니다.” 시모를 모시고 살아온 시로마 히데코(71)씨는 “오래오래 사셔서 증손자(1) 효도까지 받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40대에 피웠던 담배를 딱 끊었다는 할머니는 “2년 뒤 마을에서 열어주는 생일잔치 때 꽃마차 탈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장수백세’에 대한 자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한국 관광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 연인 같은 삶을 함께하며 백세를 바라보는 신자토 부부. ◆ 연인 같은 금실 =사시키 마을 신자토 우시(94) 할머니는 혼자 있을 때도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차와 만주(콩과 팥을 넣어 만든 일본의 빵)로 아침식사를 한 뒤 남편(신자토 후젠·97)은 밭일을 나가. 그때를 빼면 종일 붙어 지내지. 한 달에 세 번, 노인회에 나가서 전통 춤과 게이트볼을 함께 한다오.”

부부는 평생토록 같이 해 온 사탕수수·망고 재배와 양돈을 집 앞에 사는 아들 부부에게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집 뜰에서는 양상추를 재배하고 있었다. “밭에 나가 사탕수수 잎을 매만지며 오전을 다 보내는, 평생을 흙에 산 남편의 습벽은 말릴 수가 없어”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의사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니 고기 섭취를 줄이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별로 개의치 않아. 먹고 싶은 것 맘 편하게 먹고 몸을 움직여 건강을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야.” 할머니는 평생 농군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얼굴이 고왔다. “밭에 나갈 땐 볕에 그을릴까 봐 꼭 화장을 했어. 남정네 시선? 젊어선 밭일하느라 쳐다도 못 봤어.”

2남2녀를 둔 부부는 손자·증손을 합하면 자손이 32명이나 돼서 누가 누군지 구분을 못 한다고 했다. “손자들이 나쁜 일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부부는 백 살은 거뜬히 살 테니까, 아이들 장성한 모습 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 멈추지 않은 청춘일기 =다마키 나헤(100)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은 채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었다. 우라소에(浦添)시 ‘오키나와 의료생활협동조합’에서 마련하는 노인·장애인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에서 할머니는 ‘끼’를 발산한다.

“지팡이를 짚으면 휠체어에서 거뜬히 일어서지. 큰 병 앓은 적도 아직 없고.” 할머니는 옛 민요라면 전부 따라부를 수 있고, 이곳에 와서 전통 춤을 보거나 직접 춘다고 했다. 4대(代)가 한 집에서 살고, 가족이 나서 할머니의 나들이를 도와준다고도 했다.

“기억력은 좀 떨어졌지. 신문의 작은 글자는 눈에 잘 안 들어와. 하지만 귀는 밝다고.” 마쓰다 가네히로 의료생활협동조합 조직부장은 “할머니가 다변(多辯)이어서 친구도 많지만, 자기 주장을 굽히는 법도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매주 3차례 이곳에서 미니 골프(퍼팅)·가라오케나 손과 머리를 쓰는 간단한 게임을 즐긴다. “암, 젊게 살아야지. 토·일요일에도 (프로그램이) 계속됐으면 좋겠어. 친구들과 헤어져 귀가할 때면 늘 섭섭하고 아쉬워.”

----------------------------------------------- 92세 히라야스 할아버지 “노래부르면 스트레스는 저만치”중창단 활동 ----------------------------------------------- ▲ 노래,독서,바둑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히라야스 조부쿠씨.실버중창단 활동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오키나와현 우라소에(浦添)시에 사는 히라야스 조부쿠(92) 할아버지는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지방지 ‘오키나와(沖繩)타임스’와 돋보기 안경을 집는다. 가족들이 깨기 전이라 하루를 시작하는 차(茶)는 직접 끓여 마신다고 했다. “나이 들었다고 시사 문제에 눈감을 수 있겠소? 하루에 신문 3~4개는 읽어야 직성이 풀리고, 바둑 TV를 보면서 묘수 익히는 게 일상이라오.”

 

끊임없는 두뇌활동 외에도, 히라야스씨는 다양한 취미를 지녔다. “노인회에서 중창단 활동을 하지. 매주 토요일이면 지역 노인센터에서 하루 2~4시간씩 연습해. 저것만 제대로 작동하면 더 열심히 하겠는데 말이야.” 그는 집안에 둔 고장난 가라오케 연주기계를 가리켰다. 97년엔 ‘실버 합창단’ 활동으로 시(市)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한 ‘아마추어 가수’다.

‘고령 여초(女超)’ 현상이 심한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노인회에 갈 때마다 또래 여성이 남성보다 10배는 많아 쓸쓸함을 느낀다고 했다. “귀는 좀 어둡지만, 여인들 목소리는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니까.”

그는 자식들(3남2녀)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난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나를 위한 특별식은 원한 적이 없어. 가족들 먹는 대로 야채를 섞어 삶거나 볶은 고기 반찬을 좋아하지.” 할아버지는 밥그릇 가득 담아 식사를 하고, 가끔은 두 그릇도 비운다고 했다.

“젊었을 때 배를 타서 그런가? 산책 말고는 특별히 하는 운동은 없는데….” 할아버지는 아직도 정원 손질과 집안 청소를 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도쿄(東京)의 전문대를 졸업한 ‘오키나와 프로 무선통신사 1호’인 히라야스씨는 1936~45년 유조선 선원 생활을 할 당시 부산항에서 꿩을 잡아다 구워 먹은 얘기를 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배를 타고 보르네오,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세계 곳곳을 돌았다고 한다. “지난해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 각국 요트들이 오키나와 나하(那 )시에 모였어. 배에 관심이 많아 직접 가보지 않았겠어.” 할아버지는 “배들이 인천(仁川)을 거쳐 왔다는데, 거기가 한국 어디쯤 있느냐”고 되물었다.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오후엔 꼭 독서·낮잠·산책을 하지.” 히라야스씨는 세 끼 식사도 딱 정해진 시간에 하고, 10여년 전 폐 기능이 떨어져 병원 신세를 진 것과 2년 전 백내장 수술을 한 것 외에는 건강에 큰 탈이 없었다고 했다.

“고교 교사로 일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많았어. 60대까지 술도 많이 하고 담배도 하루 한 갑 반을 태웠다니까.” 할아버지는 “정년을 맞은 뒤 술·담배 딱 끊고, 노래를 부르면서 번잡한 기억을 잊는 데 적응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 살 아래 부인을 떠나 보낸 뒤 노래에 대한 애착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오키나와=朴瑛錫기자 yspark@chosun.com )

입력 : 2003.01.05 19:12 39' / 수정 : 2003.01.05 21:48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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