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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 - 송기역

전태일기념... |2006.10.26 10:51
조회 37 |추천 0

 

  트랙터 순례자들의 노래     윗배미가 아랫배미에 어깨 내주듯 

  어깨 걸고 간다 

  두둑마다 배미마다 가뭄 밀어내며 

  물꼬 터지는 소리, 

  흙에 살리라! 

  노랫소리 물결친다 

  농민회 김가는 볏단을 묶고, 

  부녀회 오산댁은 감자를 이고, 

  최 노인은 옥수숫단 메고, 

  집집마다 심는 것은 달라도 

  씨 뿌리고, 풀을 매고, 독을 고르며 

  하나 되어 간다

  대보름 달덩이를 안고 

  한 구비 두 구비, 언덕이 이렇게 많았더냐? 

  농사뿐인 반생에 넘어보지 못한 고개들 

  묏등처럼 이어진다 

  나락을 짊어지던 힘으로 

  붉은 트랙터가 간다. 

  단풍이 남하하듯 번져간다 

  태풍이 올라가듯 휘몰아쳐간다

  마을마다 촛불 하나씩 내려놓고 

  사람의 가슴마다 모 하나씩 심으며 간다 

  평화 한 뙈기 나눠주며 간다

  군산 미군기지에서 

  광주 송정리 전투비행단에서 

  대구 캠프헨리에서 

  씨알 그러모으던 두 손으로 촛불 내려놓고 

  심지 끝마저 태우고 간다

  빗길 뚫고, 눈길 헤쳐 

  빗물에 젖고 얼어붙은 두 손 녹이며 간다 

  가로등도 꺼지고 

  별빛마저 돌아누운 논길 

  반딧불이야, 네가 앞장서라 

  잠든 두렁 밝히며 너를 따라가겠다 

  대추리 외양간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동방박사들이 지나간 우리들의 순례길이다

  지난 날 그네를 닮은 길 잃은 나그네를 태우고 

  나라 잃은 시절 보국대로 끌려가 

  활주로, 격납고를 만들던 분노도, 

  해방 후 미군에 쫓겨 뼈마디 저린 천막살이에 

  땅에 굴 파고 짚 깔아 지내며 

  세월을 개간했건만 

  굶주림으로 죽고, 염병으로 죽고 

  심장을 파고드는 전투기 소리에 

  첫 아기를 사흘만에 잃은 설움도 태우고 간다 

  삶터에서 쫓겨 타향 떠돌던 옛 친구도 찾고 

  갈라선 마음 이어붙이며 

  내릴 때는 촛불 하나씩 건네자

  촛불 들고 가는 생명들 뒷모습이 환하다 

  전봇대처럼 이어지는 촛불의 길 

  촛불과 촛불이 모여 대보름 달덩이로 솟아오른다 

  달집 태우는 소리 들린다 

  백년 죽음의 세월 태우며 보름달이 솟는다 

  달빛 아래 기도하는 우리 

  두 손 그러모아 씨 뿌리고, 모 심고, 벼 베던 세월 

  그것이 우리의 기도였다

  돌아갈 때는 기러기로 돌아가겠다 

  날갯죽지마다 부안, 광양, 부산 

  물집 터지고 부르트고 찢어진 살갗 

  끊어진 길, 막아선 경찰차 

  길의 고난을 깃털에 새기고 

  앞섬과 뒤섬 없이 무리지어 돌아가겠다

  장갑차를 녹여 보습을 만들고, 

  전투기를 쳐서 낫을 만들고 

  장갑차가 아닌 트랙터를 타고 

  전투기가 아닌 기러기로 가겠다

  올해도 농사짓자! 

  올해도 농사짓자! 

  올해도 농사짓자!

  목울대를 울리고, 

  주먹을 솟구쳐 올리고, 

  클랙슨을 누르고, 

  깃발 펄럭이며

  외치던 부리마다 우리들의 씨앗을 물고 돌아오겠다 

  내 새끼 깃털이 묻은 둥지를 버리진 않겠다 

  내 뼈를 잇대어 둥지가 되어 떠나지 않겠다

  망루가 되어, 솟대가 되어 

  기지 위를 한 바퀴 돌고 

  미군막기 대장부, 땅지킴이 여장부 평택 대추리 입구를 지키는 장승.

  속 깊이 푸르름 서린 대나무 장승 품에서 

  대보름 환한 빛에 깃을 털고 

  황새울 잡초 하나까지 쓰다듬는 바람으로 내려앉겠다

 

 

송기역 

(제15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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