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월 15일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인 침례교 목사였던 아버지 마틴 루터 킹의 사랑 안에서 훌륭하게 자라나 1948년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덱스터 교회 목사로 목회를 시작합니다. 그가 목사로 재직하고 다음해인 1955년 12월 1일 몽고메리에서 버스를 타고 있던 흑인할머니 로사 파크스가 백인남성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구타당하고 경찰에게 체포까지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흑인인권운동가로써 일선에 나서게 됩니다. 그는 몽고메리에 버스 보이콧을 전개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몽고메리주에 흑인들의 100% 가까운 참여를 이끌어 냈다. 알라배마 주립대학의 학생들이 자동차 함께 타기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2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백인 사회는 카풀을 금지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그를 고소하는 등 그를 옥죄여왔습니다. 그해 11월 13일 미 연방최고 법원이 버스 내 흑백분리를 규정한 앨라배마 주 법률에 대해 위헌으로 판결했고 1956년 12월 20일, 마침내 버스 내 인종분리를 금지하는 명령이 몽고메리에 내려졌습니다. 남부 그리스도교 지도회의를 결성하고 계속하여 흑인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흑인들을 각성시키고 백인들에게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식당의 런치 카운터 연좌운동, 불매운동, 선거인 등록울 위한 평화행진, 버스 보이콧등 다양한 기독교 인권운동을 감행 30여 차례나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수차례 투옥과 석방의 반복 속에서 그리고 KKK단에 의해 그의 형의 집에 폭탄테러가 일어났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고 철저히 비폭력주의에 입각하여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어내기 위한 ‘공민권 운동’(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 등)등을 이끌며 활약하였습니다. 그의 워싱턴 대행진에는 흑인들 뿐만 아니라 많은 백인들이 함께 하였고 미국 사회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1964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르웨이에서 그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는 모두가 꺼려하던 베트남전에 반대의사를 피력했고 1968년 4월 테네시주(州)의 멤피스시(市)에서 흑인 청소부의 파업을 지원하다가 암살당하기까지 계속하여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의 꿈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었습니다. 그의 메세지는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 었습니다. 그는 흑인과 백인이 하나의 생명으로써 동등한 위치에 서있길 원했습니다. 그는 흑인할머니가 버스에 서서 가지 않길 원했습니다. 그는 흑인 아이들이 백인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길 바랬고 공원에서 함께 놀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배가 고플때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돈을 내고 음식을 사먹을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 당연한 메세지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끝내 암살되고 맙니다.
그가 암살된 멤피스에 호텔 외벽에 누군가가 이런 글귀를 써놓았다고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뤘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어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이 당당히 이렇게 외칠 수 있길 원합니다.
I HAVE A DREAM
(참고자료 이충섭의 홈)
첨부파일 : 루터킹목사 워싱턴 연설문(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