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또는 사기 도박꾼을 뜻하는 "타짜는"화려한 48장 동양화
감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게 마련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고사모(고스톱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라면 반드시 단체
관람의 의무를 다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좌 역시 고스땁을 너무 쌀람하는 바람에 타짜
개봉을 손꼽아 기다린 케이스에 속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나의 단호한
결심은 타짜가 개봉된 그 주에 행동개시로 이어졌다.
영화 타짜의 최대 강점은 배우들의 열연과 주.조연 할 것 없는
뛰어난 연기력을 꼽을 수 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생각에는 "고니" 역의 조승우도 조승우지만
"평경장" 역의 백윤식, "고광렬" 역의 유해진, "정마담" 역의
김혜수, "아귀"역의 김윤석의 연기가 어느 한 사람 부족함없이 잘
소화한 덕분에 타짜가 관객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각각의 인물 별로 내가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타짜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개성이 넘친다.
그리고 그 개성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주인공을 보좌하는 것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지 않는다.
나는 특히 백윤식과 유해진의 연기가 참 맛깔스럽게 느껴졌다.
한 방송사 주말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서 "백관장" 역으로
출현했던 그는 출세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온 순박한 시골 청년
"병달"에게 공중부양을 가르쳐준다며 그의 스승이 된 인물이었다.
순진한 병달은 스승님(?)을 깍듯이 모셨고, 백관장은 그런 병달을
이용했다. 날이 갈수록 병달의 의심은 깊어졌고 급기야 주위 사람들에게
백관장이 진짜로 공중부양을 할 줄 아냐고 묻기에 이른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만장일치였고 병달을 갸우뚱 하면서도 계속 백관장 밑에 있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해가 뜨는 어슴프레한 아침에 낚시줄을 나무와
몸에 연결해서 공중부양을 한 것처럼 장난을 친 것인데 거기에 주위
사람들이 껌뻑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악의가 없는 장난이었지만
그것이 진실로 굳혀져 버리고 사기꾼 백관장은 그렇게 병달을 속였다.
물론 백미는 백윤식의 연기였다. 잔뜩 흥분해서 백관장에게 따지는
병달에게 그는 잔잔한 호수같은 어조로 진실을 말한다.
그 때 백관장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히 압권이었던 것!!
나는 그 때부터 백윤식이라는 배우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우리 땐 인성이 같은 얼굴은 얼굴도 안 쳤다던 그의 CF 대사처럼
젊었을 적 그는 마초형의 미남이었다. 지금이야 올해로 환갑이시지만
옛날 스크린에서 그의 모습은 뚜렷한 이목구비의 서양식 얼굴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목소리는 또 어떻구?
억양의 높낮이, 악센트의 강약을 탁월하게 조절함으로써 대사
하나라도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그의 능력은 그가 출현한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관람 포인트가 되어버렸다.
"범죄의 재구성"하면
"어떤 씹쌔끼가 내 불알이 쪼그라들었다 그래~!!"
"싸움의 기술"하면 "피똥싼다~!"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사기꾼 이미지를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유독 사기꾼 역을 많이 맡은 그는 정작 사기꾼 같은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이 된 것일까, 아님 사기꾼으로 캐스팅 되어서 사기꾼같이 보이는
것일까...
나는 백윤식이라는 배우가 왜 그 동안 영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아주 파격적인
등장을 했던 이 중견배우 (OR 원로배우?)는 후에도 "그 때 그 사람들",
"싸움의 기술",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싸움의 기술에 나왔던 은둔형 고수처럼 그 역시 내공있는
배우였다. 계속 은둔하다가 마침내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다시 놀던
물(?)로 돌아온 그는 그 동안의 공백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연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관객들에게 그 맛을
제대로 선사하고 있다. 이런 배우가 왜 좀 더 일찍 영화배우로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광렬" 역의 유해진은 이 영화의 감초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입에 모터라도 달았는지 늘 쉴새없이 조잘대지만 언제나 정감이
넘치는 캐릭터이다. 말이 많은 캐릭터이므로 어설픈 대사처리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유해진은 막히는 부분 없이 국수가락처럼 술술 잘도
뽑아낸다. 만약 유해진의 연기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쯤으로 보인다면
소설 책 한 페이지를 펴놓고 빠른 속도로 읽어보라. 그리고 연기까지
해보라. 생각 이상으로 어려워서 당황할지도 모른다.
양복 차림에다가 안경을 척 걸치고 있는 모습이 평범한 회사원같이
보이지만 광렬이도 엄연한 타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도박판에서 고광렬만큼은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어도 고니를 지키려 했고 고니를 단순한 사업
파트너 이상으로 친동생처럼 대했다. 그래서 타짜 캐릭터 중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정이 가는 캐릭터로 기억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쟁쟁한 타짜 중 유일한 홍일점 "정마담"-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면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이 역할을 연기할
사람은 김혜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아니, 어울릴만한 사람이 없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우선 몸매에서 밀리기 때문..;;;;;
그녀의 애교 넘치는 "예림"이 연기는 네티즌 사이에서도 화자된 적이
있을만큼 가식이 잘 묻어났다. 짧은 단발머리와 화려한 의상, 진한
빨간색 립스틱으로 마무리한 그녀의 모습은 정마담 그 자체였다. 부드럽고
밟은 색상의 원피스, 넓은 머리띠를 한 그녀는 귀여운 요조숙녀 역할에도
딱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조금
에러였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잘 못 느끼지만 영화 시작과 끝,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그녀의 나레이션은 귀에 거슬리는 감이 있다.
목소리에까지 이의를 제기한다면 괜한 트집으로 비쳐질려나???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정마담은 동정이 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도박 세계의
설계자로서 머리도 잘 돌아가고, 그 명성에 어울리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워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마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이면에는 돈에 대한 집착과 평경장에 대한 복수심이 도사리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보면 평경장 덕분에 이 쪽 세계로
입문했고,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맘 속으론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배신과 음모가 남발하는 어두운 뒷골목에
정마담은 신물을 느끼고 믿을건 돈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인간미라고는 발가락에 때만큼도 없는 냉혹한 타짜들의 세계에서
사람은 믿을게 못된다. 오직 돈만이 진실이고 정의이기에.
돈을 위해서라면 친구든 원수든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에 정마담은
자신의 모든 돈을 잃었지만 또다시 그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가진 것이 바로
타짜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정마담의 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를 들으면서 그녀를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평경장과의 사이에서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타짜 최고의 악역 "아귀" 김윤석.
평경장과 고니가 헤어지는 기차역에서 첫 등장한 아귀는 자신의
존재만을 알리며 잠깐 등장한다. 이어서 그가 재등장하는 때는
영화의 종반부.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다른 배우들의 입을 통해 아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특히 라이벌인 평경장이 상당 부분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영화의 긴장감과 기대치를 위해서 아껴놓은듯 하다.
심상치 않은 첫 등장에서부터 언젠가는 아귀와 고니가 목숨을 건
한 판 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걸 관객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최고의 타짜가 되기 위해선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 최고의 정점이다. 도박도 일종의 심.리.전.
때로는 공갈도 칠 줄 알아야 하고, 못 먹어도 go를 외칠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너무 잘 알아서 병인 아귀에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오는 씬은 그리 많지 않지만 "김윤석"은 아귀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랄하고, 잔인하고, 교만하고, 방심했던 아귀는
승부의 대가에선 너무나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상대방에겐 잔혹했지만
자신에겐 적용하려하지 않았던 아귀는 악역의 전형이다.
어쩌면 아귀라는 캐릭터가 사람들이 왜 도박에 빠져드는지를
말해주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도박은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걸고서 하는
대가성 게임이다. 잃지 않으려 발악하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승과 패의 감정은 극대화가 된다. 승리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패배의 잔은 유독 쓴 법이다. 잃었기 때문에
화가 나고 다시 되찾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빼앗긴 것을 찾은
후에는 상대의 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에 충실한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박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는게 아닐까?
나 역시 화투를 좋아한다. 하지만 잃는걸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종종
상대를 괴롭히곤 한다. 거기에 지친 상대는 본전을 돌려줄테니 그만
하자고 애원하다시피 하지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고집까지 피운다. 반드시 따고 말겠다는 일념 하에 결국 밤을 꼴딱
새워서 상대의 돈을 모두 따낸 적도 있다. 그래서 내가 화투를 치자고
하면 모두들 겁을 낸다. 아무리 구슬려보아도 결과는 매한가지.
이미 나의 추잡한 승부근성에 혀를 내두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도박은 자신이 잃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시작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미련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것을 쉽게 가져올 수 있는 방법 -
그리고 그것을 정당함으로 포장할 수 있는 수법 -
큰 노력없이 단기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 -
그것은 매력인가, 아니면 마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