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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살인자의 건강법

김수민 |2006.10.24 00:54
조회 113 |추천 0

20050826

아멜리 노통브 - 살인자의 건강법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흥미진진해하는 동시에 또 수줍어했다면 그게 바로 얼치기 작가라는 증거요. 수줍음을 타는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겠소?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직업이 바로 작가라는 직업이오. 문체니 주제니 줄거리니 수사법 같은 것들을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오로지 작가 자신이니까. 그것도 말이라는 걸 갖고 그렇게 한단 말이지. 화가나 음악가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네 작가들처럼 말이라는 잔인한 도구를 갖고 그렇게 하진 않소. 암, 기자 양반.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음란하지 않으면 회계사나 열차 운전수나 전화 교환수 노릇을 하는 게 더 낫지. 다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들 아니오."

 

 

 

  "비범한 이유라니까. 나 같은 작가에게 위안이 되는 이유잖소? 진정한 작가, 순수한 작가, 위대한 작가, 천재적인 작가는 자기 책을 읽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오.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은밀히 탄생시킨 그 아름다운 것들이 천박한 시선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면 말이오."

 

 

 

  "그런 사람들을 개구리 독자들이라고 하는 거요. 독자들 대부분이 그렇지.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달았소. 내가 그렇게 순진하다오. 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책을 읽을 거라 생각했소. 나는 음식을 먹듯 책을 읽는다오. 무슨 뜻인고 하니, 내가 책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책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는 거지. 순대를 먹는 사람과 캐비어를 먹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잖소. 마찬가지로 칸트를 읽은 사람과 크노를 읽은 사람도 같을 수가 없지. 참, 이 경우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그외 몇몇 사람들'로 해석해야 하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루스트를 읽건 심농을 읽건 한결같은 상태로 책에서 빠져 나오거든. 예전 상태에서 조금도 잃어버린 것 없이, 조금도 더 한것 없이. 그냥 읽은 거지. 그게 다요. 기껏해야 '무슨 내용인지' 아는 거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오. 지성인이라는 사람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아시오. '그 책이 당신을 변화시켰소?'라고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날 쳐다보는 거요. 꼭 이렇게 묻는 것 같았소. '왜 그 책 때문에 내가 변해야 하죠?' "

 

 

 

  "천만에! 그건 최고의 독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오. 그 외에는 다들 계속해서 타고난 진부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게다가 독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독자란 것 자체가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오. 대다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 명언을 남겼지. 웬 지식인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구먼.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안 그러오?"

 

 

 

  "(...)인간을 미워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오. 내 생각에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허위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특성이지. 요즘만큼 허위가 승승장구하는 시대는 없었소. 아시다시피 난 여러 시대를 살았다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소. 이 시대만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지. 허위적이라는 건 우선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뭔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어서가 아니라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사이비 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

 

 

 

  "(...) 또 내가 여자들을 미워하는 건 희생자들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요. 희생자들이란 비열한 족속들이지. 그 족속들을 몰살하고 난 다음이라야 이 세상이 평화로워질 거요. 또 그래야 희생자들도 원하던 바를 이루게 될 거고. 즉 희생당하게 될 거고. 여자들은 별나게 사악한 희생자들이오. 그 누구보다도 그네들 자신에 의해, 그러나까 다른 여자들에 의해 희생되기 때문이지.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싶거들랑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에 대해 관찰해보시오. 그 지독한 위선과 질투와 악의와 비열함에 몸서리를 치게 될 거요. 여자들 둘이서 건강하게 주먹질을 해대며 싸우거나 억세게 욕지거리를 퍼부어대는 걸 본 적은 없을 거요. 여자들의 주무기는 비겁함이오. 야비한 말을 쏘아대는데 그게 턱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보다 훨씬 나쁘지. 별 새삼스럽지도 않은 얘기를 한다고, 여자들의 세계는 아담과 이브 적부터 쭉 그래왔노라고 말하고 싶으실 거요. 난 말이오, 여자들의 운명이 지금처럼 최악이었던 적은 없다고 말하려는 거요...... 자기네들의 잘못이긴 하지. 인정하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 않소? 여성들의 처지는 허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진절머리 나게 보여주는 한 편의 연극이라오."

 

 

 

  "어떤 것들이 선생님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습니까?"

  "전부 다. 세상이 엉망이라기보다는 삶 자체가 별 볼 일 없지. 요즘 사람들은 허위적이라, 그 반대라고 외쳐대지만 말이오. 다들 한목소리로 아우성을 쳐대잖소. '인생은 아아아르으음다워요! 우린 삶을 사랑해요!' 환장하겠소. 그런 멍청한 소리나 듣고 살다니 원."

  "멍청하긴 해도 진심 어린 말일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러니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거요. 허위적인 말들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 사람들한테 잘 먹혀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은 시시한 삶을 살면서 하찮은 일을 하고 끔찍한 곳에 살면서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함께하지. 그리고는 파렴치하게도 그걸 행복이라 부르는 거요."

 

 

 

  "(...) 당신 주변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바라보시오. 이 세상은 살인자들로 득실대고 있소.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놓고 그 사람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사람들 말이오. 누군가를 잊어버린다는 것, 그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소? 망각은 대양이라오. 그위엔 배가 한 척 떠다니는데, 그게 바로 기억이란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억의 배는 초라한 돛단배에 지나지 않는다오. 조금만 잘못해도 금세 물이 스며드는 그런 돛단배 말이오. 그 배의 선장은 양심 없는 자로, 생각하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항해 비용을 절감할까 하는 것뿐이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오? 날마다 승무원들 중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골라내어 처단하는 거요. 어떤 이들이 쓸모 없다고 판단되는지 아시오? 잡놈이나 게으름뱅이나 바보천치일 것 같소? 천만에. 바다로 내던져지는 이들은 선장에게 이미 봉사한 적이 있는 이들이라오...... 한 번 써먹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지. 단물 다 빨린 것들한테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겠어? 자, 사정없이 쓸어내버리자고, 여엉차! 그들은 난간 위로 내던져지고, 바다는 무자비하게 그들을 삼켜버린다오. 그렇소, 기자 양반, 그런 식으로 날마다 수없이 많은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다오. 처벌도 받지 않는 살인이지. 난 단 한 번도 그런 무시무시한 살인행위를 모의한 적이 없소. 그런데 그렇게 결백한 나를, 당신은 세상 사람들이 정의라 부르는 것으로 단죄하려 하는구려. 그런 걸 달리 말해 고소라고 한다오."

 

 

 

  "유감이오. 난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왜죠?"

  "불쌍한 사람 같으니. 당신은 말이오, 지극히 당차고 지극히 사려 깊지만, 아직도 어떤 면에서는 막 태어난 어린 양과 같다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단 말이오? 아무한테나 이름을 불러대고 싶을 것 같소? 아니고말고, 이 양반아.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욕구가 폐부 깊숙이서 치밀어 오르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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