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이상적인 사랑을 꿈꾼다.
비록 그것이 자신만의 이기적인 바람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나의 모습에 그 누군가가
지금도 상처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슬픈 사랑이라 믿는다.
사랑이란 건 어차피 이기적인 것이기에.
이 남자, 날씨도 화창한 백주대낮에
사랑했던 여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다.
애써 태연한척 하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이 남자.
돌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애처로운 남자가 된다.
그렇게 망가지면 나름대로 위로가 될까. 아
니면 그 누군가 이 남자의 아픔을
알아주기라도 할까.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혹시나 그가 너무 많이 아파할까봐,
너무 깊은 상처를 받을까봐,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타깝게
마음 조리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인간이 되었는데 다른 생각이 들 리가 있나.
사랑이란 건 어차피 이기적인것을.
그 남자를 면회갔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냥 하루동안 그 남자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나를 생각하는 게 바뀔지도 몰라.
그런데 왜 그리 어색하고 답답한지. 이럴려고 온 것이 아닌데.
이 남자는 무심한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자꾸 딴소리만 해댄다.
그와 헤어질 시간이 되어간다. 무언가 결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결심은 그저 그녀만의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편하지도, 그 남자의 나에 대한 마음도, 얻은 것이 없다.
그렇게 그녀를 태운 버스는, 그렇게 떠나버린다.
단지, 그녀만의 이기적인 바람이었을까.
그 남자와 그 여자, 10년만에 다시 만났다. 두 사람 많이 변했다.
그녀에게 더욱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그 남자.
전보다 적극적으로 변한 그 여자.
그런데 거기가 한계다. 서로를 편안해하고 다가가려 할 수록
느껴지는 그 지독한 어색함.
그녀는 그에게 사랑한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그가 떠나버릴 것 같아서.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주었던 그녀.
하지만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알 수가 없다.
10년전에 그저 편한 친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지만 그걸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들다.
항상 내 옆에 있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달리 표현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그녀와 자고 싶다.
그 말이, 그 오랜 세월 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그녀는 혼란스럽지만 감정에 충실하기로
한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대해 이제는 자신이 생기는 듯 하다.
이제는 그에게 나의 마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나에게 말한다.
"미안하다"
그녀, 모든 것이 무너짐을 느낀다. 그랬구나.
그녀,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한다.
오랜세월 혼자서 앓아왔던 가슴앓이를 이제는 정리하려고 한다.
사랑인지, 아닌지 한참 혼란스러워 하는 그의 마음을 뒤로 한 채.
시작도 그녀가 했으니 마무리도 그녀가 하려나보다.
어차피 사랑이란건 이기적인 것을.
사랑은 헤어져 봤을 때 그 소중함을 안다고 한다.
아니, 헤어져 봤을 때 그것이 진짜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각자의 이기적인 바람이 서로 상충할 때 사랑이 되는 것이다.
한쪽의 일방적인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질 않은가.
그래서 사랑은 어렵고 힘들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너무나도 나에게 익숙했던
그 무엇을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쉽게 자각할 수 없으며,
설마 그게 사랑이었을까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하지만 설마하며 망설이는 사이에 사랑은 떠나버린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고 힘들다.
사랑은 무심하게 떠나버리는 버스와도 같다.
타야 할지, 타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그저 막연해 보이기만 하는 그 사랑을
위해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가 않다.
적어도 결정 후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래서 사랑은, 정말 어렵고 힘들다.
이 영화 [사랑을 놓치다]는 무척이나 세심하면서도 잔잔한 영화이다. 주인공들의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통한 극적인 영화가 아닌, 오랜세월 가까이 지내온 두 주인공의 내면심리의 변화를 차근차근히,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밟아가고 있는 영화이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정말 사랑때문에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영화이다. 항상 옆에 있었지만 그게 사랑이었는지 확신이 없는 남자와 그러한 그의 모습을 오랜세월 지켜보기만 하는 여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 당하는 아픔도 크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말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본다는 것, 그 고통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 사랑이 뭐 별거야? 하고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 사랑은 정말 쉽고,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정해야 할 때 결정하지 못하고, 느껴야 할 때 느끼지 못하면 사랑은 떠나버린다. 그리고 한 번 떠나버린 사랑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무심하게 질주하듯 달려가는 그 버스처럼.
많은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이 영화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12년전 그날이 자꾸만 생각난다. 이제는 어느정도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때의 일이 자꾸만 떠오른다. 12년전 군대를 제대한 필자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다) 동창인 친구녀석과 시내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초등학교 때 필자의 가슴속에 사랑의 열병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그녀를. 그 어린 나이에, 그 알 수 없는 사랑이란 감정은 정말 참기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랬던 그녀를 그날, 그 도심 한복판에서 12년만에 만났다. 아직까지도 필자의 인생에 가장 당황스러우면서도 황당했던 순간이다. 그녀도 그날 그곳을 친구들과 우연히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질 못했고, 친구녀석이 이야기해 줘서 알아봤는데, 왜 그리 어색하고 죄라도 지은 듯한 느낌이었는지. 그런데 그녀에게 몇일 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아니, 그 후로도 계속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생각외로 나에게 적극적이었던 그녀. 그녀와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만났으며, 술을 마시고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그녀가 주로 이야기하는 쪽이었으며 필자는 주로 들어주는 쪽이었다. 내가 그녀를 과거에 무척 좋아했던 걸 알고 있었을까.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서 마치 그동안 쭉 만나왔던 친구처럼 대하는 것일까. 그녀를 만날때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내가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만큼 내가 편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편한 사이로, 이대로 지내고 싶어서 였을까. 그녀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 다시금 꿈틀거림을 느꼈지만 필자는 말 할 수가 없었다. 행여나 그녀가 다시 떠나갈까봐. 그 당시 필자의 심정이 그러했다. 그런데, 바보같이 그만 그녀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말았다. 그녀의 본심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는 떠났다. 나는 그녀를 원망했다. 그렇게 나를 편안해하고, 같이 있고 싶어했으면서, 내 마음은 알아주지 못하고 자기 편한대로만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하고 말이다.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왜 이리 사랑은 복잡하고 힘든지.
4년 후 필자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가 필자의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를 바라보며 웃음짓는 그녀. 그런데 왠지 얼굴 한켠이 어두워보인다. 분명 웃고는 있지만 웃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잠시나마 필자를 또 다시 혼란스럽게 했었다. 물론,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이다. 지금의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지난 시절의 일들에 후회는 없다. 그냥, 그 시절 아련했던 추억으로 기억 한켠에 남아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그때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던데,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내 마음을 표현했을 때 보여준 그녀의 태도. 자신을 잡아달라는 의미였는지, 친구 이상은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알듯 말듯 하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당시 정말 그녀가 미웠는데, 그녀 입장에선 어땠을까. 혹시 그때, 그녀와 나는 각자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설마 그때, 나는 사랑을 놓친것은 아니었을까. 아, 사랑은 정말 이기적이다.
그래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