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What it is to know God?)
John Calvin / 서문강 역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 지식을 통해서 어떤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또한 무엇이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당한 것인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여, 하나님에 관하여 바르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앙이나 경건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알려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은, 제 혼자 내버려두면 상실되고 저주받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중보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주(救贖主)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하는 류의 지식들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담이 정직한 상태를 고수(固守)하고 있었으면 단순한 본성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도달하게 되었을 단순하고 원초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다.
현재 인류가 파면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시기까지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아버지나 구원의 주로나, 어는 방면에서도 화목할 이로 생각할 수 조차 없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전하시고, 당신의 섭리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당신의 선하심으로 우리를 먹이고 모든 류의 복락을 우리에게 베푸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화해의 은혜를 받아 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런데 주 여호와께서는 성경의 일반적인 교리대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창조주로서만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런 후에는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시는 주(主)로 드려내셨다. -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두 종류의 지식이 떠오르게 된다. 전자(前者)에 속한 것을 여기서 숙고해 보고자 한다. 후자에 속한 것은 나중에 그 차례가 되면 다루기로 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 그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종류의 예배라도 드리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모든 사람이 경배하고 찬미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善)의 원천이시니 우리가 오직 그분 안에서만 모든 것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아울러 가지기 전에는 그러한 주장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내가 뜻하는 바를 더 설명하면 이러하다. 하나님께서 한 때 세상을 지으셨다고 확신할 뿐 아니라, 당신의 한없는 권능으로 세상을 붙잡으시고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특히 선하심으로 세상을 지탱하시고, 공평과 판단으로 인류를 다스리시고, 긍휼로 인류를 참으시며 그들을 보호하사 지키심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빛이나 지혜나 공평이나 권능이나 정직이나 순전한 진리 - 그것들의 어느 한 점도 그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고, 그를 원인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우리는 확신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기대하고 구하고,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알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이러한 지각은 우리에게 경건을 가르쳐 주는 바른 선생이다. 거기서 종교와 신앙심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내가 경건이라 할 때는 하나님의 은택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고취된 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합해진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자기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나왔음과, 자기들이 하나님의 끊임없는 돌보심으로 양육되고 있음과, 하나님께서 모든 복락의 주가 되심을 인식하게 되어, 하나님을 등지고 그 어느 것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자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아니,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행복이 있음을 인식하기까지는 신실과 진리를 따라서 자신들 전체를 포기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따져 보자고 제안한 자들은 아주 차가운 사변(思辨)으로 우리를 현혹할 수 있을 뿐이다. - 우리에게 있어서 더 유익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류의 존재이시며,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것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세상을 돌보는 일에서 손을 떼고 거저 유희자족하며 안일에 빠져 있기만 하는 신(神)을 생각하는 에피큐레스 학파 철학자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간단하게 말하여,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신(神)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으면 마땅히 그 지식은 우리에게 경외함과 두려워함을 가르치는 효력을 가져야 한다. 그 지식의 ‘두 번째’ 효력은 우리를 안내하고 가르쳐서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도록 우리를 유도하고, 구한 것을 받았을 때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개념이 마음에 들어오는 데도 어떻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지으신 바니, 마땅히 우리는 창조의 법 자체로 말미암아 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데도 즉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단는 것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의 법칙이어야 마땅하니,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방식으로 틀이 짜여 있지 않다면 정말 우리의 삶은 서글프게도 부패되어 있다는 피할 수 없는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편, 하나님께서 모든 선함의 기원과 근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개념은 분명하지 못한 게 틀림없다. 그러니 이지의 부패로 인하여 탐구(探究)의 바른 과정을 벗어나게 되지만 않았었다면,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액착심이 함께 일어났을 것이다.
무엇 보다 먼저, 경건한 지성은 그 자체로 어떤 류의 신(神)도 궁리하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 바라본다. 또한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류의 특성을 상상하여 하나님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계신 것같이 꾸며대지도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특성을 계시하여 주셨는데, 경건한 지성은 바로 그 계시하신 특성으로 만족해하며, 언제나 부지런하여 깨어 하나님의 뜻을 범하지는 않았는지, 주제넘은 무엄한 자세로 바른 길을 벗어나 방황하지는 않고 있는지 자신을 살핀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는 방식을 지각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안내자와 보호자로 믿고 온전히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의탁시킨다. - 그는 모든 복락이 바로 하나님께로서 주어짐을 알고, 곤고함이나 어떤 궁핍감을 느낄 때에는 즉시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마음에 떠올리고 그가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 - 그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자비하심을 확신하여 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뢰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어 자기가 궁핍할 때마다 필요한 처방을 주실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와 주로 여기고 모든 범사에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위엄을 존중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더욱 더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엄정하게 범죄를 벌하실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여기므로 항상 그 생각 속에는 하나님의 재판석이 그려져 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재판보좌에 대한 외경심 속에 항상 깨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노를 격발할까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판단을 알고 두려워한 나머지 그 재판보좌 앞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스스로 그 보좌에서 물러서기를 바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판단보좌를 이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악을 복수(復讐)하시는 분 못지 않게 의인(義人)에게 상을 주시는 이심을 믿고 환영한다. 그 이유는 악함을 위하여는 심판의 형벌을 쌓아 놓으시고 의인을 위하여는 영생을 예비하신 것 모두 다 동등하게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심판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다.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상전으로 알고 영예롭게 하고 복종한다. 비록 지옥 같은 것이 전혀 없다손 치더라도 그는 하나님을 거스른다는 생각 자체를 혐오할 것이다.
순전하고 진정한 종교, 곧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이 그와 같이 진지한 두려움 - 곧 그 속에 단 마음으로 경외하는 것과 율법이 지시한 합법적인 경배를 둘 다 내포하고 있는 두려움을 수반한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고 마구잡이로 고백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을 더욱 주의 깊게 숙고해 볼일이다.
※ 본 글은 “진리의 깃발”1997년 8월호(통권26호) pp.16~21을 typing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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