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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 말기 회화展

윤동희 |2006.10.26 14:38
조회 92 |추천 1

[www.abcpaper.co.kr 주말, 이 전시 어때?]

 

가을이 무르익는다, 조선의 명화 구경 가세

 

--- 조선 말기 회화展 2006. 10. 19~2007. 1. 28 삼성미술관 리움

 

리움에서 열리는 전은 우리가 외면했던 조선 후기를 수놓은 대가 27인의 혼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가을에 딱 어울리는 전시. 하지만 '용산'이라는 지역성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을 이 전시와 동격에 두는 건 실수.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전은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일단 ‘조선 말기’에 눈길이 간다. 조선 말기(1850~1910), 그 시절이 어떤 때던가. 조선이라는 국호를 지키기 위한 전통과 개화사상 등이 맞물린 시대가 아니던가. 조선이 처했던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딘지 불안한,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지 않던가.

 

가끔씩 옛 그림이 담긴 화첩이나 도록을 보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작품의 제작년도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놀라곤 하는 것이다. 장승업의 삶과 예술을 스크린에 옮긴 에 관한 글을 쓸 때도 그랬다. 그렇다. 조선 후기에 숨을 쉬며 예술혼을 적신 이들과 우리는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예찬하던 이 땅의 풍광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루었다지만, 그들을 먼 과거로 부르기엔 왠지 꺼림칙하다.

 

 

 

장승업(張承業) 종이에 수묵담채 각 135.5×55.0cm 19세기 후반

 

유숙(劉淑) 종이에 수묵담채 112.0×387.0cm 1868년 보물 1199호

 

 

렘 쿨하스가 설계한, 그래서 더욱 현대적인 전시 공간에서 대가들의 이름을 목격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김정희, 장승업, 허련, 조희룡, 홍세섭, 안중식, 김수철 등 조선 시대 마지막 거장 27인의 대표작 80여 점은 그들의 이름에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는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조선 후기라는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시대, 오직 붓 하나로 버틴 이들을 기념하는 ‘화원(畵員), 전통, 새로운 발견’이라는 화두 역시 맛깔스럽다.

 

‘화원’이 유숙 안중식 장승업 채용신 등 단원 화풍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은 궁중화가들의 작품을 모았다면, ‘전통’에는 김정희 조희룡 전기 허련 민영익 등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의남종화를 완성시키고자 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은 김수철 윤제홍 홍세섭 박기준 김창수 등 남종화를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화풍이나 기법을 실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화가들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단원’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18세기 진경산수에 못지않은 19세기 회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허련(許鍊) 종이에 수묵담채 99.0×48.5cm 19세기

 

 

김정희와 장승업이라는 쌍두마차를 내세운 채 쉽게 갈 수 있는 전시를 택하지 않고, 다소 낯선 이름들을 전면에 내세운 점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힐 만하다. 몇몇 대가들을 제외하고 조선 말기에 활동했던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학예연구실의 의도에 미술계도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리움이 한남동에 둥지를 튼 뒤 처음으로 열리는 고미술 기획전이라는 점도 관심거리다. 개관 2주년을 맞아 열린 전시답게 옛 그림을 액자에 끼워 넣는 등 전시를 향한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이는 비슷한 시기, ‘용산’이라는 같은 무대에서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2006. 10. 24~2007. 3. 18)과 이 전시를 비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남계우(南啓宇) 종이에 채색 각 122.0×28.0cm 19세기 후반

 

 

최근 언론 등에서 큰 지면을 메운 채 소개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은 두 가지 목적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개관 1돌 기념과 내년 3월까지 이어져 있는 전시 기간을 감안할 때 겨울방학용 블록버스터 전시인 셈이다.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온 국민이 즐겨 찾는 공간이 되어야 마땅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의 전통미술이 아닌 서양 명화를 보여주려고 한 점은 신선한 발상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이름도 찬란한 루브르 박물관이니 말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편의적으로 이 전시와 전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의 표면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요소, 즉 용산이라는 지역성과 조선과 서양의 '명화',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사립미술관(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했듯이)이라는 점만으로 비교할 수 있겠지만, 전시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 비교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그건 두 전시장을 직접 거닐다 보면 그냥 느끼게 된다. 이론과 전시공학 등에서 전문성을 유감없이 담아낸 전과 달리 전은 오직 ‘루브르’라는 이름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선 ,루브 박물관>전은 박물관 학예실이 끼어들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 학예실이 자신들의 관심사와 다른, 게다가 단순히 외국의 유명 박물관의 소장품을 '들여오는' 전시에 팔을 걷어 붙이고 참여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물론 이 전시는 애초부터 박물관이 관여할 필요가 없는 전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전시는 루브르의 기획자에 전적으로 의존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용상으로도 도저히 나쁠 수가 없다. 생각해보라. 눈앞에서 푸생의 과 부셰의 , 코로의 등이 펼쳐지는 데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건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더라도 공간만 확보된다면 어느 미술관이나, 어떤 큐레이터나 능히 치를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비록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기에 루브르가 귀중한 작품을 바다 건너 보내기로 결정했겠지만, 주최 측이 스스로 감탄해 마지 않는 세계적인 명화를 사무동으로 설계된 전시 공간에 '진열'하는 건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이렇게 해야 했다면, 제 아무리 루브르라고 할지라도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려도 충분한 전시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결과적으로 블록버스터 대관 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형국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국민의 혈세를 들여 용산으로 옮긴 지 1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내세우기엔 다소 낯이 뜨거운 전시가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이게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현실’이라면 인정하고 볼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 윤동희 _ 미술전문기자, www.abcpaper.co.kr 편집장, 사진 _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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