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 하루 잡힌 그라나다에의 일정이
기차를 놓쳐서 날라가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몇차례나 잠을 깨고는
모닝콜 시간 5분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바르셀로나 가기까지는 제대로 씻기도 어려우므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결하고 호텔을 나섰다.
해가 늦게 뜨는 관계로
별이 아직도 총총한 세비야의 추억을 뒤로하고
AM07:00발 그라나다행 열차를 탔다.
Granada.
13-15세기 스페인 무어왕국의 수도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도시.
그 유명한 Alhambra궁으로 더욱 알려진 곳.
내가 특별히 스페인을 찾은 이유가
스페인 건축에 남아있는 동양의 영향으로 인한 독특함에 있다면
알함브라는 그 정점쯤에 있다고 하겠다.
AM09:58
너무나 가슴 설레이면서 내렸던 그라나다역
근데 왠지 역이 너무 초라하다.
그래도 기대감을 잃지 않고
오늘은 밤차로 바로 바르셀로나로 떠나야하니
코인 라커에 필요한 짐만 빼고는 배낭을 집어 넣고
가볍게 역사를 걸어나왔다.
이 도시에 관한 여행 안내서의 내용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 도시를 찾는 배낭 여행객들이 수가 적은 이유도 있겠다.
그래서 버스를 타야 한다는데,
버스 타는 곳을 찾지 못한 난
시내까지 무조건 걸어본다.
좀 끔찍하다 싶게 많이 걸어 시내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여행 안내소에 들러서 지도를 얻는일
그런데 여행 안내소에서
갑자기 몇일간 거른 자연의 부름이 있었다.
너무나 급한 난 Toilet을 외치며 물어보았으나
화장실이 없단다.
돈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화장실도 제공하지 않겠다?
그래서 좀 참고는 길건너의 대성당으로 향한다.
입장료를 받으니 화장실은 있겠거니
왠걸 입장료내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이 없단다.
맙소사.
본전 생각이 나서 대성당을 구경하려 했지만
다른 도시의 그것보다 매우 수준이 낮기도 하겠거니와
자연의 부름이 너무 다급한지라
이번엔 옆의 직원에게 묻는다
어딜가면 화장실이 있겠느냐고
성당 바로 옆의 왕실 예배당에 가면 있단다
이번에도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곳
두번 속을까 싶어 돈을 지불하기 전에 물으니 역시나 없단다.
진짜로 참을 수 없게된 난
스페인의 멕도날드 격인 Pan & Company간판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왔던지....
고장난 화장실이었지만 정말 자알 이용하고는
할 수 없이 세트메뉴를 시켰다.
바게트 샌드위치와 감자튀김, 콜라로 이루어진 세트인데
바게트 속의 햄처럼 생긴것
(나중에 그것이 소 넙적다리를 소금에 절여
그냥 말린 생고기인 하몬임을 알게되었다)을 한입 배불고는
난 완존히 기절하는줄 알았다.
그렇게 짠 햄도 있다니....
얼마 먹지도 못하고 알함브라에 가서 점심으로 먹어야지 하며
싸달라고 했지만 먹게될까?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알함브라로 오르는 산길로 향했다.
그 높은 산성의 매표소는 맨 뒷쪽에 있으니 등산을 해야만 한다.
가다가 산고양이 사진도 찍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하고...
한국의 산을 오를 때의 흥쾌함으로 산을 다 올라서
매표구를 향했다.
그런데 왠지 매표구 윗쪽을 흐르는 전광판의 글자들이
심상치가 않다.
Ticket Sold Out!
이게 무슨 청천벽력의 소리란 말인가.
세상에 문화재 보호도 좋다지만,
알함브라는 하루에 5000명의 관람객 밖에는 허용하지 않는단다.
그 숫자는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늦으막히 나타나는
끔찍한 숫자의 단체 관광객들의 숫자로 거의 채워지는 까닭에
아주 일찍 오지 않으면 표를 못 구한단다.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나는 Korea라는 아주 멀고 먼 나라에서
오직 알함브라만 보겠다고 왔는데
오늘 밤기차로 가야하니 꼭 봐야한다
어떻게 안되겠냐고 하며 아무리 슬프고 불쌍한 표정을 지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옆의 어떤 노랑머리 아가씨도 표를 못 구했는지
열심히 스페인어로 실랑이를 하다가
동병상련의 미소를 내게 띄우고는
자기 갈길을 간다.
나는 너무나 허무해서,
알함브라가 아니고는 그라나다에서 아무것도 볼 것이 없었기에,
매표소 주위의 담장 넘어 조금이라도 뭘 볼 수 있을까 기웃 거리고
건축 과정의 모형을 사진에 담으면서 계속 배회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포기하고, 맞은편 언덕인 Albaicin지구에 가면 알함브라 전경이라도
보일것 같아서 그리로 발길을 옮긴다.
그 길에서 다시 그 동병상련의 미소를 보내던
노랑머리 아가씨와 만나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알함브라가 아니고는 할일이 없던 그녀와
하루를 동행하기로 하다.
그녀의 이름은 Dulce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23세의 대학생.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멕시코인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나보다 조금은 나은 수준인 그녀 덕택에
어떻게든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나도 세상에서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멕시코인이었고,
그녀도 내가 세상에서 처음만난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한때 식민지배를 받았던
일본과 스페인이란 나라에 관한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함께 여행을 망친 하루를 너무도 착한 Dulce와
그렇게 멋진 만남으로 채울수도 있다는 것에 나는 감사했다.
그리고 알바이신 지구는
나름데로 굉장히 매력있는 골목길을 갖은 아랍지구였다.
온통 하얀 집들과 나름데로 열심히 꽃으로 치장한 발코니.
우리나라 달동네와는 차원이 다른 달동네다.
사람도 하나 없고.
언덕배기에 오르니 알함브라 뿐 아니라 도시의 전경이
눈부시게 시야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동안 친구에 굶주렸던 난
둘세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때보다 많은 풍경을 놓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현격히 줄어든 것을 느낀다.
나중엔 곳곳에 퍼져있는 작은 박물관에 들어가 보는 것도 귀찮아진다.
오후가 되어 해가 뉘엇해지자 아예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 한다.
그리고는 다시 Pan & Company에 자리잡고 앉아서
이번에는 샐러드와 오렌지 주스로 지치고 힘든 몸을 달래본다.
너무나 한국적인 정서로 둘세의 것도 내가 계산하자
아주 이상하게 느꼈는지 극구 사양한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에서는 나이 한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야
저녁을 살수가 있었다.
너무 약소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우린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고
아주 가난하게 여행하는 둘세의 이야기.
여행하며 만났던 스코틀랜드 소년 이야기.
밤이 찾아왔고, 내가 먼저 기차를 타야했다.
서로의 e-mail을 적어주고 꼭 연락하자고 약속하고는
마지막으로 꼭 안아 포옹을 하고는 난 기차를 탔다.
언제나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행운이 찾아온다.
어쩌면 다시는 못만날 인연이지만
추억속에서 오랫동안 소중하게 빛을 발할
그런 인연이었노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