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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에게 새생명을..

강남소중한... |2006.10.24 22:08
조회 40 |추천 1

버려진 것들에게 새생명을..

낡음의 미학을 느껴라, 구제시장

 

 

작년 늦가을쯤..

뭔가 색다른 멋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동대문 구석구석을 정처 없이 헤매던 어느 날,

발걸음이 가는 데로 걸었을 뿐인데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섰던 그곳,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들 이보다 기쁠 소냐~ 에헤라~ 쾌재야~ 덩실덩실 춤을 추고

너무 좋아 어찌할 줄 몰라 일주일에 몇 번이고 둘러보고 둘러보았던 그곳!

나만의 보물창고!

구,제,시,장

같이 둘러보실 랍니까?


종로5가 광장시장 구석탱이 상가 2,3층-

들어서자마자 꾸린내가 진동하고 쾌적한 쇼핑시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막돼먹은 곳!

돈 주고 입으라 해도 안 입을 것 같은 낡고 오래된 옷들에

그런 옷과 함께 세월을 공유한 듯 연세 지긋하신 주인 할머니들뿐인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허름한 시장이지만

남다른 감각에 진짜 멋을 낼 줄 아는 사람들에겐 갖가지 보물이 숨겨진 소중한 곳이다.

  이 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세상에 한 벌뿐인 옷이라는 점 때문이다. 붕어빵 찍어내 듯 비슷한 옷들만 만들어 내는 요새 패션업계에 질려버린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멋을 뽐낼 수 있다는 자체가 하늘이 주신 축복과도 같았다. 다소 낡고, 흠도 있는데다가 냄새까지 나긴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이 간직한 옷들은 그냥 걸치는 옷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옷의 질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옷들은 요새 나오는 옷보다 더 정교하고 세심하며 튼튼하다. 그 오랜 세월을 버텨 왔다는 것만 보아도 한해 입고 버리는 요새 옷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는가? 게다가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증명하듯 유행과도 맞아 떨어지기까지 한다.

  또 예쁜데 공부까지 잘 하는 아이와 같이 멋스럽고 정교하면서도 무지무지 싸다. 요새 많이들 찾는 구제청바지경우에는 2~30000원, t셔츠는 5~6000원, 가방은 3~5만원 선, 신발은 1~20000만원(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정도이다. 명품도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정찰제가 아니라 주인 입에서 맘대로 튀어나오는 게 가격이기 때문에 흥정을 거치면 가격은 훨씬 내려가게 된다. (Tip 하나! 주인 할머니들께 손자 뻘 되는 젊은이들의 애교필살기는 최대 약점! 따지려 들거나 말대꾸하면 아예 안 판다)

   이곳의 또 다른 묘미는 세대간의 벽이 없는 쇼핑공간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옷을 사러 가고, 서로에게 어울리는지 봐주며 서로 입겠다고 옷 하나를 놓고 싸우는 것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이곳이라면 가능하다. 세대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가는 요즘 신-구가 함께 같은 것을 보고,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곳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정을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누구나 할머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일까? 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수북이 쌓인 옷 틈에서 비집고 앉아 계신 가게 주인 할머니들은 보면 시골 고향집에 내려온 듯 포근함이 느껴진다. 서로 살벌하게 흥정하다가도 정답게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볼 때면 손님과 주인이라기 보다는 영락없는 할머니와 손자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자매나 가족같이 느껴지는 주인장들간의 돈독한 정도 정겹게 느껴진다.


 

그런데 요즘 이곳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1945년 625한국전쟁 후 어려운 살림에 입을 것이 없어 미군들이 입다 버린 옷들을 모아 팔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는 이곳 구제 시장. 50년의 역사를 가진 정통 있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몇 안 되는 도매 상인들과 나이든 단골 손님들에게 의존하며 베일에 쌓여 있었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그래봤자 작년..) 대부분의 손님들은 40~50대 아주머니서부터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옷을 싸게 사거나, 옛추억을 되새겨 보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아침시간 도매상들 외에는 젊은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곳에서 어른들 틈 사이를 휘저으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시장을 누비고 다니던 나를 할머니들은 요상한 아이로 보곤 했다. 그런 시선을 나름 즐기며 이곳을 나만의 보물단지로 명하고서는 나만이 이 행복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굳게 닫고 시장을 출입한지 2~3달쯤 지나서였다……아니, 요놈들 봐라~ 여길 어떻게 알았지? 간지 작살의 곱상한 놈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올해 들어서는 교복 입은 중고딩까지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좁은 시장 골목에 바글바글 대는 통에 쇼핑을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을 정도로 갑자기 늘어난 젊은이들 때문에 할머니들도 적지 않게 놀라신 듯했다. 이 시장이 생긴지 50년 이후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찾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나야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곳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알고 온 것일까? 광장시장이 젊은 사람들이 흔히 찾는 곳이 아닐뿐더러 넓디 넓은 시장의 구석에 구제시장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사실 구제시장이 있다는 걸 알고서도 찾아오기 힘든 곳이다. 인터넷에 검색해보아도 잘 나오지 않을뿐더러 지식인에 물어 본 들 순순히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매니아층 사이에서는 자신들만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알려주지 않기도 하지만 도매상들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상인들이 물건값을 올리기 시작해 손해를 본다며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너무한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곳의 제품들이 세상에 딱 한 개밖에 없는 물건임을 감안해본다면 그 마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갑자기 늘어난(계속 늘고 있는) 시장의 젊은 손님들에 대해서 평소에도 무척 궁금하면서도 남일에 뭔 상관이냐는 생각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요번만큼은 그냥 못 넘기고 곱상한 남학생들을 잡아 물어봤다. 시장에 처음 왔다는 중학생의 말로는 학교에서 옷 잘입기로 유명한 아이에게 듣고선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역시 입소문이었군..)학교 내에 시장에 대한 얘기가 퍼진지는 올해 학기초부터며 아직 많이 알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자신도 오늘 처음 왔지만 옷들이 너무 맘에 든다며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해 하면서 상냥하게 답해준 학생들에게 감사 -_-)


이뿐만이 아니다. 손님뿐만 아니라 시장 내 젊은 상인들도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시장을 자주 찾다가 구제를 좋아하는 자신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많겠구나, 할머니들의 뒤를 이어 가야겠다 하는 생각에 가게를 열게 되었다는 젊은 사장님들.. 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도 요새 많이 늘고 있다. 기존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던 가게들은 정신 없이 걸려있는 옷들 중에 젊은 감각에 맞는 옷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 직접 뒤져야 했다면 젊은 상인들이 하는 가게에는 젊은이들 코드에 맞는 구제 옷들만 모아 정리, 진열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쇼핑하기가 수월하다.

또한 젊은 상인들이 늘면서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구제시장은 한 건물의 2,3층에만 있었는데 최근에는 입구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옆 상가에까지 구제시장의 영역이 넓혀져 가고 있다. 원래 옆 상가는 옷감만 파는 곳인데 옷감 파는 상점은 파리만 날리는 것에 비해 구제상점에는 손님이 바글바글 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 재미있다. 시장에 갈 때마다 상점이 한 두 개씩 늘어가는 것을 보면 머지 않아 옆 상가까지도 구제 전문 시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보물 창고였던 시장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우려 되는 점이 생겼다.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맞추려 하다 보니 그런 것인지, 젊은 상인들의 새로운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제 제품이 아닌 요새 시중에 나오는 빈티지틱한 새 제품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뭐 제품간에 크게 느낌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추세가 더 강해진다면 구제시장만이 가지고 있던 매력을 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품뿐만이 아니다. 상가 내 분위기도 젊은 상인들이 늘어나면서 전에 비해 조금 세련되어진 듯 하지만 터줏대감 할머니상인들과 젊은 상인들간의 어색한 벽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50년이 넘는 세대간의 벽을 쉽게 허물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통해 상가를 찾는 하나의 이유였던 정겨움과 편안함이 훼손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구제의 매력을 이제야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했는데, 유명세 때문에 매력을 잃어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

최근 1년 새에 불어든 구제시장의 변화의 바람. 시장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전환점이 되어 정과 사람 내음이 넘치던 상가의 본래 모습이 변치 않고, 신-구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많은 이들의 보물창고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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