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신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과학적. 철학적. 윤리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이렇다 할 명확한 답이 잘 안나오는군요.
제가 속해있는 기독론 적으로 풀이를 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은 반발만 하실테죠.
불교신자님의 글을 읽고 아마 제가 이 글을 쓰는거 같습니다.
현재의 여러종교와 마찮가지로 한국기독교 또한 체계적으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론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주님께 나아가는 방법과 단체를 운영하는 것에 있어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천태종과 조계종이 추구하는것에 약간의 차이가 있듯. 여러 교파에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안에는 직위가 여러가지가 있는 곳도 있고 간단한 곳도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를 힘차게 하는곳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하는 곳 또한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담임목사의 성향에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성도 또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꼭 그리 '아 저사람 정말 참 되구나. 독실하구나.' 라고 백이면 백 전부 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모두 다 같은 것 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학에서는 불교에대한것과 철학에 대한 것 또한 배웁니다. 그러면서 기독론을 더욱 이해하는 것이지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별의 별 사람이 신학을 배우고 합니다. 이기적인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꾀가 많은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 자칫 신비주의적인 사람. 이들을 모두 다 '나쁘다'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주 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추구하는 것이 있기때문에 신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꼭 목회자의 길을 가기위해서 신학을 공부하는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더 명확히 말씀드리자면 '돈'을 벌고자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허나 돈이 맹목적인 목회자가 많아 진다면 우리의 교회는 몰락하고 말 것 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회는 절대로 '돈'이 맹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말씀'이 맹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돈'이란 사람을 아니 인간을 미치게 만듭니다. 그것은 어러분들이 더 잘 아실겁니다.
논리에 있어서 간단히 말씀 드리면. 일단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봤을때의 주체는 '나' 입니다. 허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 봤을때는 '신' 입니다. 그러하기에 관점이라는 것은 서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의견이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토론광장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렇다' 라는 주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아니다' 라는 주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면 서로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논리가 있고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허나 상대방 입장에서 봤을 땐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체의 지식이 상대방의 지식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나의 논리를 깨 부수기 위해선 상대방의 논리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버리고 설사 그가 논리적으로 입증된 자료와 여러 사례들을 가지고 나온다면 그는 자신의 논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저것은 전부다 날조된 것이며, 거짓말 하는 것이다' 라고 묵과하고 부정을 해버립니다. 이것은 인간의 심리적인 보호본능과 우월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속에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입니다.
로마서4장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믿음을 줘야 믿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계획하신 장부에 선택된 자들을 표명하는 말씀입니다. (나의 백성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반발하실겁니다. '믿음을줘야 믿게된다고?? 그럼 전도는 왜 하는것인데?? 왜 사람을 귀찮게 하고 저주를 퍼붓는것인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믿음이 생기는 사람만 교회 나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허나 우리들은 그 전도라는 행위를 통하여 숨어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좀 더 찾으려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어린 양을 찾았을때에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탕자가 돌아왔을때 또한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허나 저는 생각합니다. '맹신' 이란 좋지 않다고 말입니다.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맹신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추호도 생각을 하지 않으려 들며 오직 세상엔 '주님과 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로인해 믿지않는다면 저주를 퍼 붓고 욕을하고 화내고 때리기 까지 합니다. 이 권한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여 절대 그들보다 뛰어나서느 안되는 것입니다. 낮았으며 낮았지 높지는 않습니다. 벼가 익으면 고개르 숙이는 거와 같이 우리는 스스로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교만된자를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인다고 말씀하셨고 실천하셨습니다.
인간의 본질성에서 봤을때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하는것은 우월주의는 거의 본능 수준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낮추는것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는 술취한 사람이었고,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하였고, 이삭은 공상가였고, 야곱은 거짓말쟁이였고, 레아는 못 생겼었고, 요셉은 학대를 받았었고, 모세는 말을 잘 못 했고, 기드온은 두려움이 많았고, 삼손은 긴머리에 바람둥이였고, 라합은 기생이었고, 예레미아와 디모데는 너무 어렸었고,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하였지요..엘리야는 심한 우울증 환자였고, 이사야는 벌거벗은 설교자였고,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였고,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했고, 막달라마리아는 귀신이 씌웠었고, 사마리아의 여인은 이혼을 여러번했었고, 바울은 너무 율법적이었었고, 디모데는 궤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자신의 일에 쓰셨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병들기 마련입니다. 예수를 믿는것 만으로 병에 안걸리고 암도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다면 이는 신비주의 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충만함과 평안한 안식, 그리고 마음의 위로와 구원을 바라며 주님앞에 나아와 좀 더 참되고자 무릎을 꿇습니다.
마치며. 제가 볼때의 그 목사님은 이상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에쿠스를 타게되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쿠스를 탄다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히 제가 생각하기엔 어찌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바쁜지 모르겟습니다. 저도 에쿠스나 한번 타 봤으면 좋겠군요. 아무리 십일조는 목자의 몫이다라고 말씀하셨기로니...참...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래서 인간이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