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외국에 나간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해외여행은 아직도 낯설다. 고작 해야 동남아시아나 돌아다니던 차에 촌놈이 지중해 건너 제법 먼 곳까지 갔으니…. 그리스를 돌아다닌 기간은 총 9박 10일간의 일정에서 고작 이틀뿐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다. 아니 많은 걸 느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거기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그리스문화에 대한 그 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이었다. 여행 기간 동안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 시티투어, 에기나섬, 수니온곶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구경했다.
아마 이 여정은 대부분의 여행사가 내놓는 일정표에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따로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나 역시 여행 전에 이곳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서 어느 정도 알고 갔으니까.
그런데 남의 나라를 여행할 때 사람들은 그 나라의 첫인상을 어디서 받을까. 사람에 따라, 또 나라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리스에서는 공항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속을 밟고 회전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비행기 일정을 빼곡히 알려주는 안내판 옆에 기다랗게 내려뜨린 한 맥주회사의 광고 문구가 눈에 띄었다.
“Greece has exported 51,807 words to the world and kept one for itself : Mythos.”
▲ 그리스인의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한 맥주 광고를 통해서 알리다
ⓒ 정판수
상표가 ‘Mythos’인 맥주 선전이었는데 그 짧은 문구가 그만 눈 속에 콱 들어와서는 박혀버렸다. “그리스는 전 세계에 5만1807개의 단어를 전파했고~”라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말 같은데도 이렇게 뇌리에 박혀버린 건 아무래도 내가 국어교사이기 때문이리라.나는 국어사전을 펼칠 때마다 좀 서글픔을 갖는다. 불행하게도 사전에 실린 단어의 60% 이상이 한자다. 이는 역사적으로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생긴 현상이지만 그래도 서글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는 영어 역시 60% 이상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어원을 갖는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는 α(Alpha)요, 끝 자는 Ω(Omega)다. 지금도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말할 때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란 관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리고 내 직업과 관계있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학부형 아니면 학생이니만큼 ‘학교(school)’의 어원이 그리스어 ‘여가(schole)’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또한 이집트가 가장 자랑하는 ‘피라미드(pyramid)’도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에서 왔으며(이집트인들은 ‘메르’라 부름), 가을 들길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코스모스(cosmos)’도 그리스어 ‘코스모스(kosm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질서'혹은 '조화'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우주를 뜻하기도 하고.
그리고 화학을 배운 경험이 있는 이라면 ‘1, 2, 3, 4 ~’에 해당하는 ‘모노(mono), 디(di), 트리(tri), 테트라(tetra), 펜타(penta), 헥사(hexa), 헵타(hepta), 옥타(octa), 노나(nona), 데카(deca)’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들은 이미 ‘모노’가 ‘모노드라마(1인극)’로, ‘트리’가 ‘트라이앵글(3각형의 악기)’로, ‘펜타’가 ‘펜타곤(5각형의 미국 국방성 건물)’으로, ‘데카’가 ‘데카메론(10일간의 이야기)’에 쓰이고 있음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리스에서 본 문화유적은 시간이 감에 차츰차츰 잊혀져 가는데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한 건 공항에서의 맥주 선전 광고 문구다. 달리 말하면 거기서 느낀 그리스인들의 자기 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혹 그리스 여행을 많이 한 이라면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리스인들은 자기 문화를 다른 외국인에게 ‘제발 와서 봐 주시기 바랍니다’하고 권하기보다는 ‘보고 싶으면 와서 보시오’하는 형태다.
어떻게 보면 도도하기까지 한 이런 면은 그리스인들의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왔다고 본다. 적어도 문화면에서 우리를 넘어설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다소 건방져 보이는 이런 자세가 오히려 밉지 않게 보이는 건 웬 일일까?
문득 인천공항을 생각한다. 여러 나라를 가 보진 않았지만 외형 면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맨 처음 찾는 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뭔가를 보여주는 데는 부족하다고 여긴다.
오늘 몇 달 지난 사진을 뒤지다가 우리도 우리 문 앞에 세워야 할 뭔가를 생각해 보고 한 번 만들어 보았다.
▲ 우리 인천공항에도 우리 문화를 한 눈에 알릴 걸 달아야 하지 않을까?
ⓒ 정판수
두 사진 중 아래 사진의 포토샵은 김태현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