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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커트 코베인-Smells Like Teen Spirit

전우갑 |2006.11.24 21:15
조회 50 |추천 0
“나는 괜찮은 어린 시절을 보냈어. 아홉 살까지만…….”
1967년 2월 20일, 커트 코베인은 미국 워싱턴 주 애버딘의 한 병원에서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첫 후세였기에 커트를 향한 가족의 사랑은 유별났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란 커트의 불행은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비롯된다.   한 인터뷰에서 커트는 말했다. “난 정말로 괜찮은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하지만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홉 살 때까지만.” 부모의 이혼, 가족간의 생이별, 비난과 혐오를 넘어선 저주와 증오의 가시 돋은 독설들, 그리고 이어지는 부모의 재혼과 방치된 청소년 시절, 떠돌이 생활. 어디에서도 안주할 곳을 찾지 못했던 이 험난한 여정 속에서, 천사와 같은 눈동자를 가진 해맑은 아이는 조금씩 괴물이 되어 갔다. 그리고 부모의 이혼과 재혼 속에 방치된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14살에 커트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는 음악에서 슈퍼스타가 될 거야. 그리고 자살을 해서 영예의 불꽃 속에 사라질 거야. 지미 헨드릭스처럼 자살할 거야.”   커트 코베인이 자살 운운한 것은 그의 가계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할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 두 명이 자실을 시도했고, 결국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커트에게 자살은 숙명과도 같은 삶의 과정이었으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은 듯하다. 커트 코베인이 사냥용 엽총의 총구를 자신의 입 속에 넣고 방아쇠를 당긴 것은 1994년 4월 8일이었지만, 이미 그 전에 그는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한 경력이 있었다. 이전의 수법은 모두 약물 과용이었다.   록과 미술을 통해 드러낸 광기의 예술
“악마성을 표출한 자신의 미술작품에 공포를 느끼다”
어린 시절부터 커트 코베인은 미술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한다. 처음에는 디즈니의 캐릭터들을 따라 그렸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그림은 음화나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형태로 나타난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그가 가장 집착을 보였던 소재는 팔다리가 없는 아기의 형상이었다. 버려진 인형을 주워와 팔다리를 떼어내고 기괴한 형상으로 변형시키고는 했다. 훗날 이 형상은 그가 약물중독이 극에 달한 뒤에 아내 코트니가 임신을 했을 때, 공포의 대상이 되어 그의 눈앞에 나타나고는 했다. 아내와 자신 둘 다 마약 중독이 극심한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그는 태어날 아기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에 사로잡혀 더욱 마약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의 미술 작품들(그림과 설치미술)은 그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악마성을 표출하는 수단이자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공포에 대한 이미지였다.   욕설과 약물,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
음악은 미술과 더불어 커트 코베인이 유일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음악이 정서적 안정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커트는 자신의 폭력성과 광기를 음악을 통해 표출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더욱 더 세상을 공격하고 자신의 세계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이 그의 노랫말은 난해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마치 그의 정신세계처럼) 뒤틀려 있지만, 그의 곡이 지니는 아름다운 멜로디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들이 커트의 방황이 극에 달해 있던 청소년기에 대부분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절친한 친구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결성한 밴드가 차츰 알려지면서 커트의 밴드는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그들의 공연은 대부분 보수를 받지 않고 행해졌으며, 여러 밴드들과 함께 무더기로 공연을 벌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데모 테이프를 만든 것을 계기로 커트 코베인은 음반 취입을 위해 여러 레코드사의 문을 두드린다.  

당시 커트 코베인이 보인 행동을 보면 그의 삶에서 일관되어 온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메이저 레이블을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관심을 보일 경우, 녹음 비용은 자신이 대겠노라는 아부성 강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동봉하기도 했다. 결국 ‘서브 팝’이라는 독립 레이블과 계약을 하고 음반을 발매하면서 커트 코베인은 자신의 밴드에 ‘너바나’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서브 팝이 수용하기에 ‘너바나’는 너무나 큰 물건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명반 《네버 마인드》와 첫 번째 죽음
대중의 반항을 부추긴 어둠의 마법사의 사악한 주술 얼터너티브 락(Alternative Rock)은 90년대 이후 빛을 보게된 락의 한 장르이다. 90년대 들어서 온갖 소리를 낼 수 있는 신시사이저가 개발되면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들어냈는데, 서로 누가 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가로 경쟁이 붙었고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식의 사고가 있었다. 여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 얼터너티브 락이다.

"새로운 락을 창조하려고 해봤자 별 수 없다. 결국 최고의 락은 기본에 충실하는거다.
그것이 미래 락음악에 대한 최고의 대안(Alternative)이다." 라고   주장하며 음악계를 발칵 뒤집음과 동시에 전세계 젊은이를 사로잡았다. 그의 주장대로 얼터너티브 락은 간결한 사운드를 중시한다. 기타, 베이스, 드럼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라인업을 사용하며, 얼터너티브밴드 중 유독 3인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미국 얼터너티브의 시초는 R.E.M , R.H.C.P와 Pixies라고 할수있다. 물론 초기에는 얼터너티브도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너바나라는 밴드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너바나의 앨범 는 발매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단숨에 80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린다. 펑크 록밴드로서는 최초로 M-TV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라는 간판 프로그램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을 뿐만아니라 마이클 잭슴의 를 누르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이 방송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너바나로 인해 80,90년대 어두운 사회상과 함께 커온 젊은 세대들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얼터너티브의 이미지가 자리잡았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가 수록된 앨범 Nevermind는 얼터너티브란 장르의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히며, Smells Like Teen Spirit 는 젊은이의 송가가 되었다.   커트 자신이 94년 1월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듯이 Smells like teen spirit은 "대놓고 pixies를 베껴 보려고" 만든 곡이었다. " I was trying to write the ultimate pop song. I was basically trying to rip off the Pixies. I have to admit it" 그리고 당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던 얼터너티브란 장르를 순식간에 끌어올리며, 전세계를 얼터너티브의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에서 공연을 마친 다음 날 아침, 커트 코베인은 '죽은 상태' 로 발견된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 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다행히 코트니 러브의 응급처치로 커트 코베인은 기사회생하지만, 이후로 그는 이와 유사한 '죽음'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커트 코베인은 대중의 우상으로 대단한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지만, 언제나 찢어진 청바지 차림에 일주일 정도는 감지 않아서 떡진 머리를 하고 다녔다. 마치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이 귀찮아 죽겠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면서 그는 생방송이나 공연장에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대중을 우롱하려는 장난기를 발동하며 '반항아' 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솔직히 말해서 커트 코베인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와 대중의 관계는 항상 적대적이었다. 엄청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는 항상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깎아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 자신이 가장 적대적이며 못살게 굴었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딸 프랜시스가 태어난 뒤에 한동안 평안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던 커트는 로마에서 자살 소동(약물과용으로 인한 죽음 직전의 상태였지만, 이때는 미리 유서를 준비하기도 했다)을 벌인 뒤로 그는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기 파멸을 통해 해방을 꿈꾼 생의 이단아


예고된 끝을 향해 달려가다

3일째 커트 코베인은 어디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내인 코트니 러브가 사람들을 시켜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커트의 행방은 묘연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킹스 카운티의 경찰들도 탐문을 하고 다녔지만, 커트는 마치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금요일의 이른 아침, 전기공인 게리 스미스가 워싱턴 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며칠째 비워 있던 저택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인기척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8시 40분경 온실 쪽으로 시선을 던진 게리 스미스는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후두부가 파열된 시체였다. 사방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실종 3일 만에 커트는 결국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1994년 4월 8일이었다.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에 커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쁜 죄악은 내가 100% 즐거운 것처럼 꾸미고 가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제발, 내가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사라져버리는 것들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나르시스트인 모양이다.  그러니 기억해주기 바란다. . . .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첨부파일 : 너바나0140x0120.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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