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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여! 일어나라, 깨어나라!

박희중 |2006.11.05 10:06
조회 22 |추천 1

⑤아웅산 수지여사

 아웅산 수지여사라고 하면 아마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미얀마 라는 나라는 더욱더 그렇겠지요. 아웅산 수지여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미얀마란 나라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얀마는 남한 면적의 7배정도의 크기에 인구는 4,200여만 명이다. 정식명칭은 미얀마 연방이며 서쪽은 인도양이 북동쪽은 중국과 동쪽은 태국 라오스 북서쪽은 인도와 접한다. 미얀마는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 19세기에 들어와 아시아로 진출한 영국과 충돌하게 되어 결국 1824년 싸움으로 물메인 지방을, 1852년 싸움으로 삼각주 전역을 잃었으며, 1885년 마지막 싸움에 패함으로써 붕괴되고, 미얀마 전영토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차 대전때는 일본에게 점령 당했고 일본군을 영국군과 함께 몰아내고 그들은 독립을 이뤄냈지만 나라가 각기 독립을 외치며 일어나 분열됐고 그들과 통합을 꽤하며 나라의 안정에 힘쓰던 우누정권이 신뢰를 잃어가던 혼란의 틈을 타 1962년 3월 2일 장군 네윈이 이끄는 미얀마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정당활동을 정지시키고, 총리 우누 등 많은 정치인을 체포함으로써 미얀마는 군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군부의 독재가 지속되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우리의 60, 70, 80년대를 보는 듯 하다. 차이가 있다면 미얀마는 현재도 우리의 60 ,70, 8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얀마의 군부는 현재도 탄압과 폭력으로 미얀마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있다.』


 !!! 현실을 반영하는 사례로 우리나라가 제정한 국제인권상인 5·18광주인권상도 2004년 이 상의 다섯 번째 수상자로 80년 암울했던 우리 상황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다며 아웅산 수지여사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의 독재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아웅산 수지여사입니다. 그녀는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며 국부로 칭송받는 아웅산장군의 딸로 1945년 6월 19일 랑군에서 태어나 15살 때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고 모교의 영국인 교수 미카엘 에어리스와 결혼해 두 아들(첫째아들 알렉산더와 둘째아들 킴)을 키우며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즐기고 있던 그녀, 1988년 미얀마에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 어머니를 간호하러 입국하여 미얀마의 현실을 집접 목도하게 됩니다. 미얀마에서는 1988년 3월부터 네윈 군부에 독재에 반대하여 민중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전국적인 대봉기와 총파업이 발생했습니다. 군부는 그들을 향해 총칼을 들이대기 시작했고 진압과정에서 348명의 시민이 길거리에서 무참하게 학살됐습니다. 1988년 8월 8일 대대적인 민주화 항쟁(8월랭군)을 이끈 그녀는 네윈을 몰아냈지만 1990년 5월 서방의 압력에 의해 치뤄진 최초의 총선거에서 수지여사가 이끄는 NDL이 총 의석 수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정부는 정권이양을 거부하고 선거를 무효화했습니다. 군부는 오히려 민주화 지도자 수백명을 잡아들이고 수지여사 또한 현재까지도 가택연금하고 있으며 그녀를 돌보는 주치의와 가정부들만이 그녀와의 접근이 허락되고 있습니다. 그녀는 20여년의 가택연금 생활동안 군부는 그녀에게 때로는 목숨에 대한 위협 협박을 하기도 하고 망명을 권유하며 편안한 삶으로 유혹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고 여전히 묵묵히 그녀의 감옥과 같은 좁은 집에서 미얀마의 심장에 불씨를 살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불씨가 큰 불이 되어 조국이 민주화의 불길에 휩싸일 때 까지 그 불이 미얀마 국민들을 착취하고 강간, 폭행 등 갖가지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군부를 한 줌의 재로 태워버릴 때까지 그녀의 비폭력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1991년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그녀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주었으나 그녀는 연금생태였기에 시상식에는 남편 미카엘 에어리스와 두 아들 알렉산더 킴이 그녀의 사진을 들고 대신 참석합니다. 그녀는 메세지를 보내 수상소감을 대신했습니다.


 

 1999년 남편인 미카엘 에어리스가 암으로 사망했으나 그녀는 미얀마를 떠나는 순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아웅산 수지여사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로써 두 아들의 어머니로써의 삶을 포기하고 고통받는 미얀마의 4,200만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투쟁하고 있습니다. 전 그녀가 결코 가족들을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 그들과 떨어져 지낸 20여년의 세월을 그녀는 미얀마의 자유와 미얀마의 고통받는 4,200만에 대한 사랑으로 견뎌냈을 것입니다.  그녀의 사랑과 그녀가 꿈꾸는 미얀마를 나 또한 꿈꾸며 사랑으로 미얀마의 자유와 평화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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