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바라기는 태식이란 남자의 희망에 관한 영화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희망..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거창한 희망은 이 영화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존귀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평범함 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이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소한 행위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한 평생에 거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소원이 될 수도 있고, 이루어야 되는 목표일 수도 있다. 영화 해바라기는 이런 평범함을 가장한 채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희망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사소함에 대한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떠오른 건 김래원이란 배우의 작가성이다.
물론, 작가주의는 학술적으로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하며 감독의 개성이 영화마다 반영되어 작가가 소설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며 직인을 찍듯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이 작가주의를 난 오늘 배우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솔직히 이 영화는 상업적이다. 적당한 신파와 코믹, 액션 그리고 마지막 결말까지도 장르의 전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중영화의 흥행공식 그대로를 따르고 있다. 내러티브 또한 예고편만 봐도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선택한 김래원은 무언가 다르다고 본다.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드라마를 제외한 영화만) 그는 서서히 감독이 작가성을 드러내듯 배우의 작가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ing부터 선택한 영화들은 하나같이 다 지극히 일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며, 맡은 역할 또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든지, 아니면 사회의 악을 적절히 풍자하여 이들의 반대편에서 작지만 큰 소리를 외치는 역들이다. 즉 그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진정성에 대해 배우로서의 작가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가 작가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배우에게는 독이될 수도 있다. 그만큼 작품과 역할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며, 팔색조와 같이 다양한 역할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배우여야 하는데 이러한 것을 버린것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극히 상업적인 이유로, 자신이 뜨기 위해서 혹은 돈이 될 것만 같아서 등의 경제적 자본 논리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들보다는 영화를 예술로 생각하고 이런 작품을 생산한다는 입장에 있는 배우에게는 배우만의 향기가 깊게 묻어 나온다.
브루디외의 Field Theory에 따르면 영화는 문화장의 대량생산의 장에 속하며 이들은 상징자본 보다는 경제자본을 더 추구한다. 문화장 안에서의 명성을 얻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며 이로 창출되는 경제적 이익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영화인들이 다른 미술가, 음악가들에 비해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중에서도 작가주의 감독이 만들어 내는 작가영화나 예술영화는 대량생산의 장 안에서도 제한생산의 장에 가깝게 위치한다. 즉, 대량생산의 장 안에 속하지만 이들은 상업적인 논리와 수요의 수급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예술 그 자체로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배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실험영화나 작가영화에만 출연하는 배우들도 존재하지만, 배우는 본질상 대중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배우 중에도 상징자본을 추구하는 배우는 분명 존재한다. 이들이 작가성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작품과 예술로 인정하며 자신의 생각과 이데올로기를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해바라기의 김래원을 보는 내내
그의 전작인 미스터소크라테스가 떠오른 것을 보면
배우 김래원은 현재는 상징자본을 추구하는 작가로서의 배우임에는 분명한 듯 싶다.
자신이 삶에 대해 바라보는 생각과 이데올로기를 영화 속에 연기로써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노선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오늘 해바라기 속 김래원은 진정 배우다운 모습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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