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슬픔이 슬픔에게 말하기

정수미 |2006.11.24 07:12
조회 22 |추천 0

죽음은 존엄성이 없다.

 

 

존중받을만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의 환상에 의해 각색될 뿐

죽음 자체는 살고싶은 안간힘의 좌절에 불과하다...

 

 

그래서 슬프고 안쓰러운 것이다.

 

푸싱카가 죽어갈 때 나는

한 가엽고 측은한 존재의 살기 위한 발버둥을 보았고

그런 존재를 품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를 찔렀고

 

 

그리고 다음번엔 작고 연약하고 보호받아야할 상처입은 존재들을

품어줘야 겠다는 의지를 눈물속에서 굳혔다.

 

 

그런데... 그것은 오만이다

상처입은 자가 상처입은 자를 포용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사람의 상처라는 것은 감상적 슬픔을 자아내는 멜로 영화와 다르다.

 

독성을 지녔다.

 

망치로 깨트려야 부서져 나가는 단단한 상처의 껍질과

그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슬프고 사악한 뱀.

 

뱀은

 

자기를 아껴주는 주인을  물어 뜯고 치명적 독을

뿜는다.

 

내 안의 상처. 사람들 속의 상처.

 

죽음에 존엄성이 없듯이 상처는 아름다움이 없다.

 

건강하지 못한 자에게서 나는 악취와

피해의식와 동시에 복수심과 독단적임과

자기보호적 물인정함과

중독성과 위악과 극단적인 이기심과...

도피성과 독점욕. 예민함과 불안정함.

 

이것이 공통적이다.

 

그래서 상처와 상처가 대립하고 싸울 때

격렬하고 치욕스럽고 더티해진다.

 

남녀가 싸움이 치열해질 때

나는 이별을 권한다

 

서로의 상처가 유사하기 때문에 그런것 뿐

사랑이라는 허울좋은 말의

낭만적인 해석은 사절이다.

 

 

하지만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고

그 상처로 감정 이입을 하고

상처가 상처와 연합할 줄 알게 되면

 

상처를 아름다워진다.

 

서로를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행복을 질투하지 말고

 

슬픔이 슬픔에게

불행이 불행에게

말하는

화법을

익혀야할 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