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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4 Seo

장민석 |2006.10.28 07:20
조회 21 |추천 0


9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사이드 어테커

풍부한 운동량, 성실함과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과감한 돌파가 특징

포워드도 가능한 그, A메치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86경기 16득점)

사이드 돌파만이 아니라, 중앙돌파도 수준급

하지만 최고의 장점은 뛰어난 센스

그가 지나갔던 월드컵 대회만 3회, 대한민국 부동의 윙어 였다

K-리구 수원에서 그는 캡틴이였다.

언제나 그는 공격을 이끌었고, 멋진 득점도 상당수 올렸다(269경기 68득점 25도움)

또 큰경기에 강하다는것이 강점

 

92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스웨덴전의 골과

94미국월드컵 스페인전 동점골

97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의 헤딩골이 인상적

 

92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대비해

한국은 외국인 감독 독일의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기용한다

올림픽팀이 훈련을 하는동안, 그는 서정원에게 애정을 쏫는다.

감독은 어떻게든 그를 독일 프로팀에 뛰게 하고 싶었다

그의 플레이가 작은 무대에서 머무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병역 미필자였다

군대문제가 있다고 얘기 하자 크라머감독은

"그럼 바로 군대를가라. 그2년 동안 월급을 넣어주겠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축구협회에선 국가대표 소집하기 어렵단 이유로 실패

올림픽 스웨덴전 이후 바르셀로나 구단과

몇번의 접촉이 있었지만 계약실패

 

94년 군 복무중 그는 월드컵에 불려나간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스쿼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왼쪽의 하석주 오른쪽의 서정원

당시 외신기자들은 대한민국의 양 사이드는

최고의 공격성과 정확성을 지녔다고 말했다

역시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스페인전 0:2로 후반전에 들어간다

패색이 짖어진 후반 39분 홍명보의 프리킥 작렬!

43분 대한민국의 빠른 역습에 당황한

스페인의 틈을타 서정원은 재빠르게 2선침투 한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홍명보는 칼날같은 스루패스! 서정원 1:1 찬스

침착하게 오른쪽 구석을 가르는 그의골...

그때 새벽의 대한민국은 밝았다

 


Q : 처음 프랑스에 진출하였을 떄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Seo : 그때 진출했을때는 그동안 꿈꿔왔던 거니까 상당히 좋았죠
바로 데뷔전 할 때부터 골을 넣었고, 연속골을 ㄴ허기도 했고, 일단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국제경기도 많이 했었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응이 빨랐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갔을때가 거의 후반기였는데 팀이 13위, 14위쯤 이었어요
2부로 떨어질 위기에서 게임에 계속나가고 골도 넣고 하나보니까
인기가 많아 졌었죠.
프랑스 관중들이 "세오" 라고 외치기도 하고 태극기를 이상하게
바꿔가지고 그려오기도 하고 그런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너무나 기분이 좋았고 우리 와이프도 좋아했구요
당시에 정말 잘했어요. 마지막 게임에서는 골 넣어서 우리가 2부로
안 떨어지게 되었었죠
결국,1부팀에 남게되고 다음시즌에 들어가게 되는데 대우가 엄청
달라졌어요.
갖고 싶은 번호를 묻자 11번이라고 대답했어요
11번도 받고 팀 홍보를 했어요. 당시에 거기 프랑스 대표 선수
한 명이 있었어요. 그 선수 하고 저하고
팀 연간 회원권 홍보에 등장하게 되고, 팀의 간판도 되었구요
스트라스부르 시내에는 대형 간판으로 제 얼굴이 나가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있었거든요
특히 꼬마 애들한테 인기가 있었고

어떤때는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걸어가는데
버스기사가 가다가 얘기 하기 위해서 차를 세우기도 했죠

 

그는 지금 제 2의 전성기를 맡이하고있다
유럽에서 멋진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실력과 스타성에 비해선
그의 명성이 다소 미천한 것임에 틀림없다.

 

 - 히딩크 자서전의 한 내용

Q : 한국 대표팀 감독을 하는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는가?

Guss : 서정원을 대표팀에 넣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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