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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이 꿈만 같아요..

휴지통 |2003.02.06 15:28
조회 755 |추천 0

오늘.. 아침일찍 눈을 뜨니 몸도 마음도 너무너무 가볍습니다..

눈물을 다 쏟아부어서 그런가.. 진이 다 빠져서 그런가..

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3일동안 극심한 구토로 물 한잔 못 마시고 계속 누워 있었는데, 따끔한 감촉에 눈을 떠보니 그가 제 팔에 링거주사를 놓고 있었어요..

꿈인가..? 정신이 몽롱했어요..

잠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나가더군요..

한참을 잤던 것 같아요..

주사를 다 맞았는지 그가 바늘을 빼며 우리 OO이.. 피가 참 맑고 빨갛네.. 라며 희미하게 웃네요..

술 마시고 들어왔나봐요.. 술 냄새가 확~ 났었던 걸 보면..

우리.. 이미 헤어진 사인데.. 왜 또 그가 여기 있는걸까요?

헤어지자고 한 건 그 사람인데.. 왜 여기서 울고 있는 거지요?

이번 봄에 결혼한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약혼녀가 돌아와서 곧 결혼식을 올린다네요..

전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전 그가 업무상 방문했던 병원의 결혼시기를 놓친 어리버리한 노총각 의사인 줄로만 알았어요..

서로 나눠가진 명함을 보고.. 그는 줄기차게 쫒아다녔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 여기저기서 프로포즈를 많이 받고 있던 콧대높은 전문직 아가씨였죠..

6개월의 구애끝에 전 그를 받아들였답니다..

매일 만났어요..

서로 뭐가 그리 아쉬운지.. 점심 저녁을 항상 함께 먹었어요..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한 해, 두 해가 흘렀기에 우린 결혼할 줄로만 알았죠..

같이했던 좋은 추억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 해 보지도 못하고 계획만 해 놓은 즐거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나 날 배려해주고 아껴주고 예뻐해주던 사람이라 정말 하늘처럼 믿었어요..

그런 그가.. 어느날 헤어지자고 하네요..

맛있는 저녁 사 주고 싶다며 불러내선.. 생전 안 입던 양복을 갖춰입곤 낯선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네요..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몸이 벌벌 떨려오더군요..

무슨 이유인지 듣지도 못한 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어떻게 이렇게 일방적일수가.. 울면서.. 집까지 걸어왔어요..

추운데 많이 걷고, 또 너무 울어서 피곤했던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입은 옷 그대로 쓰려져 잠이 들었어요..

다음날 아침.. 저 혼자사는 아파트인데.. 그가 와서 깨우더군요..

어떻게 들어왔는지.. 집을 까페처럼 예쁘게 꾸며 놓았다며 능청까지 떨면서..

예전에 제가 스쳐가듯 얘기했던..집 비밀번호를 잊지 않고 그걸 누르고 들어왔다고..

비밀번호 6자리가 그와 나의 생일을 합쳐놓은 숫자였거든요..

서로 마주앉아 조금씩 그에 대한 진실을 들으며.. 제 가슴은 타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와 그의 약혼녀.. 서로에 대해 어떤 감정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라도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집안환경과 비겁한 자신을 견딜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나를 끝까지 지켜줄 용기가 없다고..

자긴 현실과 타협한 비열한 놈이라고.. 용서하지 말라고 하네요..

그렇게 날 두고 가지말라고 울었어요..

왜 날 사랑했냐고..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하필 왜 나냐고.. 그의 가슴에 매달려 울었어요..

내 자지러지는 울음을 뒤로하고 그는 그렇게 떠났어요..

그 후로 전.. 얼빠진 사람마냥 못 마시는 술을 마셔대며 엉망인 생활을 했어요..

매일같이 걸려오는 그의 전활.. 가슴이 터질까봐 받지도 못하고..

예전에 곧잘 함께 어울렸던 그의 친구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절 위로해줬어요..

잊으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다 알고 있었지만, 저와 결혼할 자신 없으면 그만 두라고 그렇게 말렸지만 그가 너무 절실했다고 하네요..

하는 데 까진 해 볼꺼라고.. 죽어도 못 헤어진다고.. 저랑 결혼할꺼라고..

그랬던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하다니.. 자기네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눈가가 짓무르도록 매일같이 울고 괴로웠지만 어느 순간 가슴에 탁! 하고 어떤 느낌이 오더군요..

그는 이제 떠난 사람이라고.. 더이상 내 사람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이렇게 무너지면 안되겠다고..

제가 평소에도 몸이 약해 자주 골골했었습니다..

그런 폐인생활을 얼마동안 했더니 결국엔 견디지 못하고 위에 경련이 오더군요..

병원엘 갔다와도 차도가 없어서 3일째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소식을 듣고 그가 달려와준거죠..

그렇게 링거주사를 놔 주고 죽 먹여주고 또 한바탕 울더니.. 결혼한다 합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다신 이런 사랑 못 할 것 같다고 하길래.. 제가 뻔뻔하다 했습니다..

나.. 당신 잊을꺼라고..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보란듯 잘 살거라고..

하지만 당신은 나 잊으면 안된다고..

죽을때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종종 슬퍼하면서 그렇게 간직하라고..

그게 내가 자기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저주이자 벌이라고..

그리고.. 결혼하면 그녀에게 충실하라고..

우리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니..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살으라고..

오늘이 내 얼굴.. 내 목소리 듣는 마지막 날이 될꺼라며 그렇게 울면서 그를 보냈습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몸이 나았습니다..

죽을 데워먹고 두유도 한 잔 마셨구요..

새 아침을 맞으니 할일이 많습니다..

당장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걸어 포장이사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곤 집을 내 놓았지요..

내일 견적을 보러 온다고 하니 모레쯤 이사를 할 것 같아요..

엄마에게 부탁해서 무리해서 더 넓고 좋은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갑자기 날 버린만큼.. 저도 갑자기 사라져 줄겁니다.. 보란듯이..

남들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이사를 가냐고 하지만 다행히도 운대가 잘 맞은 것 같습니다..

방금도 전화가 계속 오네요.. 안 받았더니 음성이 왔습니다..

이젠 아예 저보다 더 한수 위로 우네요..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겁해서,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무덤을 판 사람이기에.. 가엾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요.. 다시 일어날꺼예요.. 아직도 눈물이 흐르지만 꼭 그렇게 할꺼예요..

아직 절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의지하며 당당히 일어날겁니다..

친구들이 지금 집 앞에와서 절 불러냅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힘들까봐 걱정투성이인 친구들입니다..

그 말고 소중한 사람들이 여기 또 있습니다..

미뤄두었던 일들을.. 조금씩 다시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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