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끝 부분에서 난 늘 발이 엉켰다.
함께 영화를 보러갔던 날도 영화관 에스컬레이커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또 발이 엉켰는데,
그걸 보고 있던 그 사람은 내팔을 이끌고 다시 뒤로 돌아가 에스컬레이터를 다시탔다.
끝 부분이 다가오자 그 사람은 말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을 세는거야. 박자에 맞춰서 오른발,왼발,오른발ㅡ 해봐'
헤어진 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더이상 엉키지 않는 내 발을 보며, 문득 아주 오랜만에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셋 을 세며 발을 맞추고 있는 내가 떠올랐다.
그 당시엔 눈을 감고서도 훤히 그려지던 잊지 못할 얼굴이 이제는 한참을 떠올려도 가물가물하다.
그 당시엔 눈을 감고서도 바로 알아채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한참을 생각해도 들리지 않는다.
내 인생에 있어 그 사람은 언제 있었나싶게 잊혀져가는 존재지만
함께 한 기억만은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나보다. 나도 모르게 문득 불러내는 그사람의 기억에,
그 떠올림조차 너무나 익숙해진걸로 보아 우리가 헤어진지 오래되었긴 정말 오래되었나보다.
사랑은 이제 가물가물하게 떠오를만큼 잊혀가지만
추억은 아직까지도 미처 내가 인지하지 못할 내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과거의 일이라 해서, 또는 헤어져버렸다 해서 억지로 모두 지워내는 어리석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잊혀지기엔 너무 아까운 날들이였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