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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엮인 글 ; 시민없는 시민단체의 말로

이양자 |2006.11.15 11:30
조회 43 |추천 1

 

 


 

 

                 시민을 배반한 시민단체의 말로

 


참여연대의 한 간부는 6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시민운동의 現況현황과 과제’ 포럼 주제발표에서 “2000년 총선연대를 정점으로 시민운동은 시민과 따로 놀고 있거나 시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토론자는 “시민운동을 기반으로 들어선 정권이 시민운동의 에너지와 정당성을 활용해 정치를 하려다 실패함으로써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토론자는 “시민단체 활동이 立身揚名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시민단체에 ‘도덕성의 위기’가 왔다”고 진단했다.

옳은 말이다. 주제발표자가 몸담고 있는 참여연대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참여연대가 1994년 간판을 올리면서 내건 창립 취지는 “국가권력이 發動발동되는 과정을 엄정히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국가권력을 감시한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이들을 자신들의 正當性정당성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動員동원한 것이다.

참여연대에서 임원을 지낸 417명 중 150명이 정부 또는 정부 산하 위원회 자리 313개를 차지했다.

 

참여연대 간부가 문제를 提起제기하면 정부는 그들을 각종 위원회로 불러들여 감투를 주고, 정부 부처들은 이들이 제기한 문제를 토대로 정책을 만드는 공공연한 去來거래관계가 확립됐다.

참여연대 스스로 ‘권력의 파수꾼’이라는 존재 의미와 명예를 걷어차 버린 셈이다. 60~80년대에 성행했던 ‘학생데모 주동자→국회의원’의 길이 이제는 ‘시민단체 간부→청와대 비서관 및 정부위원회 위원’으로 대체된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 시민운동가들은 힘없는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권력과 관료에게 맞서 싸우는 사회의 소금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자신들과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 권력의 주인이 되면서 권력의 감시자에서 권력으로 가는 中間驛중간역으로 바뀌고 말았다. 시민이 시민단체를 떠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가 시민을 背反배반한 것이다.

2000년 총선 때 1000개 단체가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낙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정당의 補助役보조역으로 나선 다음부터 많은 시민단체들은 정치운동가 단체로 변질됐다.

환경, 노동, 문화, 종교 등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단체들이 자기네와 관계없는 반미·반FTA 같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수십 수백 개씩 서로 이름을 빌려주면서 떼지어 몰려다니는 것이 한국 시민운동의 實相실상이다. 한국 시민단체의 역사가 때 이른 終章종장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의 권력 지향

 

 


1995년 일본 고베(神戶)에서 대지진이 나자 즉각 고베로 달려간 자원봉사자가 6000명이었다. 지역단체, 학교, 기업 할 것 없이 사람들은 그룹을 지어 갔다. 7개월 동안 연인원 130만명이 자기 시간을 쪼개 이재민을 도왔다. 이들이 한 데에 침낭을 펴고 자는 바람에 ‘자원봉사자 난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봉사활동 열기에 놀란 일본정부는 ‘비영리활동촉진법’을 만들었다.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은 1835년 미국에 가보고 ‘프랑스에 정부가 있고, 독일에 계급이 있다면, 미국엔 협회(association)가 있다’고 썼다.

미국은 허허벌판에 마을을 세우고 농토를 가꾼 개척사회다. 믿을 거라곤 자기들뿐이었다.

 

지역(community) 단위 결사체(結社體)를 만들어 서로 돕는 ‘협회 전통’은 그때부터 생겨났다. 미국엔 160만개가 넘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있다. 성인 중 절반은 1주일에 3시간씩 자원봉사를 한다.

 

한국만큼 시민단체 영향력이 큰 데도 없다. 무엇보다 한국의 비(非)정부기구(NGO)는 정부 권력을 맞상대한다.

몇 달 전 어느 시민운동가는 “NGO 간사는 중앙부처 국장급을, 사무총장이면 장관을 만난다”며 NGO의 권력화를 반성했다. 정부 위원회 자리는 시민단체 몫이고, 시민단체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권력부서에 가 있는 것도 흔히 보는 일이다.

남북 통일축구 입장권이 시민단체들에 돌아가는 것마저 썩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세상이다. 어제는 중앙인사위원회가 정부부처 개방직을 뽑을 때 시민단체 활동을 경력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3월 환경단체 회원들은 일제히 어느날 어느 장소로 모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탄핵반대 시위에 참가하라고 소속 단체들이 보낸 것이었다.

회원들이 “우리가 정치하자고 회비 낸 거냐”고 항의하는 바람에 단체들은 곤욕을 치렀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너무 정치에 관심이 많고 권력과 가깝다. 이런 풍토에서 시민운동이 권력을 견제해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많은 NGO 회원들은 다양한 사람과 만나고 사회에 기여해보자는 뜻에서 단체에 가입한다. 하지만 오늘의 시민단체엔 그런 시민회원이 앉을 자리가 별로 없다.

오죽하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이 나돌까.

정치적 ‘특수시민’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라면 스스로 ‘시민’이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

말 없는 다수가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아실현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그런 NGO라야 시민단체로 불릴 자격이 있다.


 

처음부터 시민 없는 시민 단체의 출발이었다. 북이 한반도에서 핵 실험을 했는데... 환경 단체는 한마디의 코멘트도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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