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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는 그녀의대한모든것

이현주 |2006.11.06 22:32
조회 73 |추천 1

마릴린 먼로는 금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이다. 그녀는 우아한 그레이스 켈리도, 아름다운 오드리 햅번도 아니었지만 육감적인 몸매와 뇌쇄적인 눈빛만으로도 관객을 휘어잡을 줄 아는 배우였고 그 만큼 헐리우드에 끼친 영향도 지대했다. 먼로는 비록 대자대비한 성모와는 정 반대에 서 있는 극단의 악독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노마진 베이커, 그리고 마릴린 먼로.

 

1926년 마릴린 먼로는 '노마진 베이커' 라는 본명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기도 전에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지독한 가난에 찌들렸으며 문란한 사생활을 지속했다. 먼로는 아니, 노마진 베이커는 수시로 바뀌는 어머니의 '남자' 들을 지겹게 보고 자랐고 심각한 정서 불안에 시달린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노마진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훗날 먼로가 회고하기를,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항상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무서워 어머니가 집에 들어올 때면 장롱 속에 숨어 울곤 했다." 고 했을 정도다. 어머니는 노마진에게 항상 침묵을 강요했고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서슴없이 구타를 하고는 했다. 그 당시 노마진이 겪었던 상처는 성인이 되서도 아물지 못하고 그대로 덧나 버리고 만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노마진이 7살 되던 해에 섹스 중독과 정신 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유일한 혈족이었던 외할아버지 역시 정신병원에, 증조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게다가 노마진은 양부모의 손에 맡겨지지만 곧 버려진다. 이 후, 10년이 넘도록 길거리와 고아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결국 16살 되던해에 21살의 짐 도허티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며 겨우 안정을 찾게 된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자였던 짐 도허티는 노마진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남편이 군에 입대하게 됐고 노마진은 다시 혼자가 됐다. 노마진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군수품 생산라인의 사진 모델에 지원했고 1944년 전문적인 사진 모델로 데뷔하며 화려한 연예생활의 시작점을 마련한다.

 

전문모델로 데뷔한 무렵 그녀는 사진작가 앙드레 드 디앙과 바람을 피웠고, 그의 조수인 윌리엄 번사이드와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때 그녀는 대륙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레일러 기사들을 위한 달력의 누드 사진 모델이 되었다. 이 후, 귀국한 남편은 노마진과 합의 이혼했고 노마진은 본격적으로 '돈 벌이' 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영화배우' 의 길이였고 그녀는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낸다.

 

바로 금세기 최고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의 탄생이었다.

 

 

 

창녀와 섹스심벌 사이, 마릴린 먼로.

 

먼로의 성공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드 모델 출신이었던 그녀의 몸매는 모든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형이었고 그녀는 육감적인 몸매만으로도 관객을 휘어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녀의 기질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성공을 일궈낸 곳이 바로 미국 내 굴지의 영화 엔터테이먼트인 '20세기 폭스' 사 였다.

 

폭스는 먼로의 매력이 정숙함과 우아함이 아닌 관능적인 섹시미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 이 후, 먼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약간의 백치미와 모든 남성을 품어줄 수 있을 듯한 먼로의 섹시미는 을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극대화 됐고 그녀를 헐리우드 부동의 톱 스타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1952년, 이러한 승승장구 속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던 먼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네 누드사진을 퍼뜨리기 전에 돈을 내 놓아라."

 

협박전화의 강도는 점점 더 거세어졌고 결국 먼로는 스스로 자신의 누드사진을 전국에 공개하며 "50달러를 벌기 위해 누드사진을 찍었지만 이제 나는 50달러로 코를 풀 정도가 됐다" 며 당당해했다. 물론 미국인들은 이 부동의 톱 스타가, 버리기 아까운 섹시 스타가 철 없던 시절 저질렀던 실수에 대해 관대했다. 결국 이 누드사진은 의 표지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고 먼로의 위치를 더욱 더 확고히 만드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디마지오, 평생의 사랑.

 

먼로는 공식적으로는 3번의 결혼 생활을 했지만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락 내리락 한 것은 수 백, 수 천번이었다. 그녀는 16살 첫 결혼을 시작으로 당시 메이저 리그 최고의 타자였던 조 디마지오와 2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자존심 강하고 강직했던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를 보고 첫 눈에 반했고 엄청난 속도로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그러나 조 디마지오와 마릴린 먼로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조 디마지오가 가정에 헌신적인 여성을 원했던 반면 먼로는 이미 헐리우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섹스심벌이었고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조 디마지오는 영화를 미칠 듯이 싫어했으나 먼로에게 있어 영화는 자신의 인생, 전부였다. 조 디마지오는 정숙하고 우아한 여성을 원했으나, 먼로는 그렇지 못했다.

 

조 디마지오는 아이를 간절히 원했으나 먼로는 이미 여러번의 낙태로 인해 아이를 가지기 힘든 상태였다. 결국 사진에서 보이는 것 같이 통풍기 위에서 치맛자락을 휘날리던 그 때, 조 디마지오는 수치심을 참지 못하고 마릴린 먼로를 구타했고 결국 먼로는 시퍼런 멍자국을 남긴채 조 디마지오와 합의 이혼했다.

 

비록 이혼으로 조 디마지오와 먼로의 결혼생활은 끝을 맺었지만 그들은 평생 서로를 사랑했다. 먼로는 그와 이혼한 뒤 마약과 약물중독에 빠질 정도였고 훗날 비참한 파멸을 맞을 때 까지 조 디마지오를 그리워했다. 이 후 먼로가 죽자 조 디마지오는 그녀의 장례식을 손수 지휘했고 매일 그녀의 무덤에 있는 꽃을 갈아줬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먼로의 생애는 행복 하나 없이 비참했으나 조 디마지오가 있었기에 화려했다" 고.

 

비참한 종말, 스스로의 파멸.

 

마릴린 먼로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사람이 조 디마지오 였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파멸시켰던 것은 케니디 형제였다. 마릴린 먼로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미국 대통령' 과 깊은 내연의 사실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핫 이슈였고, 수시로 언론의 공격을 받는다.

 

계속되는 언론 공세에 케네디 형제는 이 금발의 미녀를 지겨워 했고 결국 그녀를 버리게 된다. 마릴린 먼로는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졌고 계속되는 마약과 약물중독을 못 이기고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한 시대 최고의 스타가 맞은 비운의 상황이었다. 정신병원에 수용된 이후에도 먼로는 계속되는 성격파탄과 정신분열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이 누드 사진 작가, 음악감독, 후견인, 잡지 기자, 햇병아리 배우, 음성 코치, 동업자, 그리고 말년에는 자신을 태우고 온 택시기사, 식당 종업원 그리고 세계 초 1류 국가의 대통령의 즉흥적인 섹스 파트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로를 비참해 하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이 무렵 그녀는 "죽고 싶다" 라는 말을 자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나는 단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정신병원에서 먼로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던진 말이다.

 

영원한 미스테리, 먼로의 죽음.

 

여성으로서, 배우로서 평탄치 못했던 삶을 살았던 먼로는 결국 62년 8월 5일, 37살의 짧은 나이로 죽음을 선택했다. 먼로는 캘리포니아 브랜트로우 자택에서 한 손에 수화기를 든 채, 알몸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약물 과다 복용' 에 인한 죽음으로 발표했으나 수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자살이 아닌 타살의 의혹이 짙어졌다.

 

약물 과다 복용이라면 분명 구토와 함께 심한 몸부림이 동반되었을 터인데 먼로의 죽음은 마치 잠을 잔 듯이 조용하고 깨끗했을 뿐 아니라 위장 내에서 전혀 약물의 반응이 검증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먼로가 한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수화기도 마지막까지 살기 위해 몸부림 쳤던 먼로의 마지막 행동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우선 타살의 이유로 존 에프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로 이어지는 섹스 속에서 국가 기밀을 안 먼로를 두려워 한 나머지 백악관이 직접적으로 '살인' 이라는 극단적인 행태를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케네디 형제에게 버림 받은 직후 먼로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들이 계속 나를 이렇게 쓰레기 취급한다면 나도 신문사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는 의미심장한 말을 자주 건넸다고 한다.

 

또 다른 의견은 먼로가 소련의 지시를 받은 스파이였다는 것. 다소 황당무계한 가설일지 몰라도 먼로가 케네디를 진정 사랑하게 되면서 소련에게 적대적으로 변했고 결국 소련이 먼로를 죽임으로써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먼로가 죽기 전에 필사적으로 남긴 메모가 증거품으로 경찰서에 넘겨졌는데 1시간 만에 그것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다고 한다.

 

수많은 가설 중에서도 공통적인 것은 그녀가 자신과 친분이 있던 사이를 만나던 중 주사로 약물을 투여받았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먼로의 시신을 검사했던 검시관의 부검 원본 파일은 하루만에 실종됐고 그 검시관 역시 1년 뒤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죽음을 처음으로 진술한 첫번째 경찰 보고서 역시 사라지고 두번째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로써 먼로의 죽음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게 된 것이다.

 

 

헐리우드 최고의 톱 스타,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 그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배우로서는 큰 명성과 부를 얻었다.그녀의 이름은 곧 헐리우드의 또 다른 이름이 됐고 그녀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녀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은 배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부터 시작해 육체까지 모든 것을 대중에게 그러내 보였지만 그 만큼 신비스러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대중에게 공개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안 천재적인 배우였다. 지금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창출해 낸 극히 일부분의 이미지에 불과할 뿐 100% 먼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금세기 최고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그녀에게 감추어진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죽을 때 까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나.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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