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경, 미국 휴스턴에서 동기 장사를 하는 유태인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동 1파운드 값이 얼마냐?"
"35센트 입니다."
"텍사스주에서 동 1파운드 값이 35센트인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태인의 아들은 반드시 3달러 5센트라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
동 1파운드를 주조하여 문 손잡이를 만들어 팔아보렴.
남들이 1+1=2할때 유태인은 1+1>2라고 생각해야 한다."
20년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떳다. 아들은 혼자 회사를 경영했다.
그는 동으로 북도 만들고, 스위스 시계의 태엽도 만들었으며, 올림픽대회의
기념 주화도 제조 했다. 동 1파운드로 3,500달러를 벌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경영인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뉴욕주의 쓰레기
덕분이었다. 1886년 미국 정부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을 세우고 생긴
쓰레기 처리를 우해 공개 입찰을 시작했다. 몇개월이 지났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프랑스 여행 중에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즉시 뉴욕으로 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동편이며 나사못, 나무들을 보고는 아무런 조건 없이
쓰레기 처리 계약서에 서명했다.
당시 뉴욕의 많은 폐자재 처리 회사에서 그가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웃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규정들이 엄격하여 자칫 잘못했다가는
환경보호단체들에 제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일꾼들을 고용하여 쓰레기 뷴류를 시작했다.
동편은 녹여서 소형의 '자유의 여신상'을 주조하였고, 아연과 납덩이로는
기념열쇠를 만들었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후 모인 흙먼지를 잘 포장하여
꽃 재배상에 팔았다.
3개월도 안되어 그는 쓰레기더미에서 350만 달러를 벌었다.
그가 바로 맥콜회사의 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