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매체들이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가 점차 도를 지나치고 있다. 각 방송 매체들은 본분인 정보와 교양의 전달에서 벗어나 유희와 쾌락에 너무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송 매체들은 '시청률=자본'이라는 원칙에 따라 시청자들의 눈을 고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조금 지루해질 듯싶으면 '채널 고정'이라고 구호라도 외치듯, 넘쳐나는 채널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시청자들을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최면 속에 빠져들게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새로움과 참신한 발상은 어느새 자극적임과 화려함, 그리고 성적 이미지로 대체되고 있으며, 벌써 이들 이미지에 구속된 시청자들의 안구는 속으로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면서도 좀더 '자극적인', 혹은 좀더 '쾌락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에 '채널 고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엠넷에서 '정재용의 순결한 19'(이하 '순결한 19')라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이 방송은 즉물적이고 키치적이다. 가벼운데다가 과도한 유희성을 담고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비웃는 자학적인 유머에서 시작하여 풍자를 빙자한 타인의 약점 까발리기도 서슴치 않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저질 방송의 대명사가 될 법한 이 방송이 스스로 품위나 가치를 유지(?)를 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스스로 품위나 가치를 저버리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순결한 19'는 기존 방송들의 기준이나 틀을 벗어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저급함을 전면에 드러내 보임으로 인해 그 형식적인 측면에서 '새로움'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순결한 19'는 내용면에서 연예인들의 성형 의혹이나, 망언 등을 다룸으로써 풍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듯하지만 그 비판의 수준이 인터넷 댓글 마냥 너무 가벼운 바람에 풍자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본격적인 '키치 방송'이라는 측면에서 발전을 기대해볼 만한 점이 비치기도 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다음으로 동 방송사의 '아찔한 소개팅'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이 방송 역시 '순결한 19'와 마찬가지로 형식면에서는 기존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던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식의 방송을 선보이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방송은 다소 장난스럽고 과격한 출연자들의 모습을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겠다는 발상을 지닌 듯한데,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우선 만남이나 사랑이라는 가치를 너무 현실화한 나머지,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근래의 방송들이 즉물적인 태도를 유행처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밀접한 가치(예를 들면, 인격이나 예절, 혹은 윤리적인 가치 등)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왔다. 물론 세월이 변하면서 가치관도 같이 변하고, 그럼으로 인해 기존의 여러 가지 가치들이 지속적으로 뒤집혀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남이나 사랑 등에 대해서는 꽤 보수적이고 진지한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 방송의 문제점은 데이트를 성공한 도전자에게 '돈' 혹은 '사랑'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는 점인데, 아마도 제작진들의 의도는 도전자 중 모든 이들이 '사랑'을 선택하여 요즘 시대에서도 고전적인 가치들을 우선시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이 방송이 스스로 내건 '새로운 방식의 짝짓기 프로그램'과 엇갈리는 부분이다. 이 점은 스스로 새롭다고 외치면서도 결국 고전적이고 고리타분한 방식을 답습하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잘 보라, 겉으로는 새로운 형식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알고 보면 결국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왕자(킹카 혹은 퀸카)에게 선택되어 행복한 결말을 갖게 된다는 환타지적인 구성을 띠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점보다도 '아찔한 소개팅'이 가장 비판을 받아 마땅한 점은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이 방송이 정말 저급하다는 점이다. 위에서 나는 '순결한 19' 역시 저급하나, '순결한 19'는 스스로 저급함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가치를 갖는다고 했다. '아찔한 소개팅' 역시 출연자들이 등장해서 즉물적인 사고 방식과 저급한 언행 등을 여과 없이 방송함으로 인해(아무래도 이 점은 제작진들의 의도인 것같다) 스스로 저급함을 드러내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출연자들에게만 한정된 시선일 뿐이다. '아찔한 소개팅' 게시판을 보면 당장에 알 수 있는데, 시청자들은 대개 소위 '싸가지 없는' 출연자들에게 폭언과 비난을 일삼고 있다. 제작진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글들 역시 꽤 있긴 하지만, 출연자들에 대한 비난 글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다(이것 역시 제작진의 의도가 아닐까). 제작진들이 직접 촬영에 참여하면서 시청자들을 제작 과정의 일부로 동참시키는 '순결한 19'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메타 픽션'과도 같은 형태라면, 제작진들은 배후에 숨어 있는 채 교묘히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아찔한 소개팅'은 형식면에서는 새로운 척하지만 알고 보면 기존 방송들의 오만하고 왜곡된 방식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찔한 소개팅'은 안티 팬을 통해 스스로 관심을 얻는 방식을 띠고 있는 듯하다. 시청자들은 비록 방송과 출연자들을 폄하하고 비난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방송에 대한 관심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방송에 대해 비난하면서도 오히려 특정 인물 혹은 집단에 대해 이지메를 가하면서 쾌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내가 지만원 씨에 관련하여 쓴 글이 있다. 지만원 씨의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면서 관심을 얻는 방식, '아찔한 소개팅'의 전략 역시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순결한 19'와 달리 일반 출연자들이 전면에 드러나는 '아찔한 소개팅'은 모든 비난을 출연자들이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네티즌들의 인신적인 공격이나 비난을 모두 받아야만 한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 작위적이었던 진짜 자신의 모습이었던 간에 욕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상 욕을 먹어야 할 사람들은 방송을 기획한 자들임을 네티즌들은 그다지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