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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희극적으로 보이는 순간들의 쾌감... <리얼리즘 여관>

백혁현 |2006.11.18 15:09
조회 44 |추천 0


 

  느닷없이 아내는 영화를 보러가자 한다. 내용도 모르고 감독도 모르고 나오는 배우도 모르면서, 그저 《리얼리즘 여관》이라는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는 황당무계한 이유에서 간택한 영화인데, 마침 매진되었던 그 시간에 네 개의 자리가 비었다며 얼른 예매를 하라고 한다. “우리 회사 컴은 맥이라서 결재 시스템이 잘 안 돼.” “음... (하지만 누구의 명이라고, 오케이...)” 아슬아슬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예매를 하러 기어들어갔을 때는 벌써 한 개의 자리가 팔리고 세 장만 남은 상황이었으니...

 

  정확히 밥때에 맞추어서 시작하는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 핫도그를 두 개와 음료수 두 개를 산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잡고 앉았고, 제작자인지 영화사 관계자인지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하고 이분여가 흘렀을까, 내 옆자리 아내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내가 불쑥 말한다. (사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제가 좀 예민해서 그러는데, 냄새를 견딜 수가 없는데, 그것 빨리 좀 먹어주시면 안 될까요?” 아내는 몇 입 베어 먹지 않은 핫도그를 포기하고 주섬주섬 봉투에 넣어버린다.

 

 

  (참을 수 없다, 영화가 무어 대수라고 배고픈 내 아내가 핫도그 먹는 걸 방해한단 말인가.)

  “이봐요, 아저씨...”

  “뭐요?”

  “그렇게 예민하면 집에서 DVD나 볼 것이지, 왜 영화관에 와서 당신의 예민함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러십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소.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지?”

  “당신은 하루종일 놀다가 왔는지 모르지만, 우린 하루종일 일하다가 겨우 시간내서 좋아하는 영화 보러 온 거란 말입니다. 밥 먹는 시간 아껴가며 들어와서 보는 거니까, 핫도그 하나 정도 먹는 건 아저씨가 참아주셔도 굉장히 인간적일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먹지 말라고 한 적 없소. 빨리 먹어달라는 거였지.”

  “여기가 극장이지 핫도그 빨리 먹기 대회장입니까?”

  “하지만 영화 관람 중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그럼 영화 관람 중에 무언가를 먹는 것은 오만불손한 행위다, 운운하는 영화 관람 강령이라도 만들어서 극장 측에 전달하시든지요.”

  “이렇게 말할 시간에 빨리 먹으면 되지 않소? 냄새가 난단 말이오.”

  “분명히 관람 중에 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극장에서 판단하여 팔고 있고 내부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가능한 음식을 먹고 있단 말입니다. 아저씨한테서 왈가왈부 참견을 받을 상황이 아니라구요.”

 

  이렇게하여 자리잡은 굉장히 불편한 심기를 그나마 달래준 것은 영화 속의 인물들... 아마도 몇 편의 독립 단편 영화 정도를 연출했을 법한 영화 감독 기노시타 (야마모토 히로시, 이 배우가 무척 마음에 든다. 날카롭지만 순진하고 어수룩하지만 순정이 있다. 나이가 들면 다케나카 나오토처럼 생겨지게 될 것 같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와 각본가인 츠보이 (나가츠카 케이시)는 공동의 친구인 후나키와 함께 하기로 했던 여행에서 우연하게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이어주어야 할 후나키는 늦잠을 잤다는 이유로 (혹은 낮잠을 자고 있다는 이유로) 여행에서 빠져버린다. 난감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두 사람의 여행은 계속된다.

 

  사실 영화 속에서 큰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저 안면이 있을 뿐인 두 남자의 여행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다. 아직 동정이라는 영화 감독과 6년 동안 사귀며 동거까지 했던 여자와 헤어진 각본가가 그저 며칠 동안의 여행에서 서로에게 조금씩 틈입해 들어간다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이다. 소심해 보이지만 어딘지 따뜻한 기노시타, 그리고 깔끔을 떨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려 애쓰는 츠보이의 행동이나 핑퐁 게임 같은 대화들이 영화의 주무기이다.

 

  두 사람을 거쳐가는 (일본 영화 특유의) 사소하지만 눈에 띄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괜찮다. 자신이 잡은 고기를 팔고 (알고보니 여관 주인의 남편이었던) 두 사람의 양주를 훔쳐마시며 번지 점프하다 줄이 끊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한적인 휴양지에서 발견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외국인 남자, 바닷가에서 주운 브래지어의 주인이며 한겨울 토플리스 차림으로 뛰어다니고 두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잠든 이들의 사진을 찍는 (알고보니 미스터리한 고딩이었지만) 소녀 아츠코, 포르노 제작업을 하는 듯한 두 사내, 건널목에서 아이를 업고 구걸을 하다 어느 순간 민박집 주인으로 변하는 아줌마 등은 밋밋하기만 한 영화에 적당히 간을 친다.

 

  (첫장면에서 카메라를 향해 다가왔다 빠져나가며 두 사람이 각자 나누는 핸드폰 통화 내용과 같은) 영화를 들여다보면 감독이 관객을 향해 웃음을 주는 방식을 대충은 알 것도 같다. 찰리 채플린은 클로즈 업 된 생은 비극적이지만 이를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되면 모두 희극적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실제로는 굉장히 코믹한 상황들의 조합일 수도 있다 감독의 소박한 의도가 잘 읽힌다. 

 


  ps1. 사실 위의 예민한 아저씨와의 대화 내용은 허구다. 이미 필름은 돌아가고 관람객은 적막한데 저런 대화가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짧은 순간 저런 스토리로 따져볼까 생각했을 따름... 내가 한 일은 아저씨의 헛기침 소리를 무시하고 끝까지 맛있게 핫도를 먹어준 정도였다. 게다가 이 아저씨 평론가 나부랑이라도 되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등이 달린 펜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적는다. 옳거니 잘 됐다, 이것도 걸고 넘어가야지, 이거야 말로 옆 사람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작태가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한 마디 할 요량으로 살짝 마음의 준비를 하기는 했는데, 객석에 불이 켜지자마자 부리나케 나가버리는 아저씨를 붙잡지는 않았다. 여하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삶에 올인하는 중이니까...

 

  ps2. 츠게 요시하루의 두 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와 ) 영화는 《린다 린다 린다》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2003년 작품으로 부산영화제에 (당시의 영화 제목은 《후나키를 기다리며》였단다.) 이어 이번에 메가박스의 일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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