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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경영학

류주선 |2006.11.30 14:33
조회 23 |추천 1

 

 

[ 이순신 경영학 1 ]

지구촌 시대다-----------------------------------------

경제의 국경은 희미해지고 무한경쟁 체제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기서 패해 초라한 처지가 됐다.

국제경쟁력이 취약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외채에 허덕이다가 급기야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까지 받게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23전 23승 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을 수 있다.

무력전이든 경제전이든 전쟁은 전쟁이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이순신의 청렴결백과 높은 신뢰성, 겸허한 마음가짐에서 온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 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우리가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 사람들은 메이지 (明治) 유신 이후 해군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세계 제일의 것을 본받으려는 벤치마킹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을 깊이 연구했으며, 또 그를 존경해 마지않았다.일본도고 헤이하치로 (東鄕平八郎) 함대의 한 함장은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싸우기 위해 출항하기 전 이순신의 영혼에 도움을 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 는 '언덕 위의 구름' 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문무관리중 거의 유일하게 청렴한 인물이었고, 군사통제와 전술능력.충성심과 용기가 실로 기적이라 할만한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 그 후 잊혀졌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존경해 메이지시대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했다.

(…) 당시 일본인들은 러시아제국이 동아시아 병탄의 야망을 갖고 있다고 보았으며 동진해오는 발틱함대를 그 최대의 상징으로 여겼다.
동아시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한 척도 남김없이 쳐부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동아시아를 위한 일인 이상 옛날 동아시아가 낳은 유일한 바다의 명장인 이순신의 영혼에 빌었다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 사람들은 그를 연구해 청일전쟁.러일전쟁의 해전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선을 병합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과 전략을 깊이 연구하거나 본받지 못해 임란 이후에도 외침에 시달리다 결국 나라까지 빼앗겼다.

역사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면, 역사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있는 이순신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경제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는 무적함대와 다름없는 일본의 자동차회사, 미국의 컴퓨터회사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제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과연 얼마나 냉철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에 대비하고 있는가.

최악의 역경 속에서 연전연승한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은 이 점에서 귀감이 될 것이다.

[ 이순신 경영학 2]

죽을힘 다하는 기업가 정신을------

자동차왕 헨리 포드, 컴퓨터황제 빌 게이츠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기업가들이다.
거의 빈 손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냈다.

과연 무엇으로 가능했을까.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자금난.인재부족 등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용기와 결단, 희생의 감수, 솔선수범, 끈질긴 추진력 등을 발휘해 이를 극복했다.

기업가정신 없이 경제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고전경제학의 대가인 영국의 앨프리드 마셜은 기업가정신은 기사도정신과도 같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의 강점 중 하나는 그들의 무사정신이라는 말도 있다.
이순신은 기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업가정신의 진수 (眞髓) 를 보여주었다.

그는 상상하기 힘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싸워 찬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만큼 악조건아래서 싸운 장군이 있었을까. 연전연승해 국가에 말할 수 없는 공을 세웠지만 누명을 쓰고 죄인이 돼 도원수 (都元帥) 권율 (權慄)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 (白衣從軍) 하는 신세가 됐다.

세계 제일의 해군제독이 죄인이 되고 육군의 무등병 (無等兵) 으로 강등된 셈이다.

칠전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게 참패해 조선 수군이 괴멸된 후에야 임금인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해 일본 수군과 싸우도록 했다.
한마디로 병사.배.무기.군량미 없이 홀몸으로 막강한 일본 수군과 싸우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와 같이 외롭고 딱한 처지의 해군사령관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당시 이순신은 억울한 죄로 시달린 나머지 마음과 몸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났다.
그는 같이 싸울 수군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군의 추격을 무릅쓰고 이 고을 저 고을 찾아다녔다.

텅 빈 관가의 창고를 뒤져 무기와 식량을 모으고, 칠전량 해전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12척의 배를 찾아내 남해안을 휩쓸던 일본 수군을 막을 태세를 갖췄다.

이런 와중에 조정은 12척의 배로는 도저히 2백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막아낼 수 없다며 이순신에게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그는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 (戰船) 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 수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

12척으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돼 장수들도 도망가고 임금마저 전투를 포기하라고 명령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적의 진격을 막을 수 있다' 고 오히려 임금을 설득하고 명량대첩이라는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순신이 12척으로 일본의 대함대를 격파했듯이, 우리 기업도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적절한 전략을 구사한다면 세계적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없는 것만 탓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시설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그리고 배경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한다고들 야단이다.

지금이야말로 이순신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이 필요할 때로 보인다.


[이순신 경영학 3 ]

정보로 무장 스피드 경영을------------

군사전략이든, 경영전략이든 기본은 같다.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2천5백년 전에 쓰여진 '손자병법' 이 오히려 새로움을 준다고 극찬하는 세계적인 전략가도 있다.

이순신이 보여준 23전23승의 전략은 이런 점에서 경제전쟁 시대에 진지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선 적이나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기의 강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자기의 강.약점은 물론 상대방의 강.약점도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이순신은 이같은 전략의 기본에 충실했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 (潮流) 를 훤히 꿰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최고 지휘관이었지만 현장답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정보원과 정탐선을 파견해 적의 규모와 이동상황 등을 세밀히 파악했다.

이순신의 이같은 정보중시 전략은 정보화시대인 지금 더욱 긴요하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생생한 현장 정보의 수집과 활용뿐 아니라
정보고속도로.경영정보시스템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등 정보의 하부구조를 효율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순신은 지형.조류 등 자연환경과 우리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적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일본 수군은 칼싸움에 능해 일단 배위에서 싸우면 그들이 유리했다.
또 그들은 조총을 갖고 있었으나 화포는 미약했다.

이러한 적의 강.약점을 파악한 이순신은 화포를 집중 발사해 적선의 접근을 막으면서 이를 격침시켰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GE) 은 많은 사업체를 매각하고 세계에서 1, 2등하는 부문만 집중 육성해 세계 초일류기업이 됐다.
반면 우리 기업중엔 지나치게 많은 업종에 진출해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에선 대기업이라도 세계적인 기업과 비교하면 매우 작다.
따라서 재벌 기업이라도 전문분야를 선택해 세계 제일이 되도록 모든 자원과 노력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이순신이 일본 수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빠른
기동력이다.

그는 일본 수군을 선제 공격함으로써 기선을 제압하고 적이 공격해올 틈을 봉쇄했다.
또 신속한 함대 운용이 특기였다.
적 함대를 공격하는 즉시 빠져나왔다.

지금 기술과 시장 등 경영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기민성이야말로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가만히 있는 목표물은 좋은 공격대상이 될 뿐이다.

끊임없는 개선과 혁신으로 경쟁자가 겨냥하기 힘든 목표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환경이 돌변하고 기업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경영기법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류에 휩쓸려 전략의 기본을 소홀히 하면 안된다.

경영전략의 기본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유행처럼 바뀌는 기법을 좇는 것은 모래 위에 화려한 누각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렵고 급할수록 기본원리에 충실하길 권한다.

[이순신 경영학 4 ]

자만하면 경쟁서 진다----------------------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철저히 대비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는 수많은 싸움에서 전승 (全勝) 했음에도 '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번 죽는 일만 남았다' 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많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육지의 적까지 완전히 소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 같다.

이런 자세 때문에 항상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욱 철저히 대비했을 것이다.
오만한 사람들은 임진왜란에 대한 대비랄 게 없었다.

임란 직전 통신사의 부사로 일본에 갔다 온 김성일 (金誠一) 은 '도요토미의 눈은 쥐와 같고 외모로 보나 언행으로 보나 하잘것없는 위인이니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 면서 무시하는 듯한 말로 조정에 보고했다.

전쟁 전에는 일본을 한칼에 무찌를 수 있다고 큰소리 친 장수도 막상 일이 터지자 도망만 다녔다.

오만과 자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전쟁이나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자만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하기는커녕 문제 자체가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남이 문제점을 지적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는 치밀하고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없다.
세계 제일의 기업이라도 그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자만에 빠지면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GM의 경영자들은 한때 자만심 때문에 일본 자동차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했다.

일본 자동차들이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마치 장난감 같다고 비웃기까지 했다.
이런 오만으로 일본 자동차의 미국 진출에 소홀히 대비해 GM은 큰 손실을 보았다.

'IBM이 가는 곳에 컴퓨터 산업이 있다' 는 말이 있었듯이 세계 컴퓨터산업을 선도하던 IBM도 한때 자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GM.IBM과 같은 세계 초일류기업의 경영자들이 자만에 빠져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수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세계에서 일등을 하다 보니 인간심리상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초일류기업과는 거리가 먼 국내기업들의 경영자나 종업원들이 오만해진다면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IMF 구제금융 이전에 우리는 지나치게 자만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자기 기업과 자신의 능력을 세계 제일인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식 세미나석상에서 외국사람들이 자기 기업의 기술과 경영방법을 배우러 끊임없이 찾아온다고 떠벌리는 경영자도 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진국 사람들이 배우러 온 것이었다.

세계적인 초일류기업들은 자만을 경계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불평 많은 고객들을 우대하고 오히려 이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제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같이 만만한 경쟁기업이나 고객만 상대하면서 오만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기업을 경쟁상대로 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메워나가자. 겸허한 자세로 까다로운 고객의 불평을 경청하면서 혁신을 감행해야 진짜 경쟁력이 붙게 될 것이다.


[이순신경영학 5 ]

완벽한 준비가 불량률 '제로'만든다 ------------------------

이순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예를 들어 첫번째 싸움인 옥포해전에서 26척, 한산대첩에서 59척, 명량대첩에서 1백23척의 적함을 격파하거나 나포했지만 자신의 전함을 한 척도 잃지 않았다.

잇따른 완패에 크게 위축된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는 일본 수군에 '이순신 함대와 맞서 싸우지 말라' 는 명령을 문서로 하달하기에 이른다.

'이순신장군과 바다싸움 말라”도요토미 직접 지령
임진왜란 초기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듭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가 '절대 바다에서 맞서 싸우지 말라' 고 일본 수군에 공식 지령을 내린 문서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기타지마 만지 (北島万次) 일본 교리쓰 (共立) 여대 교수는 3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 세미나에서 '도요토미가 '거제도에 진지를 만들고 육지에서 포를 쏠 뿐 바다로 나가지 말라' 는 내용이 담긴 문서 '협판기 (脇坂記)' 가 당시 참전 장군인 와키사카 (脇坂) 집안에 남아있다' 고 밝혔다.

기타지마 교수는 '명령서엔 도요토미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다카야마 (高山) 실록 등 임란 당시의 다른 문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고 발표했다.

도요토미의 지시는 1592년 7월 8일 (이하 음력) 한산대첩의 조선군 승전이 보고된 뒤 같은 달 14일 처음 내려졌다. (중앙일보 권혁주 기자)

이순신이 수많은 전쟁에서 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완벽성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다.

임진왜란 전 조선은 오랫동안 평화로 군기가 해이해졌고 적당주의가 판을 쳤다. 평화에 젖으니 고된 훈련에 불평도 많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부하들을 감복시키고 고된 훈련을 이끌어 나갔다.

그 결과 그는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해군전략가 발라드 (G.A.Ballard) 제독이 극찬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함대 운용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순신이 활쏘기 연습에 매진했던 한산도 활터에 가보면 그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대비태세를 잘 보여준다.

화살로 적을 명중시키려면 적과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거리감각이 무뎌져 다른 배에 탄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순신은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활 쏘는 곳과 과녁을 배치할 수 있는 곳을 활터로 개발했다.

이런 활터는 이곳을 빼고는 국내에 없다고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벽성에 도전해야 한다.
이 점은 세계적인 컴퓨터회사인 IBM의 기업이념이 '완전성의 추구' 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IBM은 모든 업무.제품.서비스의 완전무결 (zero defects) 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완전성의 추구가 생활의 기본이 돼야 하고, 모든 작업이 최상의 방법으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수행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든 제품이다.

부품 1만개 중 한개의 불량품만 있어도 자동차 한대에 2개의 불량부품이 끼어들게 된다.

이 정도의 품질수준으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초일류 자동차회사들은 불량률 '제로' 에 도전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우리는 자동차보다도 훨씬 부가가치가 높고 복잡한 제품, 이를테면 항공기와 같은 제품에서도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항공기의 경우 부품수가 훨씬 많고 고도의 초정밀성이 필수적이므로 더욱 완벽한 작업이 요구된다.

인간은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또한 완벽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그렇다고 목표치를 낮추게 되면 의욕이 저하되고 게을러지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완벽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생활의 활력소로 작용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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