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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Charles Barkley

오민 |2006.11.25 13:25
조회 201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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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Charles  Barkley

 

본명 : 찰스 웨이드 바클리

출생 : 1963년 6월 20일 앨라바마

신장 : 198cm (실제 키는 193cm 라는 설이 가장 유력!)

체중 : 114kg(전성기기준)

학력 : 오번대학교

         (전체 1라운드 5순위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입단)

주요 수상경력  : 시즌 MVP 1회(1993년),

                        All-NBA First Team 5회(1988·89·90·91·93년),

                        올스타선정 11회,  올스타전 MVP 1회(1991년),

                        올림픽 금메달 2회(1992·96년)

                        리바운드 왕 1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찰스 바클리의 신장이 6-6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6-4(193cm)에 불과했다고 한다. 6-4에 불과한 바클리가 리바운드왕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바클리의 위대함을 잘 설명해준다. 통산 2만 득점과 1만 리바운드, 4천 어시스트를 기록했던 선수는 역대 4명. 윌트 체임벌린과 커림 압둘-자바, 칼 말론, 바클리였다.

빌 월튼은 '슬램' 매거진에서 선정한 위대한 선수 100인중 바클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바클리는 매직 존슨이나 래리 버드처럼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던 선수다. 그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는 위력적인 리바운더였고, 훌륭한 수비수였으며 3점슛과 드리블에 능한 플레이메이커였다."

바클리가 NBA에 데뷔하자마자 작은 키로 엄청난 리바운드 능력을 보이자 사람들은 그를 'Round Mound of Rebound'라고 불렀다. 그러나 바클리는 단순히 리바운드만 잘했던 선수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유쾌한 인물이었고, 농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승부사였으며 동료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했던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이런 매력때문에 후에 팬들은 그를 'Sir Charles'로 부르게 된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전직 헤드코치이자 ESPN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잭 램지는 바클리에 대해 "그 키로 리그에서 그가 이룬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고 말한다. 바클리가 필라델피아에 입단했을 때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했던 맷 구오카스는 "그의 사이즈를 보라. 그는 포워드로 뛰기에는 너무 작았고, 가드로 뛰기에는 슛이 너무 부정확했었다. 모두가 그를 높게 보지 않았으나 그는 2만 득점과 1만 리바운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항상 자신의 리바운드 능력을 자랑했었다. 누군가가 다른 선수를 역대 최고의 리바운더로 점찍는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구오카스는 "바클리가 훌륭한 득점 능력을 갖추지 못한채 리바운드에만 전념했더라면 아마도 경기당 19개쯤은 너끈히 잡아냈을 것이다. 바클리가 패스만 했다고 하더라도 경기당 어시스트 9개쯤은 어렵지 않게 해냈을 것이다. 그는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며 바클리에 대한 칭찬을 이어갔다.

NBA 우승에 가장 근접했었던 93년, 바클리는 시카고 불스와의 파이널 시리즈서 평균 27.3점, 13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는 매치업 상대였던 호레이스 그랜트를 완벽히 틀어막았다. 그랜트는 시리즈 6차전서 단 1득점을 기록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클리의 이런 활약도 마이클 조던을 넘기에는 약간 모자랐다. 조던은 그 시리즈서 평균 41점을 기록했었다.

역대 최고의 파이널 시청률을 기록했던 불스와 선즈의 대결은 바클리의 앞날을 결정지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클리는 이후 번번이 플레이오프서 미끄러지며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채 '무관의 제왕'으로 남게 된다. 93년 리그 MVP에 뽑히며 자신의 최고 활약을 펼쳤던 바클리는 불스와의 6차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당시 경기 종료 49초전까지만 해도 선즈는 98-94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38초를 남기고, 조던에게 2점을 허용하며 불운한 결말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즈는 댄 멀리가 에어볼을 날리는 바람에 승리를 굳힐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존 팩슨에게 통한의 결승 3점슛을 얻어맞는다. 경기가 끝난 뒤 바클리는 라커룸에서 "이와 같은 순간이 운동 선수에게는 너무나 잔인하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바클리는 약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우승 반지와 상관없이 그의 위대함은 요즘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 찰스바클리 어록

 

"내가 입단했으므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 마이클과 결승전에서 만난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다." -선즈에 이적한 후 첫 시즌을 맞으며

 

"내가 그에게 엉터리 같은 판정을 하더라고 말했더니 그는 그런 말을 하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돈으로 위협말라 돈으로는 나를 움직일수 없을 테니까 라고 말했다.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벌금을 문후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날은 죽을때까지 없을 것이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다." -93년 5월 MVP수상 소감중

 

"우리들은 지금 커다란 구멍에 빠졌다. 아리조나에는 그랜드캐년이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일은 태양이 뜰 것이다." -93년 파이널 2차전 불스에 패배후

 

"선즈의 팬들에게 말하겠다. 케빈존슨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결승에 올라왔겠는가. 그런 그에게 야유하다니 그런 사람은 경기장에 오지마라." -93년 파이널전때 부진했던 케빈존슨을 야유하는 팬들에게

 

"사람들은 멋진 일년이었지 라고 하겠지만 지금 기분은 최악이다. 우승했다면 은퇴하겠지만 이래서야 어디 그만 두겠는가. 나는 준우승하러 피닉스에 온게 아니다." -93년 파이널 패배

 

"나는 이렇게 될걸로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Philly에서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신이 내가 시작한 곳에서 그걸 끝내길 원한다고 생각한다."

"내 맘속엔 어떤 슬픔도 없다. 모두들 내가 소년에서 어른이 되가는걸 봐 왔잖은가."

"그리고 내가 시작했었던 Philly에서의 끝은 훌륭하다. 내가 명예의 전당에 갈만큼 운이 좋다면, 그건 76er로서일 것이다" -NBA에서 처음 뛴 필라델피아에서 경기중 부상으로 은퇴하며

 

“이대로 떠날 수 없다. 화려한 은퇴경기를 갖겠다.”

“단 한 경기다. 더 이상은 뛰지 않겠다. 내가 원하는 건 단지 마지막 경기서 남의 부축을 받지 않고 내 힘으로 당당하게 코트를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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