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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리뷰

임슬기 |2006.11.29 16:07
조회 22 |추천 0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 멍하게 앉아 TV를 보고 있던 내게 엄마가 물으셨다.

“너 오늘 왜 이렇게 한가해?”

순간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아니 난 TV 좀 보면 안되나' 라는 작은 발끈함이 앞서 "왜? 뭐 이상해?" 라고 반문했고 엄마는 이렇게 답하셨다.

" 응, 너 맨날 시간 없다고 난리잖아"


쿵. 둔탁한 무언가로 뒤통수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다른 날이었으면 대수롭지도 않을 대화였지만  1할 2푼 5리의 승률을 찬양하며 인생의 넘치는 시간을 향유하라는 복음전도서를 읽은 직후였던지라 그 감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나는 우리가족이 보기에 집에 가만히 앉아서 뒹구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애가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는 그런 생각조차 거의 해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뭔가가 늘 느려 보이는지 '늘보'라는 별명도 있었고 몇몇 지인들은 나의 여유로움을 대놓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난 물론 그건 내가 게으른 것인데 쟤들이 뭘 착각하나 보다 -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조급함과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나보다 훨씬 바쁘고 빡센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물론 하루아침에 그 템포에 맞출 수는 없는 나의 게으름과 부족함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증세는 한층 심해져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굉장히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복잡해진 연애사로 몇날며칠을 고민하고 있던 내게 '지금 다른 사람들은 네가 이렇게 시간 버리고 있을 때 잠 안자고 노력해. 너 이렇게 약해져서야 어디 경쟁이 되겠니. 도움 안 되는 관계들 좀 청산해'라는 질책을 듣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어설픈 '바쁜 척'은 엑셀레이터를 밟아 왔던 것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바쁜 척'을 하면서 얼마나 생산적으로 많은 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없다. 작가의 논리에 따르면 그 '생산성'이라는 것의 기준도 다분히 자의적으로 해석 될 수 있으니 일단은 면죄부라도 얻은 것 같아 고맙다. 하지만 비교적 확실한 것이 있다면 삼미처럼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 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는 아마추어가 아닌, '우승'이라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는 프로의 세계에 입단하고자 늘 무언가를 꼼지락거렸다는 것이다. 


 나는 '프로'나 '1등의식' 같은 것들의 가치에 대해 폄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에 대한 열정으로 휴식도 반납하고 몰두하는 많은 이들이 있고, 어떤 분야에 있어 남들의 선례가 되고 이끈다는 것, 그에 대한 보상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실로 부러운 일이다. 사실 작가 '박민규'씨는 글쓰기의 프로이고 그의 절친한 친구 '조성훈'씨는 프라모델의 도색과 조립의 프로이며 '사카에'씨 역시 자기 사업에 있어 프로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자칫하면 세상의 죽도록 노력하는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나 중산층들에게 부아를 북돋기만 하는 판타지가 될 수도 있었다. 이미 세상이 인정해주는 소속을 가져봤고 각기 남부럽지 않은 지적자본을 가지고 프로가 된 이들이 프로를 경계하고 프로가 되지 말라고 설법하는 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공감을 주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바빠서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돌이켜 볼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았었기에 오히려  설득력을 주는 작가가, 자신이 평생을 걸쳐 열정과 충성을 바친 추억의 아마추어 팀과 주변의 등장인물들을 매개로 '결국 세계는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철학을 야구라는 스포츠에 어찌나 절묘하게 녹여냈는지. 그 말투의 맛깔스러움에 빠져 진지하게 숨죽이고 읽다가 ‘픽’ 웃어버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다. 작가 ‘박민규’는 프로의식 따위의 것들에 치여 살벌하게만 살지 말고 좀 천천히 살자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렇다.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말 자체와 수많은 잣대는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옭아 맨 것이라 봐도 틀리지 않다. 그리고 이왕 그렇게 나누어 진 것, 우리는 프로라 불릴 수도, 아마추어로 불릴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고 그 자체를 문제 삼긴 힘들다. 최선이 있다면, 내 삶을 사랑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채 각자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따라 뛰지 말고, 속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기..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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