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10-16-09-2000-Barcelona
강지선
|2006.11.23 01:41
조회 77 |추천 2
울고 싶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이제는 이런 실수까지 하다니
내 스스로에 대한 실수가 더욱 나를 놀라고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도 여기서 주저 앉을순 없지 않은가
우선은 매표 사무실로 가서 어떤 다른 대안이 있는지 찾아본다.
영어가 되는 매표원이 있는지 찾아보면서 내게 안심하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을꺼야!
하지만 기차로는 구멍이 없었다.
프랑스의 다른 도시로 가서 파리행을 갈아타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파리 도착 03:40
그때면 비행기가 지중해도 지나서 인도양으로 향하고 있을때이다
다른 대안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표를 우선은 환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퍼뜩 떠오르던 생각
박찬식씨가 묵는다던 민박집!
민박집에는 스페인 사정에 밝은 주인이 있을 터이고
다른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내 여행책자에서 민박집이 여기일꺼라고 가르쳐준것이 생각나서
찾아서는 전화를 해본다.
정말로 한국말로 전화를 받는다.
살았다!
내 사정을 침착하게 너무도 침착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이 알아봐준 방법은 비행기
새벽에 출발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비행기 그게 있었구나.
그런데 그 새벽까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고 혼자있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 민박집에 내가 그리로 가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가는 방법을 듣고 시 외곽지대에 있는 민박집으로 향한다.
아주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민박집.
벨을 누르니, 우리 빡빡이 찬식씨가 나를 맞으러 나온다.
창피함을 무릅서고 베시시 웃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간다.
지금 방금 들어와서 들었다며 그도 황당한 듯 웃는다.
들어간 민박집은 거실에 2층 침대가 3개나 있고 침실이 3개인 아파트로
거실엔 남자들이 웃기는 영어를 써가며 포커를 하고 있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두 남자는 처남 매부 지간으로
이곳에 사업을 하러 자주 오는 장기 투숙객이었다.
그리고 괴상한 색깔의 안경을 낀 주걱턱 젊은이는
배낭 여행 도중 사귄 외국 친구가 배낭째 들고 튀는 바람에
여권이고 비행기 표고 돈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집에서 지원이 오기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이또한 장기 투숙객이다.
친숙하게 인사하는 그들과 조금씩 대화를 해가던중
한 무리의 젊은 아이들이 들어온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로 이상한 날인지 그중에 분수쇼 보러갔다가
뒷주머니 소매치기를 당해서 여권과 유레일을 잃어버린 친구가 있었다
서로 우울하고 속상함을 잊기위해 술자리의 제안이 나오고
나는 기차표 환불한 돈에서 5000pts를 내놓는다.
어차피 잃기 시작한거 크게 증권에서 날렸다고 생각하지뭐!
사실 크지도 않지뭐. 내생명에 비해선....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그 지갑잃은 녀석과 친구
두놈다 내 대학 게다가 꽈 후배로 홍대 건축96학번이란다
93학번 조교 들어가고 걔네들이 내가 본 마지막 후배이니
감회가 남다르다
김시영, 최동식 아주 잘생기고 든든한 느낌이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태권도 사범을 지내다가
다시 한국에 살려고 갔는데
이미 스페인이 더 익숙하여서 살려고 돌아와
집 알아보고 있는 동안 있다는 또 다른 장기 투숙객 최병석
서로 소개하고 놀라워 하면서 술자리는 농도 짙게 무르익어가고...
새벽 2시
갑자기 병석군이 스페인의 진짜 밤을 보고싶지 않냐고 묻는다
스페인의 진짜 밤을 못보고 떠나는게 못내 아쉬웠던 난
이게 왠 횡재인가하여 즉시 아이들에게 바람을 넣는다.
드디어 스페인의 진짜 밤을 향하여 출발!
낮으막한 건물 일색인 바르셀로나에서
유일하게 30여층 올라간 2란성 쌍동이 모양의
바다를 향하여 난 게이트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선큰 주변에 일렬로 디스코 텍들이 늘어서 있었다
줄잡아 10여개의 닭장들이 모두 오픈된 채로
제각기 다른 풍의 음악과 다른 풍의 조명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우린 라틴 음악을 주로 틀면서 익숙한 음악을 트는 닭장을 찾았다
그리고 내 평생 언제 그런 춤을 추어볼까 싶게
너무나 자유스럽고 섹시(?)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의 대담함 못지 않게 동식이가 현란한 춤으로 화답을 한다
모두들 기가 질리는 표정이지만
주변의 자유스러운 스페인인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난 나를 잊고 내 끔찍한 현실도 잊고
여행자의 익명성을 의지하여 내가 이제껏 해보지 못한
몸짓과 눈짓으로 그 밤을 만끽했다
그 밤을 꼬박 새워서....
야외에선 춤을 좋아하지 않는 몇몇이 모여
술과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
테이블로 다가가니 모두 나를 보고 웃는다
아무래도 스페인에 남아야 할 것 같다고.
알고보니 병석군이 자기 어머니가 찾으라던 그 여자가
바로 난 것 같더란다.
병석군 같은 남자를 휘어잡을 수 있는 강한 여자.
욕인지 칭찬인지 웃어 넘겨보지만
마음속엔 스페인에서의 삶이 충분히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스페인에선 태권도 사범이 의사나 교수 못지 않게
대접받는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가.
새벽 5시
나이트 클럽들이 문들 닫는 시간
모두 상기된 얼굴로 길위로 나선다.
그 바닷가에서 공항으로 나가야 하는 난 모두와 아쉬운 이별을 나눈다
나 혼자 공항에서 영어를 할 자신이 없어서
찬식군에게 동행을 부탁한다.
런던에서의 9개월이 헛된것이 아닐꺼라는 신념하에....
택시를 타고 돈을 헤아려 보니
나이트 클럽에서도 내가 쏘는 바람에 택시비도 모자란다.
그래서 찬식군에게 계속 신세를 지게 된다.
어떻게 다 갚아주나
바르셀로나의 비행장은 의외로 규모가 작다.
여기 저기 쫓아다니며 비행사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 것은
찬식군의 몫이었는데, 결과는 아주 좋지 않다.
편도에 급하게 구하는 표는 비지니스 클라스 밖에 없고
가격이 82000pts(거의 50만원)이하로는 없단다.
한번의 실수로 날리기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내 비행기표는 알고보니 6개월 오픈.
서울로 전화를 걸어서 다음 비행기가 언제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다행히 하루 뒤에 똑같은 시간에 뜨는 비행기에 자리가 있단다.
하지만 서울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경유편을 거의 18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가야지 그 방법 밖에는 없으니
1시간여를 이 비행사 저 비행사 쫓아다니고
서울로 전화하고
모든 과정을 그 어린(?) 찬식군이 도맡아했다
잠깐이나마 정말 눈물나게 든든하고 저런 남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고 생각한다.
비록 인물은 없어도 가끔은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남자가
정말로 의지가 되겠거니 싶은게....
하지만 내가 탐낼만한 대상이 아닌 것을....
저녁 기차표를 사러 역으로 다시 돌아간 우리는
파리행 어제와 똑 같은 시간 표를 사고
달리 미술관을 보기로 한 찬식군은 다시 기차를 타러 간다.
너무나 몸이 피곤했던 난 다시 민박으로 향했다.
모두 곯아 떨어진 방에서 난 끔찍하게 피곤했음에도
쉽게 잠이 들지를 못한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현실이 아닌것같이 너무도 이상하여서
그리고 하루를 올림픽과 함께 빈둥거리다가
손님중 하나인 의사선생님이 부인 버버리 고르러 가는데
쫓아가 달라는데 같이 나갔다가
스페인에서 가죽옷을 사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에 충동구매를 한다.
그런데 진짜 똑같은 버버리 상표인데
그것도 백화점에서 구매하는데
우리나라의 반값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비싼것을 쳐주면....
그렇게 하루가 가고
짧은 하루였지만 너무나 정이 들어버린 사람들을 이제 정말 뒤로하고
이번에는 절데로 놓칠리 없는 파리행 기차를 타러 민박을 나선다.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보려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난 내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인간적 한계를 느끼고...
이제는 혼자보다는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를 느끼고....
겸손을 배운다.
많이 외롭고 힘든 여행이었지만,
나는 아주 조금더 세상을 안것만 같고,
조금은 더 성숙한 것 같고,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내게 보여주신 세상의 아름다움들에 진정한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