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랑으로 살인을 묻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화경 |2006.10.30 01:46
조회 23 |추천 0

'사랑으로 살인을 묻다'라는 제목은 언뜻 본 인터넷 신문에서 따왔다.

어느 신문인지는 모른다. 다만, 매력적이다-라는 이유 하나로 슬그머니, 가져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두 가지 버젼이 있다. 하나는 영화고, 하나는 영화의 원작인 공지영의 소설이다. 웬만하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편이나 이번에는 영화부터 봤다.

 

 이나영과 강동원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궁금'했다. 결정적으로 공지영의 소설을 도서관에 가서 검색을 거친 후에 책을 서가에서 찾아서, 뽑아들고 대출대에서 바코드를 찍는 과정이 귀찮았기 때문이다.

 

 조조할인으로 보았던 우행시는 그 여파가 일주일은 넘게 갔다. 일주일 내내 왠지 모를 비감함에 빠져 지냈던 것이다. 기분전환용으로는 전혀 추천할 만한 영화가 아니다. 이나영과 강동원만 아니었더라면...!

 

 영화의 업그레이드 편이겠지 하면서 본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나영이 소설과 달리 '삭제'된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 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고 말한 것이 이해가 갔다. 상당부분이 영화와 원작소설은 표현을 달리했다.

 

 윤수가 살인자가 되기까지, 문유정이 어머니 앞에서 링거병을 내던지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 소설과 달리,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한 '우행시'였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 긴 소설을 잘 압축, 포장한 감독의 연출력이 놀라웠다.

 

 사형제 존치론자인가 폐지론자인가를 심각하게 묻게 되는(그 이유가 강동원이기 때문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영화와 달리, 소설은 보는 사람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윤수라는 애가 어떻게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서 끝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 지를 담담하게 그려보일 뿐이다. 전적으로 독자들에게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한다기 보다는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핸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매체라 할 수 있겠다.

 

 후기에서 ...나는 고만고만한 교양있는 사람들 틈에서 자라났고 커서도 고만고만한 교양있는 사람들과 교류해왔다...라는, 태생적 범위의 한계(?)를 고백하는 작가의 말이 이 소설 전체보다 더 인상깊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계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이들의 평등한 자유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도 분명한 계층의 선은 그어져 있고, 평생동안 그 선을 넘어보는 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평행선을 그으며 살아간다. 서로 이해할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오해는 깊어져 가고 이는 불신으로 , 종국에는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이 아닐런지.

 

 사랑으로 살인을 묻는 소설이라기 보다,

 사랑으로 사회를 묻는 소설 같다.

 당신은 어느 곳에 속해 있으며 그 곳에서 한발짝이라도 벗어나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문유정이 충격받았다던 서울 달동네 이야기를 그저 크리스 마스, 명절 즈음에 등장하는 '환타지'로 여기지 않았는지, 문유정이 보았던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실화인지 아니면 단지 활자에 같힌 죽어버린 이야기에 불과한 지 말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후자다. 단지 내 발걸음의 범위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