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대한민국(大韓民國) (천리안) 새천년이 도래하면 로봇이 모든 시중을 들고 서로의 텔레파시를 감지할 수 있는 등의 괄목할 만한 시대가 펼쳐질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서기 2000년이 실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강한 허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로봇, 텔레파시는커녕 은행 ATM기와 현금카드조차도 자주 말썽인 걸 보면 1990년대나 2000년에 들어서나 별 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기당한 것처럼 허무한 이 시기에 한국 랩을 사랑하는 음악팬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가 레코드숍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그 종합선물세트의 브랜드명은 바로 이었다.
'힙합'이라는 대명제 하에 자주 거론되던 현진영, 서태지, 이현도 등이 행해오던 댄스힙합, 갱스터랩, 뉴 잭 스윙 사운드 덕분에 한국 대중들도 어느 정도 힙합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랩뮤직에 대한 본질 탐구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조금은 더 심오하게 랩 음악을 시도하는 젊은 피의 수혈이 절실했다. 시의적 필요성과 뮤지션의 욕구가 예리하게 교차하는 접점에서 뉴 밀레니엄 힙합 무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무대에는 'YG 패밀리', '스타덤'(지금의 퓨처플로우), '무브먼트 크루' 등의 신진 힙합세력이 중원을 차지하며 급부상했다.
이처럼 한국 힙합 청취자들의 더욱 진보한 욕구가 강했던 시기에 펑크(Funk)와의 장르적 융합을 진행해오던 이현도(D.O), 즐거운 악동 디제이 덕(DJ DOC), 맛깔 나는 토종 한국어 랩의 주인공인 허니 패밀리, 끈적끈적한 힙합음악으로 데뷔를 시도한 윤희중 등의 공중파뮤지션들과 신촌 힙합클럽 '마스터플랜'의 크루가 한데 뭉쳐서 뜻 깊은 목적(가시적: 앨범발매, 추상적: 힙합음악의 범국민 화)을 위한 도원결의를 진행했다. 이전에 발매된 이 철저하게 언더그라운드 래퍼 중심의 앨범이라고 한다면 은 대중적인 힙합 뮤지션이 다수 포진하면서 힙합음악의 경계(Frontier)를 더욱 확장시킨 앨범이었다.
윤희중의 곡 '乞(Girl)'은 '걸'이란 발음으로 랩 라이밍(Rhyming)을 해나가는 재미를 보여준다. 단출하면서도 매서운 랩 플로우(Flow)를 자랑한다. TEAM(팀)의 '소망'은 학창시절의 소소한 일상을 캔버스에 그려낸 듯 매우 상쾌하다. D.O.C의 'L.I.E'는 돈에 혈안 되어 있는 대중음악 관계자에 대해 과감한 욕설을 내뱉고 있으며 CB Mass의 '나침반'은 당시 K-Hiphop의 이상향이 될 만한 베이스 사운드와 공격적인 가사를 과감히 내던지고 있다. 주석의 '정상을 향한 독주'(It's My Turn)는 마치 이 곡이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피아노 사운드와 신념적인 가사의 전개가 귀를 잡아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앨범의 실제 타이틀곡은 '飛上(비상)'이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 사람들이 반길만한 피아노 사운드와 샘플링 사운드를 중심에 두지 않았다. '멜로디'적 기름기를 쫙 빼고 감각적인 비트와 관조적인 가사를 핵심으로 삼았다. 한 마디로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스타일을 뒤로 하고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 스타일로 달려가고 있는 곡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곡은 무수한 랩 피춰링(featuring)진이 함께하기에는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다. 합동 프로젝트 앨범이라는 점에서 이 곡의 기획, 녹음, 타이틀 선정은 꽤 현명한 선택이었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에 참여한 언더그라운드 마스터플랜 크루 중 일부(주석, CB Mass, Side-B 등)는 현재 오버그라운드에서 농도 짙은 대중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오버그라운드로 끌어주는 시스템과 매니지먼트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한국에서 이처럼 하나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자신의 아이콘을 대중들에게 인지시키고 오버그라운드 진출을 향한 능동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낸 과정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했다. 또한 오버그라운드 래퍼들도 이 앨범을 통해 자신 고유의 음악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짜릿한 음악적 자유를 만끽했을 것이 분명하다.
- Track List -
1. 2000 大韓民國: Intro
2. 飛上(비상) (Various Artists)
3. 乞(GIRL) (윤희중 Feat.Nu-Gen)
4. CARE (Side-B)
5. 소망 (TEAM(팀) Feat. 양창익, 낙타, 카리, 창진)
6. 風流歌(풍류가) (허니 패밀리)
7. 정상을 향한 독주 (주석 Feat. Ill Skillz)
8. L.I.E. (D.O.C)
9. Honey Style (허니 패밀리)
10. Do Da Right One (D.O. Feat. 진원)
11. 羅針盤(나침반) (CB Mass)
12. 파수꾼 (Da Crew)
13. T.D.C. & ME (Dope Boyz)
14. 천년의 꿈 (O.D.C.)
15. End Of The Beginning: Outro
2006/11 하광화 (rappersm@hanmail.net)